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억달러 쏟은 빈패스트, 美·유럽 접고 아시아로 방향 전환
베트남 최대 부호 팜 녓 브엉(Pham Nhat Vuong) 빈그룹 회장의 전기차업체 빈패스트가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의 난항 이후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시장을 새로운 성장 무대로 삼고 있다.
11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부동산 재벌 출신인 브엉 회장은 지금까지 빈패스트에 최소 140억달러(약 19조4500억원)를 투입했다. 이 금액에는 빈그룹과 계열사, 외부 대출 자금뿐 아니라 그의 개인 재산 20억달러(약 2조7800억원) 이상이 포함됐다. 그는 “자금이 바닥날 때까지” 빈패스트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32억달러 적자에도 확장…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 공략
빈패스트는 지난해 매출 1달러당 1.57달러의 비용을 기록하며 32억달러(약 4조4500억원) 적자를 냈다. 미국 자동차 컨설팅사 시노 오토 인사이트(Sino Auto Insights)의 투 레 대표는 “베트남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시아 시장에서 중국 등의 경쟁업체들과 맞설 만큼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남아시아는 20억명 이상 인구를 가진 성장 시장으로, 자동차 보급률은 서구보다 낮고 자국 브랜드도 적다. 다만 구매력이 낮아 소형차·저마진 모델이 주류가 될 전망이다. 투 레 대표는 “중국 업체들이 가격 전쟁을 벌이기 전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 빈패스트의 베트남 외 시장에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경고했다.
전략 전환의 핵심은 인도 남부 투투쿠디(Thoothukudi) 인근에 이달 초 문을 연 조립공장이다. 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 시장을 겨냥한 이 공장은 연간 15만대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투자 규모는 5억달러(약 6900억원)이며 장기적으로 인도 등 아시아 시장 확장을 위해 투자 규모를 20억달러(약 2조7800억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빈패스트는 지난 6월 베트남에 연간 20만대의 생산이 가능한 두 번째 공장을 준공했고, 몇 달 내 인도네시아에도 연간 5만대 규모의 공장도 가동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다른 많은 회사와 마찬가지로 빈패스트도 상황 변화에 대응해 사업 계획을 단기적으로 조정한다”며, “새로운 목표 시장은 전기차 판매 측면에서 ‘후발주자’이지만, 잠재력이 매우 크고 현재 역동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출 92%가 베트남에서 발생…내부 거래 비중도 높아
빈패스트는 부동산·호텔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빈그룹의 지원 속에서 성장했다. 빈그룹의 매출은 베트남 GDP의 1%를 차지한다. 브엉 회장은 빈그룹에서 80억달러(약 11조1100억원) 이상을 보조금·대출·전환사채 형태로 빈패스트에 투입했다.
브엉 회장은 빈패스트가 내년 말 손익분기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4년간 빈패스트 매출의 92%가 베트남에서 발생했으며, 그 중 3분의 1은 관계사 내부거래에서 나왔다. 특히 브엉 회장이 95% 지분을 가진 택시업체 GSM가 구매 비중이 높았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켄 퐁 애널리스트는 “빈패스트는 빈그룹 실적에 부담이지만, 부동산 사업이 안정적인 한 브엉 회장이 원하는 만큼 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브엉 회장은 110억달러(약 15조2800억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빈패스트의 미국과 유럽 시장 공략은 초기 차량에 대한 혹평과 소프트웨어 결함 리콜로 난항을 겪었다. 2024년 글로벌 판매 9만7399대 중 90%가 베트남에서 판매됐으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공장 가동도 2028년으로 미뤄졌다.
자동차 시장 분석사 프로라이언스(Proliance)의 타나차이 보라차이와니치 전무는 “신차 브랜드가 인지도와 고객 신뢰를 얻고 서비스 센터와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애널리스트들은 빈페스트에 대해 “글로벌 진출 대신 베트남 내 입지를 먼저 다지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빈패스트의 성과를 인정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자동차 소프트웨어 컨설팅사 샌보카 인사이트(SanBoca Insights)의 댄 기틀먼 대표는 “2~3년 전에는 ‘가능성 제로’라고 했다. 그러나 회사는 실수에서 교훈을 얻었고, 베트남에서 성공적으로 성장했다”며, “이제 해외 진출을 위한 좋은 위치에 있다. 빈패스트는 업계에서 자주 언급되며 여기 미국 플로리다 도로 위에서도 빈패스트 차량을 보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