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재생에너지 규제 법안, 조용히 폐기 수순
미국 텍사스주 의회가 추진해온 반(反)재생에너지 규제 법안들이 이번 입법 회기 내 처리되지 못하고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청정에너지 전문 매체인 카나리 미디어(Canary Media)는 지난 30일(현지시각), 텍사스 상원이 통과시킨 반(反)재생에너지 법안 세 건이 하원 심의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회기 종료를 앞두고 자동 폐기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추가 수수료, 백업 전원, 가스발전 비중 확대…텍사스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어디로 가나?
해당 법안들은 ▲재생에너지 발전소에만 신규 수수료와 인허가 규정을 부과(SB 819)하고, ▲태양광·풍력 등의 설비에 가스 발전 백업을 의무화(SB 715)하며, ▲신규 발전설비의 절반 이상을 ‘급전가능 전원’으로 제한(SB 388)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모두 재생에너지 업계의 성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규제로 평가받아 왔다.
텍사스 상원이 통과시킨 첫 번째 법안(SB 819)은 대규모 풍력 및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에 새로운 수수료, 이격거리 요건, 인허가 규정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반면 화석연료 발전소에는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두 번째 법안(SB 715)은 대형 재생에너지 설비가 가스 발전을 백업 전원으로 의무 구매하도록 규정했다.
세 번째 법안(SB 388)은 신규 발전설비의 절반 이상을 배터리 저장을 제외한 ‘급전가능한(또는 공급조절형, dispatchable)’ 전원으로 채울 것을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가스 발전 비중 확대를 의도했다. 태양광과 풍력은 햇빛과 바람이 있을 때만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배터리가 없으면 급전가능한 전원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의 초기 논의 단계에서는 신규 설비의 50%를 가스 발전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세 법안은 텍사스 내 태양광, 배터리, 풍력 발전의 확대 속도를 크게 늦출 수 있는 조치로 평가됐다. 최근 이들 기술은 발전량 신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으며, 극단적 기상에도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이고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에너지 분석기관 오로라 에너지 리서치(Aurora Energy Research)는 4월 보고서에서 해당 법안들이 통과될 경우, 전력망 신뢰도 저하와 전기요금 상승이 동시에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텍사스 하원, 반(反)재생에너지 법안 사실상 무산
하지만 텍사스 하원의 회기가 오는 6월 2일 종료되는 가운데, 세 건 모두 정식 심의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텍사스 주의회 회기는 140일간 운영되며, 종료 이후에는 법안을 다시 상정할 수 없다. ‘텍사스 에너지와 전력(Texas Energy and Power)’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더그 루인(Doug Lewin)에 따르면, 이는 해당 법안들이 이번 회기 내에는 단독 법안으로 다시 상정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물론 다음 회기에 수정안이나 병합안 등으로 유사 입법 시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법안 무산은 텍사스 내 보수 진영과 산업계의 기류 변화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의 에너지 혁신 단체 ‘에너지혁신을 위한 보수적 텍사스 주민(Conservative Texans for Energy Innovation)’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화당 지지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텍사스 석유·가스협회(Texas Oil and Gas Association)’조차도 청정에너지 백업용 가스 발전을 의무화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 재생에너지 업계와 손을 잡은 사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입법 실패는 텍사스가 단순히 에너지 수급 문제를 넘어, 산업 경쟁력과 민심까지 고려한 전략적 전환점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향후 유사한 입법이 재논의될 가능성도 남아 있어 관련 동향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