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전략은 그대로…유럽 완성차업계, 규제 유연화 속 ‘방향 고수’

2025-05-25     홍명표 editor
 유럽대륙과 전기차를 주제로 만든 이미지./챗GPT.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22일(현지시각), 주요 완성차 기업들이 각국의 정책 변화와 미중 무역 갈등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전환 전략의 ‘방향 고수’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보도는 FT가 주최한 5월 ‘Future of the Car’ 서밋에서 나온 글로벌 완성차 CEO들의 발언과 논의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으로, 업계가 당장의 시장 변동성보다 장기 전략 일관성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했다.

 

전기차 수요 회복세...전략은 유지, 목표는 유연하게 재조정

볼보 전 최고경영자(CEO) 호칸 사무엘손(Håkan Samuelsson)은 2022년 퇴임을 앞두고 “내연기관에 투자하기보다 미래에 투자하겠다”며 2030년까지 전기차 100% 전환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후 시장 환경은 급변했다.

지난해 다시 CEO로 복귀한 사무엘손은, 전기차 수요 둔화와 미중 무역 갈등이라는 이중 변수에 직면해 1분기 순이익이 59% 급감하는 상황을 맞이했고, 회사는 19억달러(약 2조6030억원) 규모의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그럼에도 그는 “진짜 도전은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이라며 전기차 전략의 지속 추진 의지를 밝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전 세계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올해 전체 판매량은 20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글로벌 전체 차량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60%, 유럽이 25%, 미국이 11%를 기록할 전망이다.

유럽 내에서도 전기차 수요 회복세가 뚜렷하다. 르노,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등 주요 제조사들은 2만5000유로(약 3887만원) 이하의 보급형 모델을 속속 출시하며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 폭스바겐은 2026년 ID2, 2027년에는 초저가형 ID1 출시를 예고한 상태다.

 

규제 유연성 두고 논쟁… “처벌보다 경쟁력 유도해야”

정책 환경도 유연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탄소배출 기준 적용 시점을 조정해 2025년까지 일부 유예를 허용했으며, 영국은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 기한을 2035년까지 연장했다. 전기차 의무판매 비율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에 대한 벌금 수준도 낮아졌다.

이에 대해 영국 교통부 산하 ‘제로에미션 차량국(Office for Zero Emission Vehicles)’ 리처드 브루스(Richard Bruce) 국장은 “자동차는 대부분 소비자에게 두 번째로 큰 지출 항목으로, 급격한 전환은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신뢰는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유연화가 중국산 저가 전기차의 공세 앞에 유럽 완성차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브뤼셀 기반 무역협회 E-Mobility Europe의 크리스 헤론(Chris Heron) 사무총장은 “EU의 CO₂ 규제 유연성은 2025년까지는 숨통을 틔워줄 수 있지만, 미국의 관세 인상이 본격화되면 다시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은 최근 중국산 전기차 및 부품에 대해 최대 100%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으며, 이에 따라 유럽 제조사들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 압박을 받고 있다.

FT 서밋 공동 인터뷰에서 스텔란티스의 존 엘칸(John Elkann) 회장과 르노의 루카 데 메오(Luca de Meo) CEO는 “지나친 규제는 제조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기술 다변화와 비용 현실화를 위한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두 경영진은 “소비자는 값비싼 전기차를 원하지 않는다”며, 단일 기술 중심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데 메오 CEO는 “처벌보다는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엘칸 회장은 “유럽에서 친환경적이면서도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는 차량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