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보수정당 EPP, '그린 클레임 지침' 철회 공식 요구
유럽 최대 보수정당 유럽국민당(EPP)이 유럽연합의 대표적 친환경 소비자 보호법안인 ‘그린 클레임 지침(Green Claims Directive)’ 철회를 공식 요구했다.
유럽의회와 EU 회원국 간 최종 협상이 오는 6월 23일 예정된 가운데, EPP가 유럽연합 환경위원 제시카 로스월(Jessika Roswall)에게 해당 지침을 철회하라는 서한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린 클레임 지침은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환경적 가치를 주장할 경우,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3자 검증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3년 3월 유럽집행위원회가 제안한 이 지침은 EU 27개국 전역에서 그린워싱을 근절하기 위한 일환으로 마련됐다.
소비자 보호를 핵심 목표로 하며, ‘친환경’, ‘자연’, ‘생분해성’, ‘기후중립’, ‘에코’와 같은 표현을 기업이 임의로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특히 탄소 상쇄만을 강조하는 마케팅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기업은 실제 배출을 줄인 후 잔여 배출량에 대해서만 상쇄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상쇄량은 '탄소 제거 인증 프레임워크' 기준에 따라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EPP는 해당 지침 절차가 과도하게 복잡하고 행정 부담이 크며, 비용 또한 높다고 지적했다. EPP 보고관들은 서한에서 “환경 주장에 사전 승인을 요구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며,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보고서에 따라 EU 글로벌 경쟁력 확보 필요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규제는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근 타협안에는 제품의 환경 영향을 평가할 때 '제품 환경 발자국(Product Environmental Footprint, PEF)'을 단일 기준으로 적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방식은 탄소 배출량이나 에너지 사용량 등 대규모 산업형 생산 방식에 유리한 지표만 반영돼, 지역 생산이나 유기농처럼 소규모의 지속 가능한 농업 모델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유렉티브에 따르면, 그린 클레임 지침은 2023년 제안된 이후 우파 의원들의 반발로 핵심 내용이 대폭 축소됐으며, 오는 23일 열릴 협상이 사실상 마지막이 될 전망이다.
녹색당 소속 그림자 보고관인 앨리스 바 쿤케(Alice Bah Kuhnke)는 “EPP는 소비자 보호와 기후 정책을 저해하고, 입법 절차 자체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럽의회 소식통 역시 “의석수가 가장 많은 EPP가 반대하면 입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NGO들도 반발… EPP 반대로 그린딜 정책 전반 축소될 수도
환경 NGO와 소비자 단체도 그린 클레임 지침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프랑스 소비자 단체 UFC 께쇼지르(UFC Que Choisir)는 지난주 프랑스 정부에 보낸 공개 서한에서 “현 지침안은 소비자가 제대로 된 정보를 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프랑스가 본회의 표결에서 기권해줄 것을 요청했다. 해당 단체는 지침 연기를 통해 ‘재정비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최소 4개국의 EPP 소속 대표단이 지침 철회에 반대 입장을 보였지만 전반적으로는 EPP가 그린딜(Green Deal) 관련 입법을 정리 및 축소하려는 기류가 우세하다는 평가다.
한편, EPP는 그린 클레임 지침 외에도 산림·토양 모니터링 법안 등 EU 그린딜 정책 중 아직 채택되지 않은 3개 법안에 대해 철회를 검토하고 있다. 산림 모니터링 법안은 EPP의 공식 반대는 없었지만, 유럽이사회의 미온적 입장으로 인해 EU 집행위가 자진 철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