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보완입법, “지금 2회초 단계…공감 축적되면 본회의까지 간다”
- 물적분할·자사주 소각 등 정기국회서 본격 논의 - 정치권 “시장 공감이 핵심 동력”…투자자 “기업 행동이 따라와야”
상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제도 도입 여부를 정치적 이슈로 보기보다는 시장 신뢰 회복과 구조 개선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30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해외 및 국내 장기투자자들이 보는 상법 보완입법 간담회’에서는 정치권, 투자기관, 지배구조 전문가들이 모여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자사주 소각 등 핵심 보완입법의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제 9회말 중에서 2회초 정도 왔다고 본다”며 “단순한 법안 처리 여부보다도 장기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펀더멘털 개선이 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법 개정은 ‘펀더멘털 개선’의 출발점… “구조적 시장 신뢰 회복 필요”
이번 간담회에서는 상법 개정이 단순한 규제 강화나 반(反)기업 조치가 아니라, 시장 신뢰를 회복하고 장기투자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제도적 기초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 이머징마켓 대표는 한국 시장의 구조적 전환을 ‘3단계 리레이팅’ 프레임으로 설명하면서, 한국은 이번 법안 개정을 통해 1단계인 ‘탈출 시장에서 기대 반영 시장으로의 전환’ 초입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2단계 지속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한 대만과의 “밸류에이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3단계 프리미엄 마켓에 도달한 일본처럼 되기 위한 “10년 프로젝트가 지금 막 시작됐다”며 이제는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태도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다.
최준철 VIP자산운용 대표는 “밸류업 정책과 상법 개정을 각각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밸류업의 핵심이 ROE와 자본비용을 중심으로 한 수익성 개선과 주주환원이라면, 상법 개정은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을 계기로 이사회가 ‘최대주주의 거수기’라는 인식을 벗어나, 독립성과 책임을 갖춘 글로벌 스탠다드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사의 민사상 책임 강화를 통해 “과거 형사 중심의 왜곡된 책임 구조에서 벗어나, 판례 축적을 통한 실질적 행동규범 정립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목소리를 낸 투자자에 대한 보상 시스템과 불이익 없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일본의 사례를 언급하며 “기업 감시활동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센터장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상장 이슈와 관련해 “중복상장에 따른 주주 충실 의무 위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상장이 불가피하다면 기존 지주회사 주주에게 우선 공모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의 절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처럼 이날 간담회에서는 상법 개정이 ‘정부 대 기업’의 대립 구도나 정쟁 이슈가 아니라, 시장 구조의 내적 개선과 장기 투자 기반을 위한 조건이라는 점에서 제도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발언자들은 기업 주도의 신뢰 회복 노력과 함께, 제도적 보완 없이는 구조적 변화가 어렵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집중투표제는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는 점에 의견 모여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는 이번 상법 개정 논의의 핵심 이슈 중 하나로 꼽힌다. 간담회에 참가한 자산운용 전문가들은 집중투표제를 시행하지 않는 해외와 다르게 한국은 자본시장의 구조적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짚으며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준철 대표는 “일본은 상호지분 보유로 명확한 최대주주가 없는 경우가 많고, 미국은 이사회가 주주 전체를 대표하도록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어 대주주의 독단이 어렵기 때문에 굳이 법제화가 필요하지 않지만, 한국은 40%대 지분만으로도 경영을 좌우할 수 있는 구조”라며 “이런 환경에선 집중투표제가 최소한의 균형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유경 대표 역시 “한국 기업들은 지배구조 유형에 따라 세 부류로 나뉘는데, 상당수는 지배권을 확보한 대주주가 사실상 주총과 이사회를 형식적으로만 운영하는 상태”라고 지적하며, “이 같은 상황에선 집중투표제를 통해 소액주주가 최소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이나 금융지주 등은 내부 권력 경쟁이 심해 장기 투자자로선 리스크가 크다”며, “결국 이런 구조 속에서 일반 개인투자자들이 리스크를 떠안게 되기 때문에, 집중투표제는 이들을 보호하는 공정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중투표제 도입으로 인해 경영권 위협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산업계에서 제기되기도 하나, 이에 대해 최준철 대표는 “견제와 감시의 장치일 뿐, 과반수 확보 없이 경영권을 탈취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오히려 공포 마케팅으로 제도의 본질을 흐리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감담회에 참석한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자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 제도개선의 추진 방향을 설명하며 “2회 초에 들어선 상황이라는 것에 동의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배임죄 요건 완화, 물적분할 규제 등 추가적인 주요 제도 개선안이 오는 9월 정기국회를 중심으로 본격 논의될 예정임을 시사하며, “사회적 필요성과 시장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본회의까지 갈 수 있다. 코스피 4000~5000 시대를 논의하려면 장기 성장 전략과 사회 구조 개혁이 함께 가야 한다”며 사회적 공감 축적이 핵심 동력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