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잇의 전환이야기】미국 정치가 세운, 항로 위의 새로운 장벽

Section 301이 만든 해운업계의 새로운 비용 전쟁

2025-08-12     임팩트온(Impact ON)

2025년, 미국이 해운업계에 새로운 장벽을 세웠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무역법 섹션(Section) 301’ 에 따라 중국 해운•물류•조선업에 대한 조치를 공식 발표한 것이다.

조치 내용에는 중국 소유 또는 운항 선박에는 올해 순톤수당 50달러부터 시작해 2028년까지 140달러로 단계적으로 인상되는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고, 중국 건조 선박에 대해서는 순톤수당 18달러에서 33달러, 또는 컨테이너당 120달러에서 250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해운산업을 겨냥한 조치지만, 글로벌 해운의 복잡한 구조 상 한국 해운업계 역시 결코 안전지대에 있지 않다. 특히 중국 건조선박에 대한 입항세 부과는 국적과 무관하게 적용되므로, 한국 해운사가 소유한 선박이라도 중국 조선소에서 건조됐다면 예외가 없다.

 

정치가 만든 새로운 해운 장벽

이번 조치는 단순한 무역 규제가 아니다. 미•중 경제 패권 경쟁이 해운 물류로 확산되면서, 항만은 정치의 전선이 됐다. 미국은 중국 정부의 조선•해운 보조금과 과잉 건조 정책이 글로벌 해운시장을 왜곡한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세계 1위 조선국으로 새롭게 부상한 중국이 저가 발주와 금융 지원을 통한 선박 공급 확대로 미국은 자국 해운과 조선 산업의 경쟁력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현실의 격차는 극명하다. 미국은 상업 조선업에서 세계 19위이고 연간 건조량이 5척 미만에 불과하지만, 중국은 1700척 이상을 건조하고 있다. 이 압도적인 격차 속에서 미국은 정치·규제라는 전략 무기를 우선 선택함으로써 해상 무역로 입구에서부터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입된 것이 바로 섹션 301 이며 오는 10월 14일부터 1단계 조치가 시행될 예정이다.

구분 세부 내용
적용 대상 중국 건조 선박 또는 중국계 해운사
선박 종류 컨테이너선, 벌크선, LNG선 등 상선 전반
부과 방식 톤수•화물 종류별 차등
부과 시점 미국 항만 입항 시 (최대 5회)
시행 일정 2025년 10월 14일

섹션 301 개정안 주요 내용

 

‘출신'과 ‘운항 주체’

미국 입항세 부과 방식은 두 가지 질문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는 “중국에서 건조되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기존 해운 규제가 따르던 ‘국적주의 원칙’(선박등록국, Flag state)을 깨고, 건조 단계의 ‘공급망 리스크’를 공식 규제 범위에 포함시킨 것이다. 문제는 글로벌 해운사의 선대 구조가 이 기준에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에 있다. 해운사들은 가격 경쟁력, 납기 우위, 금융 조건의 유연성 때문에 중국 조선소 의존도를 높여왔다. 클락슨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이 2025년 신규 선박 수주량의 53%, 수주 잔량의 59%를 차지하고 있다. 선박의 ‘출신’이 중국이라면, 운항 주체가 누구든 미국의 입항세를 피할 수 없으며, 특히 미주 항로 의존도가 높은 해운사에게는 일시적 변동이 아니라 예정된 손익 악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두 번째는 “중국 해운사가 운항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운항 주체가 중국 해운사라면 건조지와 무관하게 동일한 입항세가 부과된다. 중국 해운사는 거대한 선대 규모와 가격 경쟁력으로 미주 항로 점유율을 확대해왔지만, 이번 조치는 그 기반을 비용 구조에서부터 흔든다. 문제는 이들과 협력하거나 선복을 공유하는 외국 해운사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 해운사가 운항하는 항차에 자사 화물이 실리면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이 높고, 장기 계약이나 얼라이언스에 중국 해운사가 포함돼 있다면 항로 전략 전반의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해운업계의 대응 전략: 전환점의 기로

이제 선박의 건조지와 운항 경로는 단순한 운영 요소가 아니라, 정치적 변수에 따라 즉각적인 비용으로 전환되는 리스크가 됐다. 이번 조치는 해운사들에게 단기적 리스크 완화와 장기적 경쟁력 강화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겨줬다.

우선, 선대 리스크의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 중국 건조 선박 현황과 미국 입항 빈도를 분석해 입항세 부과 규모를 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대 재배치 등 후속 조치를 준비해야 한다.

발주 및 용선 전략의 재편도 불가피하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한국·미국·일본·유럽 조선소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확정된 계약을 점검하고 중국 외 건조선박을 선점하며, 장기적으로는 고부가가치 선종부터 발주지를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선소 생산 능력, 발주 금융 보증, 세제 지원 등 정책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계약 구조의 재설계가 시급하다. 장기 운임 계약에 입항세와 같은 정치적 리스크 비용 분담 조항을 명확히 포함시키고, 기존 계약의 재협상을 검토해야 한다. 신규 계약에서는 이를 표준화하여 서비스 안정성과 운임 예측 가능성을 함께 보장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전가가 아니라, 화주와의 리스크 공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조선 기자재 공급망의 다변화도 준비해야 한다. 이번 조치가 향후 '중국산 기자재 사용 선박'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 엔진, 전자항해장비 등 핵심 기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얼라이언스 전략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중국 해운사가 포함된 얼라이언스나 공동 운항 네트워크는 건조지와 무관하게 입항세 부담이 발생하므로, 비용 전가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고위험 항로의 공동 운항 비중을 줄이고, 얼라이언스 차원에서 정치 리스크에 공동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바다 위의 새로운 정치경제

해운은 더 이상 자유로운 바다 위의 산업이 아니다. 정치가 세운 장벽은 곧 항만의 장벽이 되고, 이는 곧 경쟁력의 장벽이 된다.

이미 해운은 국제해사기구(IMO) 환경규제, EU배출권거래제(ETS), 연료 전환, 탄소중립 압박 등으로 다중의 부담을 지고 있다. 여기에 미·중 정치 리스크가 더해지면, 단순한 비용 증가가 아닌 구조적 위기와 직면하게 된다. 고래싸움에 끼인 새우 격이지만,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10월 14일부터 시행 예정인 이번 조치를 일시적 변수로 간주하기에는 너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해운업계는 이제 단순한 물류업이 아니라 국제 정치 및 지정학적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단기적으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경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정치 리스크에 강한 해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지혜련 연구원은

지혜련 연구원은 에너지 정책 연구기관인 플랜잇(PLANiT)에 소속되어 활동 중이다. 플랜잇은 에너지 전환경로를 식별하는 모델 기반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정량적 연구 기관이다. 지 연구원은 CFD 기반 연구를 수행해 온 조선• 해운 분야 연구자로, ESG 실무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 2006년 한국과학기술원(KORDI, 현 KRISO)에서 연구를 시작했으며, 2008년부터 대우조선해양 선박해양연구팀에서 15년간 CFD를 활용한 선박 기술 연구를 수행해왔다. 2022년부터 ESG 실무를 담당했으며, 현재는 해운• 조선산업의 탈탄소 전략, LCA 기반 온실가스 감축 평가, 국제 규제 대응 등을 주제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