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일본펀드 붐…수익률, 인플레, 지배구조 개혁이 견인

2025-06-16     유인영 editor
사진=언스플래쉬

일본 시장에 대한 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현지 전략에 특화된 헤지펀드들이 빠른 속도로 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일본의 기업지배구조 개혁, 디플레이션 탈피 등이 맞물리며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시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 굶주린 글로벌 자금…헤지펀드로 몰린다

OQ 펀드 매니지먼트(OQ Funds Management)는 2023년 9월 일본 퀀트 전략 기반 헤지펀드를 출범한 직후, 설정 한도인 2억5000만달러(약 3400억원)를 채우고 추가 자금 유치를 중단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맥쿼리 그룹(Macquarie Group) 출신 닉 버드(Nick Bird) 대표는 “개시 몇 주 만에 마감됐다”고 밝혔다.

홍콩계 센구 캐피털(Sengu Capital)은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수혜형 전략으로 10월 초 펀드 거래를 시작한 이후, 운용자산(AUM)을 3배 늘려 4억5000만달러(약 6100억원)를 달성했다. 홍콩 마이.알파 매니지먼트(MY.Alpha Management)는 2023년 초 일본 멀티전략 펀드를 외부 공개한 이후, 현재 약 7억달러(약 9500억원)를 운용 중이다.

이 같은 빠른 자금 유치는 아시아 헤지펀드 시장에서 보기 드물다. 그럼에도 센구 등 신생 헤지펀드에 전략적 자본을 제공하는 홍콩 HS그룹(HS Group)의 최고투자책임자(CIO) 마이클 개로(Michael Garrow)는 “일본 전략에 특화되면서도 기관투자 수준의 자금 규모를 수용할 수 있는 펀드는 매우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혁이 불렀다…헤지펀드, 일본에 다시 베팅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은 헤지펀드들의 최대 격전지였다. 환율, 금리, 전환사채, 주가지수 리밸런싱 등 다양한 전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부자 거래 단속,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을 거치며 시장 매력은 급감했다. 그 사이 중국은 자본시장 개혁으로 대체 시장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 기업의 자본효율 제고 움직임 등 구조적 변화가 겹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TOPIX(도쿄증권거래소 주가지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8.4%의 달러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같은 기간 MSCI 차이나 지수는 -0.1%를 나타냈다.

토픽스, S&P 500, MSCI 차이나 수익률 / 블룸버그

BNP파리바가 실시한 2024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2%가 “일본 자산 비중을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으며, 올해도 20%가 동일 응답을 했다.

일본에 대한 투자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것은 기존 행동주의 펀드들과 마찬가지로 기업과 직접 소통하며 주주수익률 개선, 지배구조 개혁, 자본효율 제고를 추진한 펀드들이다. 

일본 내에서 행동주주의 투자자로 널리 알려진 세스 피셔(Seth Fischer)가 이끄는 오아시스 매니지먼트(Oasis Management)는 현재 운용자산이 90억달러(약 12조2700억원)에 이르며, 이 중 대부분이 일본 인게이지먼트 전략에 집중돼 있다. 이피시모 파트너스(Effissimo Partners), 3D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3D Investment Partners), 이치고 애셋매니지먼트(Ichigo Asset Management)도 수십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인게이지먼트 펀드는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크고, 수년간 자금이 묶이는 구조이기에 장기 성향의 기금 투자자에게 매력적이다. 그러나 지배구조 개혁이 본격화하면서, 헤지펀드 전반으로도 자금이 확산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헤지펀드 전문 투자사 HS그룹의 마이클 개로는 “이제는 우량 기업들도 자발적으로 지배구조 개혁에 나서고 있다”며, “시장 전체, 모든 시가총액 구간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독립 헤지펀드는 '규모의 한계'에 직면해 있어

블룸버그에 따르면 TOPIX 지수 구성종목 1684개 중 약 3분의 1은 애널리스트 커버리지가 없는 상태다. 즉, TOPIX 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투자자의 주목을 덜 받고 있으며, 저평가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반면 미국 S&P1500 지수의 경우 이 비율은 5% 미만에 불과하다. HS그룹의 개로는 “저평가 주식을 선점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애널리스트 커버리지가 부족한 일본 주식시장이 숨은 종목 발굴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 블룸버그

로저스인베스트먼트어드바이저스(Rogers Investment Advisors)의 에드 로저스(Ed Rogers)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8개월간 일본에 특화된 신규 헤지펀드 운용사가 17곳 새로 출범했다”고 밝혔다. 2023년 말 이후, 일본 금융청은 자산운용 허브 육성을 위해, 은행과 보험사들이 신생 운용사에 자금을 배분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 독립 헤지펀드는 '규모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도쿄금융센터(Fincity.Tokyo)의 2024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기관투자자는 단일 운용사에 최소 5000만달러(약 680억원) 이상을 배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서섹스파트너스(Sussex Partners)의 파트너 패트릭 갈리(Patrick Ghali)는 일반적인 일본 펀드의 운용 규모는 8000만달러(약 1100억원) 이하, 인력 2~3명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소규모 펀드들은 쉽게 기관 자금을 받기 어려우며, 3억달러(4100억원) 이상 자금이 유입될 경우 수익률 저하 우려로 추가 투자를 받지 않는 곳도 많다. 

갈리는 유나이티드 매니저스 재팬(United Managers Japan)의 CEO 고시바 마사히로와 함께, 소규모 팀들을 한데 모은 멀티전략 펀드 스사노(Susanoh)를 출범했다. 그는 “일본은 알파 수익(시장 초과 수익)을 내기에 가장 좋은 시장 중 하나”라며, “실력 있는 트레이더들이 많지만, 이들 대부분은 운용 규모가 너무 작다. 이들을 결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