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투자은행, 고탄소 인프라에 70억유로…‘기후은행’ 정체성 흔들
유럽투자은행(EIB)이 ‘기후은행’을 자처하면서도 고탄소 운송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클린테크니카는 9일(현지시각), 환경단체 T&E의 분석을 인용해 EIB가 도로 건설, 공항 확장, 바이오연료 등 기후 목표에 반하는 사업에 70억유로(약 11조2508억원) 이상을 대출했다고 보도했다.
‘기후은행’ 명분 무색… 도로·공항·바이오연료에 자금 몰려
T&E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EIB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도로 인프라에만 61억유로(약 9조8049억원)를 대출했으며, 이 중 대부분이 신규 도로 건설에 집중됐다. 이탈리아 볼로냐공항 확장에는 9000만유로(약 1447억원), 스페인의 공항 운영사 아에나(Aena)에는 8억유로(약 1조2859억원)가 집행됐다. 이는 EIB가 스스로 채택한 '기후은행 로드맵' 원칙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바이오연료 관련 프로젝트에도 총 11억유로(약 1조7682억원)가 투자됐다. 특히 스페인 석유사 렙솔(Repsol)의 바이오연료 공장에는 1억2000만유로(약 1929억원)가 투입됐는데, 이 공장은 지속 가능성 논란이 있는 수입 원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T&E는 이러한 투자들이 실제로는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고탄소 인프라를 고착화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철도·도시 교통이 모범 사례… 향후 로드맵 전환 시급
긍정적인 사례도 있다. EIB는 철도 현대화에 236억유로(약 38조원), 친환경 도시 교통에 133억유로(약 21조원)를 투자해 전기버스, 보행·자전거 인프라 등 도심 내 탄소 저감 사업을 적극 지원했다. 이는 공공금융이 그린 전환을 어떻게 가속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EIB는 올해 말 2026~2030년 기후은행 로드맵을 갱신할 예정이다. T&E는 향후 로드맵에서 신규 도로 및 공항 확장, 바이오연료에 대한 대출을 중단하고, e-연료·수소 기반 항공·해운, 유럽산 배터리와 부품 등 청정기술에 대한 과감한 디리스킹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민간 투자가 어려운 배터리 소재·부품 분야나 e-연료 생산 인프라에 대한 선제적 금융 지원이 유럽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틸 아이히러(Till Eichler) T&E 지속가능금융정책 담당자는 “EIB가 유럽의 기후·산업 전략과 진정으로 발맞추려면, 저탄소 인프라 중심의 금융 로드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