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리스크에 보험사들 ‘재난채권’ 발행 사상 최대... 상반기만 23조 돌파
보험사들이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재난채권(Catastrophe Bond, 이하 캣본드)' 발행을 사상 최대 규모로 확대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올해 들어 전 세계 캣본드 발행 규모는 총 181억달러(약 23조9000억원)로, 지난해 전체 발행액인 177억달러(약 23조4000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보험 및 재보험 전문기관 Aon증권 분석에 따르면, 올해 1~6월 발행된 신규 캣본드 한도는 약 172억 달러(약 23조6800억원)로, 2024년 전체 발행 규모인 170억 달러(약 23조5600억원)를 넘어섰다.
기후 리스크 증가와 재보험료 상승 등 구조적 요인이 맞물리면서, 보험사와 정부 기관의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기후위기로 인한 역대급 손실 기록… '실질적 경제 리스크'
최근 텍사스 홍수, 유럽 폭염, 산불 등 이상기후로 인해 보험사 손해율이 크게 악화되면서 기후위기가 '실질적 경제 리스크'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자연재해로 인한 보험 손실은 201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세계 보험업계가 지난 20년간 기후변화로 입은 손실이 총 6000억달러(약 861조 원)에 달했다.
스위스 재보험사 스위스리(Swiss Re)는 2020년대 들어 매년 1000억달러(약 132조원) 이상의 자연재해 손실이 발생하고 있으며, 향후 최악의 해에는 3000억달러(약 396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Aon증권 리처드 페네이 대표는 FT에 "보험사들이 증가하는 재해 리스크를 더 이상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어 캣본드 시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발행된 캣본드에는 미국 최대 보험사 스테이트팜, 플로리다 주정부 산하 보험사 시티즌스 등이 포함됐다. 두 보험사는 최근 잇따른 허리케인과 산불로 인해 막대한 자금 손실 압박을 받아왔다.
기후위기로 인한 극단적 자연재해가 일상화되면서 보험산업 전반에 구조적 전환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재해 리스크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파라메트릭 등 대체 리스크 전가 수단이 주목받고 있으며, 자본시장을 통한 리스크 분산 수단으로 캣본드가 핵심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캣본드, 보험사 리스크 회피 수단으로 급부상
캣본드는 허리케인, 산불, 지진 등 특정 재난이 발생할 경우, 투자자가 보험사 대신 손실을 부담하는 구조의 채권이다. 재난이 발생하지 않으면 투자자는 보험사로부터 일정 수익을 받지만, 발생할 시에는 원금 일부 또는 전부를 상실할 수 있다.
캣본드는 시장금리 대비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동시에, 전통적 금융시장과의 상관관계가 낮은 점에서 투자 다변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보험사는 다년 구조를 통해 고정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투자자는 담보를 활용해 손실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 이해가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악사자산운용(AXA Investment Managers) 산하 대체투자 부문의 프랑수아 디베 대표는 "보험사가 부담하는 위험이 특정 재해에 집중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어 점차 더 많은 위험을 외부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텍사스풍재보험조합(TWIA), 플로리다 시민재산보험공사 등 정부 및 준정부 기관들도 전통 재보험을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캣본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스위스리가 집계한 캣본드 수익률 지수는 최근 1년간 14%, 최근 5년간 50% 이상 상승했다. 보험기술기업 데카르트 언더라이팅의 탕기 투푸 대표는 "자산운용사 입장에선 시장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새로운 분산 투자처로 캣본드를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발생한 허리케인 헬렌과 밀턴 등은 큰 손실을 일으키지 않아 채권 보유자들이 수익을 온전히 확보할 수 있었던 점도 긍정적 신호로 작용했다. 탕기 투푸 대표는 "캣본드 손실이 발생하려면 2005년 카트리나급 허리케인이나 미국 대지진 수준의 극단적 재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TF 상장, 높은 수익률로 재보험 아닌 캣본드 택해
올해 4월에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세계 최초의 캣본드 상장지수펀드(ETF)도 등장했다. 컨설팅업체 레딩턴의 피트 드루엔키비츠 투자책임자는 FT에 "현재 채권 시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수익률을 제공한다"며,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제공하는 캣본드가 더 매력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재보험 비용 상승도 캣본드 확대의 배경으로 꼽힌다. 재난보험 매체 아르테미스 편집장 스티브 에반스는 "이전에는 접근이 어려웠던 대형 기관투자자, 멀티전략 헤지펀드, 대학 기금 등도 캣본드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Aon증권 자회사인 페네이 대표는 “자산가치 및 복구 비용 상승에 따라 보상한도가 상향 조정되고 있으며, 재보험이 아닌 캣본드로 이를 보완하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리 상승으로 인해 담보 자산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늘어나면서, 투자자에게도 매력적인 구조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