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원의 ESG투자트렌드】ESG 펀드 자금 유출, 단기 변동과 장기 추세
이번 달 글로벌 ESG투자 업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보고서 중 하나는 펀드평가사 모닝스타가 발간한 2025년 1분기 글로벌 ESG 펀드 플로우 보고서일 것이다. 분기별로 전 세계 ESG 펀드에 돈이 얼마나 들어왔고 얼마나 나갔는지 점검하여 ESG 펀드 시장에 대한 투자자 수요를 살펴보는 보고서다. 매 분기 발간되는 자료지만 이번 보고서는 특히 여러 언론이나 SNS 등에서 회자됐다. 역대급으로 많은 돈이 유출됐을 뿐만 아니라 ESG의 성지와도 같은 유럽에서조차 ESG 펀드에 들어온 돈보다 나간 돈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ESG 펀드의 인기 상승 초입이었던 2018년 이후 단 한번도 분기 단위 순유출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컸다. 일회적인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부터 ESG 펀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전성기 시절의 수요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자금 유출이 지속될지 여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유럽 시장은 이미 ESG 펀드 규모가 커서 과거와 같은 자금 유입 회복은 어려울 것이고, 트럼프 재임 시기에 미국 시장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므로, 당분간 ESG 펀드 플로우에 대한 뉴스에서 좋은 소식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펀드 플로우는 특정 이벤트나 투자 심리 변화 등으로 인해 변동성이 비교적 클 수밖에 없는 지표이므로 보다 거시적인 그림과 함께 봐야 한다. 2025년 1분기 기준 유럽 ESG 펀드 자산은 2.7조달러이다. 12억달러의 순유출은 전체 자산의 0.04%에 불과하다. 아직 큰 흐름을 바꾸는 뉴스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가난한 세대, 가장 부유한 세대
모닝스타 보고서와 유사한 시기에 모건스탠리 지속가능투자연구소(Morgan Stanley Institute for Sustainable Investing)가 보고서(Sustainable Signals)를 발간했다. 글로벌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지속가능투자 관련 서베이를 실시한 자료다. 언론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으나 ESG투자 시장의 장기 전망을 파악하는데 꽤 유용한 자료를 담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년 대비 지속가능투자에 대한 관심이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과 2023년에 조사한 결과가 거의 유사하다. 미국과 유럽 외 지역은 설문 대상 설계가 달라져 직접 비교가 어려워 제외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차트는 세대별 ESG투자 관심도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는 X세대나 베이비부머 세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ESG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 Z세대는 무려 72%, 밀레니얼 세대는 69%가 ‘매우 관심이 있다’고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반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23%만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보유 자산의 차이와 비교해 보면 더 재미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기준으로 밀레니얼 이하 세대가 보유한 기업 주식이나 펀드는 전체의 8% 정도에 불과하며, 베이비부머 이전 세대가 70% 이상을 보유 중이다. 가장 적은 자산을 보유한 세대가 ESG투자에 대해 가장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압도적인 자산을 보유한 세대는 ESG투자에 관심이 별로 없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시간은 ESG투자의 편이다. 상속 등에 따른 부의 이전이 중장기적으로 ESG투자 시장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미국 금융시장조사업체 세룰리 어소시에이츠(Cerulli Associates)는 2024년부터 2048년까지 베이비부머 이전 세대로부터 약 124조달러가 후세대로 이전될 것으로 전망했다.
상품에서 프로세스로
친환경 제품과 친환경 생산 공정은 동일하지 않다. 친환경 제품은 특정 요건의 충족을 조건으로 하여 특정 라벨을 붙인 제품을 의미하는 반면, 친환경 공정은 생산 과정에서 환경 오염을 최대한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친환경 제품에 대한 수요는 경기 사이클, 친환경 라벨에 대한 불신, 일시적인 유행 등으로 인해 변동할 수 있다. 그러나 친환경 공정은 국민의 전반적인 환경 인식 상승을 기반으로 하여 규제를 통해 점차 강화된다.
ESG 펀드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기존 칼럼을 통해 여러 번 말했듯이 ‘ESG 펀드’는 ‘ESG투자’와 같지 않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ESG 펀드는 상품이고, ESG투자는 프로세스다. ESG 펀드를 운용하려면 ESG투자 프로세스가 필요하므로 ESG투자 안에 ESG 펀드가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다. 기후위기로 인해 ESG이슈에 대한 인식은 점차 고조되고 있으며, 유럽 연기금은 ESG 펀드 플로우와는 별개로 ESG 적용 기준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이로 인해 ESG 요건으로 인해 위탁운용사의 자금을 회수하거나 계약을 재검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보이지 않는 ESG투자의 추세는 비교적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다. 연기금은 위탁운용사들의 ESG투자 활동에 대해 더 많은 자료를 요구하고 있고, 자산운용사의 스튜어드십 코드의 이행 점검 제도도 도입될 계획이다. 이 모든 것이 ESG 펀드 플로우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단기 변동은 장기 추세와 늘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 추세이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일시적으로 하락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인간의 심리적 편향은 단기 변동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이러한 편향을 극복하지 못하면 겨울철 한파를 보고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조직 차원에서는 단기적인 변동에 대한 전술적 대응과 장기적인 추세에 대한 전략적 대응 모두 중요하다. 단기적인 변동을 면밀히 살피되 장기적인 추세를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 박세원 팀장은
박세원 팀장은 국내 ESG리서치 기관에서 ESG리서치 및 의결권행사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5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ESG전담부서를 맡아 ESG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인 ESG평가 모형을 비롯한 ESG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운용부서와 협력하여 ESG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