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연방재난관리청 단계적 폐지…"재난 대응은 주 정부가 책임져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허리케인 시즌 이후 단계적으로 해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미국 의회는 FEMA 구조 개편을 위한 초당적 법안 마련에 나섰다.
FEMA는 연방·주(州)·지방의 재난 대응을 통합 조율하는 24시간 작전 본부로, 1979년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설립됐으며, 현재 국토안보부(DHS) 산하에 있다.
본래 임시 대피소 운영, 잔해 정리 등 비상 상황에 한정된 연방 지원 기구로 설립됐으나, 현재는 학교·소방서·종교시설 등 공공 인프라 복구까지 폭넓게 지원하고 있다.
FEMA는 예외적이고 심각한 재난 상황에서만 연방 정부가 개입하도록 설계됐지만, 현재는 주나 지방정부들이 FEMA를 사실상 ‘상시 보조금’처럼 활용하면서 연방 지원에 의존하는 구조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복되는 재해에도 연방 자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면서,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재정 책임을 지는 구조가 약화됐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FEMA가 주 역할을 대신할수록, 국가 전체의 회복력(resilience)은 약화된다”고 비판했다.
“FEMA 단계적 폐지”…美 의회, 구조 개편 법안 준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재난 대응은 주지사의 책임”이라며 “FEMA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재난 지원금은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16일(현지시간) “FEMA의 핵심 권한은 1988년 제정된 ‘스태포드법(Stafford Act)’에 따라 의회 권한에 속해 있어, 대통령이 단독으로 핵심 기능을 폐지하긴 어렵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FEMA 폐지는 국가 재난 대응 역량 약화를 초래할 수 있어, 기능 조정과 구조 개편이 더욱 실효적인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FEMA 국장을 8년 간 역임한 크레이그 푸게이트(Craig Fugate)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재난 대응의 우선 책임은 주 정부에 있다”며 “FEMA는 대통령 명의로 연방 자원을 조정하는 기관일 뿐, 임시 보호 수준의 지원만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FEMA의 복잡한 지원 절차와 반복 보상 문제 등이 지적되자, 미 의회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구조 개편 법안 마련에 착수했다.
공화당 샘 그레이브스(Sam Graves) 하원 교통·인프라위원장과 민주당 릭 라슨(Rick Larsen)은 FEMA의 보조금 지급 방식을 ‘보험 방식’으로 전환하고, 수혜 지자체의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현 시스템은 재해로 파괴된 공공시설 복구비용의 75%를 FEMA가 보조하되, 피해 규모 파악, 설계 검토, 입찰 승인, 현장 점검 등 절차가 복잡하고 수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개정안은 복구 예상 비용을 사전에 산정하고, 설계자 인증만 거치면 FEMA가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행정 절차를 간소화했다.
또한 FEMA의 보조금을 수령한 지자체는 반드시 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동일한 재난에 대해 반복 보상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됐다. 재정 책임을 주 정부에 유도하고, 재해 예방을 강화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재난 규모에 따라 최대 2만명까지 동원되던 외부 계약 인력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푸게이트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FEMA 폐지가 구조개혁인지, 실질적 해체인지는 불분명하다”면서 “현 개편안이 실행된다면 FEMA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동시에 기존 역할 대부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FEMA, 고위 간부 잇따른 사임… 25% 인력 이탈
최근 FEMA 내부에서는 고위 간부들의 사임이 잇따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2일(현지시각), FEMA 국가대응조정센터(National Response Coordination Center)를 이끌던 제러미 그린버그(Jeremy Greenberg) 국장을 비롯해 매리앤 티어니(MaryAnn Tierney) 전 부국장 등 고위직 다수가 전날 사임했다고 보도했다.
FEMA는 성명에서 “조직 개편에 따라 일부 직원들이 퇴직했으며, 허리케인 대응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FEMA 정규직 인력의 약 25%가 이탈한 상태다. 최근에는 국립해양대기청(NOAA) 기상 전문가도 줄어들어, 기후 예보 정확도가 저하되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편, 블룸버그에 따르면 재난 지원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선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민주당 소속인 캘리포니아에 대한 지원을 거부한 전력이 있으며, FEMA 지원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주 상당수가 공화당 주라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뉴욕 유니언칼리지의 앤드루 모리스 교수는 “재난 구호가 정권에 대한 충성 여부로 결정된다면 매우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