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I는 역차별”…트럼프 정부, 법무부 지침으로 공공기관 압박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기금을 받는 기관들에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을 제한할 것을 요청했다.
로이터는 30일(현지시각) 미국 법무부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9페이지 분량의 비구속적(non-binding) 메모를 연방기관에 배포했다고 보도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연방기금 수령기관의 정책 변경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메모는 트럼프 대통령이 1월 재임 시작 이후 공공부문 전반의 DEI 정책 해체를 추진해온 흐름의 연장선으로, 학력 기반 장학금부터 채용 기준, 교육 훈련까지 DEI와 관련된 주요 실무 사례들을 '차별적'이라고 명시했다. 메모는 특히 연방기금이 DEI 활동을 수행하거나 지원하는 제3자에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저소득층 또는 특정 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인종·성별 결과를 유도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될 경우 위법 소지가 있으며, ▲‘퍼스트 제너레이션’(1세대 대학생), ▲지리적 소외 지역, ▲문화적 역량 및 배경 등을 지원 기준으로 삼는 것도 사실상 인종·성별을 대리(proxies)하는 수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퍼스트 제너레이션 대학생’은 부모 중 누구도 4년제 대학 학위를 취득하지 않은 가정 출신의 학생을 뜻한다. 즉, 가문이나 가족 내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하거나 졸업하게 되는 사람이다. 미국에서는 사회적·경제적 취약계층 또는 교육 기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으로 분류되며, 이들을 위한 장학금, 진학 지원 프로그램, 멘토링 등 다양한 지원 정책과 DEI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왔다.
법무부의 이번 입장은 2월 미국 교육부가 학교 내 DEI 정책에 대해 보낸 ‘친애하는 동료(Dear Colleague)’ 서한보다 훨씬 강경하고 포괄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서한은 연방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었지만, 4월 연방법원은 해당 서한의 집행을 일시 중단시킨 바 있다.
이번 메모를 작성한 팸 본디(Pam Bondi) 미국 법무장관은 특히 ▲소수집단 전용 학습공간, ▲다양성 워크숍, ▲채용 과정에서의 ‘문화적 배경 설명’ 요구 등 기존에 ‘정치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대학 내 관행까지 문제 삼았다. 또한 여성 공간에 트랜스젠더 여성을 포함시키는 것이 여성의 타이틀 IX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트럼프 1기부터 DEI 단계적으로 철폐, 이번 조치도 같은 연장선
트럼프 행정부는 첫 임기 시작부터 정부 내 DEI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철폐해 왔다. 관련 부서 인력 다수를 해고하고, 연방기관 내 DEI 교육도 중단시킨 바 있다. 이번 메모는 그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연방기금이 지원되는 모든 기관에 DEI 적용 중단을 사실상 촉구한 첫 종합적 지침이다.
법무부 메모는 비구속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연방기금 수령자들에게는 정책 변경을 압박하는 실질적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미국 내 일부 민간 기업들도 자발적으로 DEI 이니셔티브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DEI는 역사적 차별을 경험한 소수집단(흑인, 여성, LGBTQ+, 장애인 등)의 포용을 목표로 도입된 정책으로, 교육·고용 현장에서의 차별 해소, 채용 다양성 확보, 임금 격차 개선 등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보수 진영은 DEI가 ‘역차별’을 유발하고 실력 기반의 채용 질서를 훼손한다며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이번 메모 역시 그러한 입장을 반영해, “모든 기준은 보호된 특성(인종, 성별 등)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적용돼야 하며, 학업 성취도나 경제적 어려움 같은 객관적 지표를 중심으로 판단하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미국 교육정책 전문가 로버트 켈첸, 테네시 대학 교수(Robert Kelchen, a professor in the University of Tennessee)는 “지금은 사실상 모든 학생을 다 받거나, 오직 시험 점수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유일하게 법적으로 안전한 방법”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