EU 기업 통합보고서, ESRS 요건과 상당한 괴리
유럽연합(EU)이 2023년부터 본격 시행한 지속가능성 공시제도(CSRD)의 정합성을 놓고, 상당수 유럽 기업들이 기존 통합 연차보고서로는 기준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속가능성 전문 매체 ‘코퍼릿 디스클로저스(Corporate Disclosures)’는 21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연구진의 논문을 인용해 "현행 통합보고 체계로는 향후 CSRD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이번 분석은 CSRD 도입 전인 2023년에 발간된 기업들의 통합보고서를 대상으로, 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ESRS) 88개 공시 항목 충족 여부를 실증적으로 평가한 첫 연구 중 하나다. 해당 보고서들은 모두 국제통합보고 프레임워크(IR Framework)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통합 보고, ESRS 수준엔 미달…기업별 격차 분석
기후·윤리는 충족, 생물다양성·자원순환은 부진
연구 결과, 평균적으로 보고서 한 건당 ESRS 88개 항목 중 32.7개만 충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통합보고 프레임워크가 재무 및 비재무 성과를 포괄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ESRS가 요구하는 다층적이고 규범적인 공시 항목까지 감당하기에는 설계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부 분석에서는 기후 변화(E1), 내부 인력(S1), 기업윤리(G1) 등 주요 항목은 비교적 높은 충족도를 보였다. 반면 가치사슬 노동자(S2), 지역사회(S3), 소비자(S4) 등 사회적 영향 항목과, 오염(E2), 생물다양성(E4), 자원순환(E5) 등 환경 관련 항목에서는 이행률이 낮았다.
기업 규모와 산업 분야에 따른 격차도 두드러졌다. 자산 규모가 크거나, 환경적으로 민감한 산업에 속한 기업일수록 ESRS 충족률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사회적 주목도와 규제 압력이 높은 기업일수록 정당성 유지를 위해 선제 대응에 나선다”고 분석했다. 이는 기업이 외부의 사회적 기대에 맞춰 자발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설명하는 ‘정당성 이론(Legitimacy Theory)’에 근거한 것이다.
CSRD 전환기, 기업 정합도 진단에 실질적 시사점
연구는 또한 IR 프레임워크 기반 보고가 ‘이중중대성(Double Materiality)’ 요건을 일정 부분 수용할 수 있다는 점도 부각했다. 통합보고가 비록 재무적 중대성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정보 역시 병행 공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ESRS는 단순한 정보 나열을 넘어, 정량·정성 자료는 물론 전략·지배구조·이해관계자 참여·성과 지표 등 다양한 정보를 요구한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CSRD 적용 기업들은 기존 보고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단일 기준(통합보고서)만을 대상으로 했으며, 공시에 포함된 수치의 신뢰성이나 실질 반영 여부에 대한 정성적 평가는 부족했다는 한계도 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향후 연구 방향으로 GRI 기준 보고서 비교, 혹은 개별 항목별 심층 분석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