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배당·재정여력, 셋 다 놓칠 수 없다…유럽 전력망 ‘3중 딜레마’
유럽의 전력망 확충 계획이 자금 부족에 직면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과 전력 수요 급증에 따라 역대급 투자가 예정돼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재원 마련이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로이터는 10일(현지시각)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보고서를 인용해, 유럽 전력망 운영사(TSO)들이 향후 5년간 계획한 3450억유로(약 554조원) 규모의 투자 중 약 2500억유로(약 402조원)의 자금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력 수요 폭증…지난 20년보다 더 많은 그리드 필요
BCG에 따르면 유럽의 15개 주요 TSO들은 2025~2029년 전력망 확충 및 현대화에 3450억유로를 투입할 예정이다. 이는 직전 5년(2020~2024년) 대비 3배 규모다. 2024년 투자액만 해도 전년 대비 약 50%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투자의 배경에는 재생에너지 통합 가속화, 노후 인프라 교체, AI·데이터센터 확산, 전기차 전환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4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체코의 광역 정전 사태는 전력망 회복력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하지만 계획 대비 확보 가능한 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보고서는 향후 5년간 TSO들이 창출할 수 있는 영업현금흐름을 1200억유로(약 193조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배당금 250억~300억유로(약 40조~48조원)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자금 부족분은 2500억유로(약 402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투자 유치 어렵고, 부채도 한계…새 금융 구조 필요
BCG는 유럽은 향후 5년간 지난 20년보다 더 많은 전력망을 깔아야 한다며, 기존 금융 구조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재 유럽 TSO들은 대부분 고부채 상태로, 상장사는 신규 증자 여력도 제한적이다. 여기에 TSO를 둘러싼 세 방향의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우선 정책 당국은 전력망 확충을 빠르고 유연하게 추진하길 원하지만, 민간 투자자는 여전히 TSO를 안정적인 배당주로 인식한다. 또한 설비투자에 따른 자본조달 확대가 필요함에도, 재무구조 악화를 우려해 추가 차입이나 지분 희석에 대한 거부감도 큰 상황이다. BCG는 이를 ‘성장 기업 vs 배당주’, ‘확장 요구 vs 자본 여력’, ‘공공성 vs 수익성’ 사이의 구조적 긴장으로 진단했다.
보고서는 재정 공백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정부 출자 확대 ▲정부 보증 기반의 금융 조달 ▲비핵심 자산 매각 ▲배당 축소 등을 제시했다. 특히, 정부와 규제당국이 인프라 투자에 적합한 수익률 체계와 비용 분담 구조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 공동 저자인 톰 브리스(Tom Brijs) BCG 파트너는 “그리드 인프라에 대한 금융 구조에 혁신이 없다면, 유럽은 소비자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재생에너지를 갖게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