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배출권 유상할당 본격화…감축 넘어 산업 전환 도구돼야
정부의 배출권 유상할당 확대 기조가 단순한 감축 수단을 넘어, 산업 전환을 유도하는 핵심 정책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배출권거래제 제4차 계획기간 유상할당 강화의 필요성과 추진방안’ 정책 토론회에서는 정부, 산업계,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참석해 유상할당 확대의 방향성과 추진 방안을 논의했다.
전기요금 인상과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로 속도를 내지 못했던 유상할당 강화 논의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과 에너지 수요관리 필요성이 부각되며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발전 부문 유상할당 확대, “탄소 가격 통한 감축 유도 가능”
권동혁 BNZ파트너스 부대표는 “유상할당 확대는 탄소 가격을 제품에 전가시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한 감축 유인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 도구”라며 “특히 발전 부문은 전력 도매시장에서 탄소 비용이 계통한계가격(SMP)에 반영되는 구조를 구현해낼 수 있으므로, 유상할당 비율 확대의 실익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2030년 기준 유상할당 비율을 50%로 확대하고 배출권 가격이 톤당 5만원 수준까지 상승하더라도, 가정당 월평균 전기요금의 추가 부담은 약 1700원 수준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충분히 감내 가능한 수준이며, 경매 수익의 일부를 산업계나 취약계층에 재분배하는 보완장치도 도입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김용건 연세대학교 교수는 “발전 부문에 대한 유상할당 확대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나, 전체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연구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GDP 증가, 고용 확대, 배출량 감소 등 구조적 이점이 확인됐다”며, 단순 비용 인식에서 벗어나 경제 내 자원 재배분 구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유상할당 수입을 근로소득세 인하나 전기차 보조 등으로 재투자하는 시나리오에서 GDP 증가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며, “전기요금이 다소 오르더라도 이는 비용 전가에 따른 정상적 조정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시민사회 “유상할당 확대 불가피”…산업계 “시행 방식 정교화 필요”
패널 토론에서는 유상할당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데 대체로 공감이 형성됐지만, 시행 방식과 산업별 부담 조정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하윤희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기업에 탄소비용을 전가하려면 동시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술적 투자가 가능하도록 재정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며 “기후대응기금의 방향성도 온실가스 감축과 경제 체질 강화 중심으로 재편돼야 하며, 단순 보조금 방식에서 벗어나야 기업 수용성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은성 넥스트그룹 부대표는 “전기요금 상승 완화에 유상할당 수입을 활용해야 한다는 권동혁 부대표의 주장에 공감한다”며, “철강·석유화학 등 산업 부문의 탈탄소화 핵심은 결국 전기화 기술이며, 이를 위한 저렴한 재생에너지 조달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시민사회 대표로 참석한 조혜원 플랜1.5 활동가는 “배출권거래제가 다배출 업종에 과도한 무상할당으로 실효성이 약화됐다”며, 유상할당 확대를 통한 기후기금 재원 확보와 산업 전환 촉진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산업계 측을 대변하는 김녹영 대한상공회의소 탄소감축인증센터장은 “탄소중립 투자가 수익 불확실성과 전기요금 부담 등으로 산업계에 실질적 어려움을 주고 있다”며, 유상할당 확대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은 인센티브 중심의 GX(녹색전환) 정책을 통해 산업 전환을 유도하고 있는데, 우리도 경쟁력 유지 차원에서 유사한 지원 전략과 전환금융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공 부문의 대표로서 문양택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정책과장도 참석했다. 문 과장은 “국내 전력시장은 민간 자유시장 기반의 해외 사례들과 구조적으로 다르므로, 유럽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보다는 그 개선 과정을 참조해야 한다”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GDP 증가와 같은 결과를 그대로 기대이익으로 삼기보다, 정책 효과를 다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발전 부문 유상할당 확대와 간접배출 규제 간의 관계를 두고도, 제도 설계 방향에 대한 질의와 의견 제시가 오갔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기요금은 여전히 정부 통제 하에 있고, 산업계는 전력 효율화 외엔 별다른 감축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며, “현실적인 전가 구조 없이 간접배출 관련 규제만 축소될 경우 오히려 산업계 감축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김용건 교수는 “기후환경요금에 배출권 비용이 제대로 반영된다면 소비자 전가가 가능하지만, 정부 개입으로 반영이 제한될 경우 간접배출 규제를 폐지하면 수요관리가 어렵다는 지적에 동의한다”고 밝히면서, 요금 전가 여부에 따라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환경부 김마루 기후경제과장도 “발전 부문 유상할당 확대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간접 규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향후 정책 설계 시 이 연계 구조를 면밀히 검토해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