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7500억달러 美 에너지 수입 합의…기후 목표·공급 현실 '충돌'

2025-08-03     김환이 editor

유럽연합(EU)이 향후 3년간 미국으로부터 약 7500억 달러(약 1049조원) 규모의 화석연료 및 원자력 에너지 수입 협정을 체결했다고 31일(현지시각) 밝혔다. 이번 협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부과 압박 속에서 '역대 최대 거래'로 성사됐으며, 액화천연가스(LNG)와 석유, 핵연료 등을 포함한다.

EU는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유럽 최대 환경단체인 유럽환경국(EEB)은 이번 협정이 EU의 2030년 중기 탈탄소 목표에 근본적으로 모순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제 러시아 에너지는 필요 없다"며 "미국산 LNG가 더 저렴하고 우수하다"고 밝혔다.

사진=chatgpt 이미지생성

 

전년 대비 에너지 수입 '4배' 늘려야... 미국 공급 부족으로 현실성 의문 제기

그러나 이번 협정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탯(Eurostat)에 따르면, 2024년 EU의 미국산 석유·가스 수입액은 약 830억달러(약 110조원)에 그쳤다. EU가 이번 협정을 이행하려면 연간 에너지 수입량을 2500억 달러(약 350조원)로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려야 한다. 

EU가 전년 대비 연간 1000억유로(약 159조원) 이상을 추가로 조달해야 하지만, 문제는 미국의 공급 여력이다. 2024년 미국의 석유·가스 에너지 전체 수출액은 약 1660억 달러(약 232조원)에 그쳐, 이번 협정 목표치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이에 이번 협정의 실제 이행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EEB의 기후·에너지 국장인 루크 헤이우드는 "3년 만에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세 배로 늘리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EU의 중기 탈탄소화 목표를 탈선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번 에너지 협정은 EU 기후목표와 양립할 수 없으며, EU는 이보다는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 전기화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물류·운송 인프라 등 현실적 제약을 고려할 때 EU의 정유 시설이 미국산 원유를 대량 처리하기 어려우며, EU집행위가 회원국이나 민간 기업에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강제할 수단도 없다는 점도 추가 지적됐다.

이에 일부 외신들은 이번 협정을 두고 실질적인 에너지 정책이라기보다는 철강, 알루미늄 등 통상 마찰을 해소하기 위한 상징적 조치로 평가하고 있다.

 

러시아 이어 미국 '의존 반복'…환경단체 "기후 정책에 치명타" 비판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번 협정이 EU의 전략적 에너지 자립과 기후 목표에도 배치돼 EU의 탈탄소 전략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메탄 배출 우려가 큰 LNG가 포함되면서,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한층 더 거세졌다.

EEB 헤이우드 국장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공급처를 바꾸는 것은 단기 대응일 뿐, 자립이 아닌 의존의 반복"이라며, "진정한 자립은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 시스템, 핵심 원자재에 대한 투자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후단체 350.org 안드레아스 지버 정책캠페인 부국장은 "EU는 향후 3년간 에너지 전환을 지연시키고 글로벌 재생에너지 리더십을 포기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안나 카이사 이트코넨 EU 집행위 대변인은 "이번 협정은 3년간 한시적 조치로, EU의 장기적인 기후 목표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해명했다.

미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 역시 새로운 리스크로 꼽혔다. 영국 기후정책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아일렛 연구원은 "공급처를 한 곳에 의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의 기본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이번 협정은 EU를 또 다른 에너지 취약 구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