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SBTi가 무역장벽이 되는 시대, 우리는?

2025-07-31     임팩트온(Impact ON)

최근 영국 정부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SBTi(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 승인’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 등 한국 자동차 기업이 영국 시장에서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단지 산업 뉴스 한 토막이 아니다. 민간 ESG 이니셔티브가 사실상의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신호다. 즉, 민간 규범이 규제가 되어, 시장 장벽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SBTi는 유엔글로벌콤팩트,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 WWF(세계자연기금), WRI(세계자원연구소) 등 글로벌 시민사회 주도 기관이 설립한 탄소감축목표 검증 플랫폼이다. 기업이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파리기후협정의 1.5℃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과학적으로 평가해준다. 원래는 ‘자발적 ESG 이행 기준’의 하나였던 이 체계가 이제는 국가 정책과 제도, 그리고 시장 진입 자격의 실질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SBTi는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100% 재생전력 사용을 요구하는 RE100, 공급망의 기후 경영 성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CDP, 투자 유치의 기준이 되고 있는 GRI/ISSB 등의 ESG 공시 기준, 열대 작물의 수출 제한으로 작동하는 RSPO(지속가능한 팜유 인증), 글로벌 의류 브랜드들이 적용하는 텍스타일 익스체인지(Textile Exchange), ZDHC(유해화학물질 제로배출협회) 등의 지속가능 섬유 기준 등이 모두 민간 주도의 비관세 무역 장벽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규범이 우리 기업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한 조건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SBTi는 스코프1·2뿐만 아니라 스코프3, 즉 공급망 전체의 배출량까지 감축 목표에 포함한다. 이는 전력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고, 공급망 국산화율이 높은 한국 기업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SBTi는 단순한 공시가 아니라 실제 검증과 승인을 요구하기 때문에, 소극적 대응으로는 버틸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기업들은 이러한 추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하루빨리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우리 자동차 기업은 빨리 SBTi에 참여하여 과학기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을 약속하고, 실천 계획을 공표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작업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의 역할은 단순한 산업 보호를 넘어 산업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국내 기업들이 SBTi 등 국제 기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비관세 무역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제도적·기술적 인프라를 혁신하는 것이 시급하다.

현안이 되는 SBTi 무역장벽을 넘기 위해서 정부는 SBTi 목표 수립 가이드라인 및 지원센터 구축, 스코프3 배출량 산정 지원을 위한 공급망 배출 데이터 플랫폼 개발, RE100·SBTi 가입 기업에 대한 세제·금융 인센티브 제공, 국제 이니셔티브와의 협업 및 국내 인증제도와의 연계 체계 구축 등의 혁신을 위한 기술적, 제도적, 재정적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ESG 기반의 글로벌 규범 확산을 고려할 때, 정부의 외교 및 통상 정책에도 ESG 기준 대응 전략을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통상협정에 ‘공정한 ESG 규범 채택’ 원칙을 삽입하거나, 국제 이니셔티브에 대한 감시 및 협력 채널을 확보하는 등의 전략적인 대응도 필요할 것이다.

이제 한국은 ESG 규범의 ‘수용자’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설계자’로 도약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이들 민간 이니셔티브에 의한 규범은 이미 상품의 품질이나 가격보다 더 중요한 시장 진입의 열쇠가 되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이 이제 ESG 기준을 얼마나 앞서서 준비하고, 얼마나 투명하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가 시대의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이제 ESG 규범은 단지 '윤리'가 아니라 기업 경쟁력과 국가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전략이 되고 있다. 빨리 대응하는 자가 이긴다.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국내 ESG 전문가로 꼽힌다. 양춘승 상임이사는 서울대 경제학 학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 석박사 출신으로 2007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설립을 주도했고 현재까지 상임이사를 맡고 있으며,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양춘승 이사는 2008년에 국내 최초로 글로벌 금융기관 주도의 기후 관련 정보공개프로젝트인 CDP를  국내에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이후 RE100, EV100(전기차 전환 캠페인), PCAF(탄소회계 금융협의체), SBTi 등 국제적인 이니셔티브를 도입하며 우리나라 금융과 기업의 지속가능성 경쟁력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