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기후규제 뿌리 뽑는다…美 EPA '위해성 판단' 철회 강행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9일(현지시각) 16년간 미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뒷받침해 온 핵심 근거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환경보호청(EPA)은 이날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공중보건과 복지에 위험하다고 결론지은 '위해성 판단'을 철회하는 방안을 공식 제안했다고 블룸버그, 폴리티코, ABC뉴스 등이 보도했다.
이 판단이 폐지되면 발전소·자동차·석유시설 등의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의 법적 근거가 사라져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 능력이 심각하게 약화될 전망이다.
연간 540억달러 절감 내세워...EPA 16년 규제 기반 해체
리 젤딘 EPA 청장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함께 행사에서 "2009년 판단에는 전례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았고, EPA 조항이나 선례에 포함되지 않은 억지 논리로 가득했다"고 비판했다.
젤딘 청장은 이번 조치를 “미 역사상 최대 규모 규제 완화”라고 평가하며, "경제를 위해 규제 기관을 개혁하라는 유권자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차량 배기가스 기준을 비롯해 온실가스 배출 관련 규제를 전면 폐기해 매년 540억달러(약 75조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연방기관의 법률 해석 권한을 제한한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EPA에는 온실가스 규제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젤딘 청장은 "의회가 청정대기법을 개정해 온실가스 규제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면 EPA도 이에 따를 것"이라는 조건부 입장도 밝혔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행정부가 별도로 과학자들에게 기후변화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은 과학자들의 객관적이고 데이터 중심적인 기후변화 분석을 통해 정책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젤딘 청장은 이 제안이 연방관보에 게재된 뒤 45일간 공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환경단체·산업계 엇갈린 반응...법정 공방 예고
환경 법률단체 어스저스티스의 아비게일 딜런 대표는 "EPA가 오늘 발표로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끝났음을 분명히 알리고 있다"며 "산업계에는 오염물질을 더 많이 배출해도 된다고 하고, 기후 재난으로 고통을 겪는 모든 이들에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산업계는 환영 입장을 보였다. 미 트럭운송협회는 조 바이든 전 행정부의 배기가스 규제가 산업을 망치고 공급망을 마비시켰을 것이라며 EPA의 조치가 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드자동차도 바이든 정부의 규제 대신, 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는 안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EPA는 이번 조처로 소송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으며, EPA가 법정공방에서 패소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블룸버그와 AP뉴스는 전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기에 EPA 대기 부문 사무관을 지낸 제프 홈스테드는 "내가 들은 바로는 위해성 판단 철회가 법정에서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우려된다"며 "그렇게 되면 값비싼 바이든 기후변화 규제들이 모두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단체 천연자원보호협회의 데이비드 도니거 기후정책 책임자는 "EPA가 2009년 기준에 모순되는 판단을 내리고 법정에서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