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SG 전에 중국 CN-ESG가 있었다
최근 국내에선 국내 실정을 반영한 K-ESG 지표 개발에 나서는 등 한국의 특성을 반영한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에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국내 특성을 가미하고, 국제적인 인정도 고려한 한국형 ESG 지표를 개발할 것"이라며 K-ESG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보다 발 빠르게 ESG 기준을 만든 곳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 특성 반영한 CN-ESG 평가 시스템 구축...
글로벌 평가에 패널티 받는다 생각해
지난해 12월 중국 최대 보험 기업 중 하나인 핑안그룹과 중국경제정보원은 중국형 ESG 지표인 'CN-ESG 평가 시스템'을 발표했다. 국내외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10개 이상의 ESG 테마와 130개의 기본지표, 350개 데이터 포인트, 40개 이상의 산업 리스크 및 기회 매트릭스 지표를 통합했다. ESG 리스크를 통제하고, 평가 모델을 구축하고,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를 위해서다.
그러나 핵심 의도는 글로벌 ESG 평가 기준에서 자국 기업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국의 특수한 노동환경 등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는 등 '불리한 게임의 룰'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AXA SPDB 투자운용사의 주식투자 담당 양유빈 부이사는 지난해 6월 중국 사회투자포럼 정상회담에서 “국내 산업들이 국제적으로 죄악산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ESG 투자가 확산되면서 중국이 ESG 자금의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전통적인 죄악주(도박·담배·술)를 포함, 좌초자산으로 분류되는 석탄, 새롭게 ESG 리스크가 떠오르고 있는 광물 등 중국의 산업범위는 광범위하기 때문에 ESG 투자 기조가 확산될수록 자국에 불리하다는 얘기다.
중국 최대 펀드 하우스 한 곳인 E펀드의 윌슨 웨이 ESG 리서치 본부장은 지난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ESG 정상회의에서 "지난 몇 년간 해외 ESG 프레임워크가 중국 A주 평가에서 실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직원에게 대출을 제공하는 시스템은 G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중국의 996 근무제 등이 S에 영향을 미치는 등 글로벌 ESG 평가사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웨이 본부장은 “펀드매니저가 단순히 해외 표준을 참조하는 것에서 벗어나 국내화된 ESG 연구를 독자적으로 착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중국의 몇몇 문화는 해외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주일 중 하루를 쉬고 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을 하는 ‘996 근무제’가 대표적이다. ESG 평가기관 리피니티브(Refinitiv)의 전 일본 판매 담당자 비비 후는 “996 근무제는 ESG의 사회(S) 부분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인 직원의 편익을 침해하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인덱스 제공업체 MSCI는 지난 2019년 "996 근무제로 인한 과로로 직원들의 건강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주의한 바 있다.
글로벌 흐름인 다양성에 대해서도 중국은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다. AXA 양유빈 부이사는 "이사회 내에서 여성의 비율은 회사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다"라며 “여성 리더가 많은 일본 기업들에게 더 높은 지배구조(G) 점수를 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배구조는 성별 요인보다 사례별로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사회 내 성별 다양성을 추구하는 글로벌 기조와 모순된 반응이다. 이에 영국의 자산운용사 헤르메스와 JP모건, 스테이트 스트릿은 “ 기업들은 최소한 20%의 여성을 이사회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중국에 반박하기도 했다.
자체 ESG 시스템 만들어
자국 기업 공시 끌어올리겠다는 계산도
부족한 정보공개도 중국 기업의 평가를 떨어뜨린다고 봤다. 전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중국 A주 시장의 ESG 보고서 발간 비율은 2009년 371건에서 2020년 1021건으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해외로부터는 박한 평가를 받는다. 케임브리지 어소시에이트 애런 코스텔로 아시아 지역 책임자는 "데이터 공개 환경도 매우 열악하며 품질 면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나쁜 수준에 올라 있어 접근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ESG에 대한 접근 방식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중국 경영자들이 글로벌 경영자와 다르게 접근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다“고 덧붙였다.
중국도 해외의 평가를 이미 알고 있다. 중국녹색금융위원회 마준 위원장은 “중국에서는 ESG 공시 요구사항이 절반에 불과해 주요 기업들만 정의된 정보를 공개하도록 규정돼 있고 나머지 A주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점이 문제”라며 정보 공시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CN-ESG 모델을 도입하면, 이 평가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정보 공시를 해야만 한다. 자국이 관여할 수 있는 정보 공시 시스템을 구축하고, ESG 정보의 양과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 ESG 평가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비영리 기후 본즈 이니셔티브의 중국 프로그램 매니저인 샤오환은 중국 사회투자포럼에서 "우리는 새로운 중국의 ESG 평가 시스템이 과도기를 겪으면서 유럽연합(EU)이 시행하고 있는 것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