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취약지에 세계 최초 회복력용 수소·배터리 마이크로그리드 설치

2025-08-13     고현창 editor

산불이 날 때마다 정전 위기에 시달리던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소도시 캘리스토가가 화석연료 없이 며칠간 도시 전력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이크로그리드를 갖췄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액화수소를 결합한 이 설비는 도시 전체를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에너지 전문매체 카나리미디어에 따르면, 이번 프로젝트는 캘리포니아 공공유틸리티위원회(CPUC)와 전력사 퍼시픽가스앤일렉트릭(PG&E), 민간 파트너사가 협력해 추진했다. 이미 규제 승인을 마쳤으며, 산불 시즌 전까지 시험운영을 거쳐 본격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에너지볼트(Energy Vault)가 캘리스토가 시에서 운영중인 캘리스토가 회복력 센터(CRC). 수소 및 하이브리드 에너지를 저장한다. / 이미지 출처 에너지볼트 홈페이지

 

화석연료 없이 며칠간 전력 공급…소도시의 수소 마이크로그리드 실험

2017년과 2018년 연이어 대형 산불 발생 후, 전력회사 PG&E는 화재 위험을 낮추기 위해 송전선 일부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화재 시즌 동안 트럭형 디젤 발전기를 마을에 여러 대 배치했다. 화재 상황에서의 안전한 발전을 위한 조치였으나, 소음과 매연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최근 에너지저장 업체 에너지볼트(Energy Vault)가 리튬이온 배터리와 철제 액화수소 탱크를 설치했다. 이 설비는 마을의 전력 수요를 송전망 없이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화재 우려로 PG&E가 그리드 전원을 차단할 경우 최대 48시간 동안 8.5메가와트를 공급하도록 계약됐다. 수소 탱크를 다시 채우면 추가로 며칠간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에너지볼트의 첨단에너지솔루션 담당 부사장 크레이그 혼은 “연료전지, 배터리, 액화수소 저장·분배 기술은 상업적으로 이미 사용된 바 있지만, 회복력을 목적으로 결합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공식 인터뷰에서 말했다.

비영리 단체 클린코얼리션의 크레이그 루이스 전무는 “지역사회 마이크로그리드는 에너지 시스템의 미래”라며, “캘리스토가 마이크로그리드는 ‘상업 규모 실험’이며, 매우 희망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청정성 논란 속 수소 공급망·경제성 개선이 확산 관건

한편 수소 생산 과정에서의 청정성을 명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현존하는 상용화 가능한 수소 프로젝트는 대부분 여전히 막대한 탄소배출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전체 과정에서 크게 3가지 부분이 지적된다.

첫째는 배터리 저장 설비를 냉각하기 위한 전력 소모 문제다. 안정적인 수소 연료 기반의 출력을 위해 리튬이온 배터리를 함께 사용 시, 해당 설비를 냉각시키기 위한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 이번 에너지볼트의 경우 캘리스토가 시로부터 약 2700㎡(약 축구장 3분의 1 규모)의 부지를 받아 근 300MWh(메가와트시)의 저장용량을 구현해야 한다. 특히 산불 화재라는 비상상황에서 써야 하기 때문에 항시 대기 모드로 운영돼야 하며, PG&E가 송전선을 차단한 후 정전 상태에서 재가동하는 이른바 ‘블랙스타트’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리튬이온 배터리의 완충 역할이 필요하다.

에너지볼트는 이 역시 수소로 충당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볼트의 혼 부사장은 이를 “이미 짜고 있는 치약 튜브에 치약을 더 넣는 일”에 비유하며, “연료전지가 가동되는 동안 액화수소 탱크로 수소를 주입하는 수용성 테스트를 여러 시간 동안 진행했다”고 말했다.

둘째는 전기분해(수전해) 과정에서 필요한 전력 공급 문제다. 현재 상업용 수소의 대부분은 화석연료인 천연가스를 원료로 하는 ‘스팀 메탄 개질법(SMR, Steam Methane Reforming)’으로 생산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그대로 대기 중에 배출된다. 에너지기업 플러그파워가 조지아주에서 전기분해 설비에 공급하는 수소 역시 화석연료 기반이다. 에너지볼트는 캘리스토가에 공급하는 수소가 미국 연방 기준(수소 1kg당 이산화탄소 4kg 이하)에 부합한다고 설명했으나, 구체적인 공급처는 밝히지 않았다.

셋째는 수소 운송 문제다. 수소연료를 필요한 곳에서 사용하기 위해 트럭으로 운반하는데, 재생에너지 기반의 운송수단이 아니라면 결국 운송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된다. 혼 부사장은 “과거 하루 세 번씩 디젤을 나르던 것보다는 낫지만, 이상적인 방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수소 프로젝트의 경제성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캘리스토가 시에 공급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PG&E가 공용 요금에서 재원을 마련해 서비스를 구매했기 때문에 당장은 요금 부담 문제가 대두되진 않을 예정이나, PG&E 측은 “이번 프로젝트가 기준을 충족해 지원하나, 향후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에너지볼트는 시스템을 개조해, 평상시에도 전력을 판매하는 추가 수익 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현재는 PG&E의 계획 정전 시에만 가동되지만, 배터리와 수소를 활용해 전력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혼 부사장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역사회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며, 향후 과제는 배출이 확실히 낮은 수소 생산을 확대하고, 공급망 거리를 줄이는 것임을 밝혔다.

캘리스토가에서의 수소 기반 전력 공급이 지역 단위 백업 전력 모델의 가능성을 입증할지, 아니면 공급망과 탄소발자국의 불투명성으로 기후적 가치를 의심받는 이례적 사례로 남을지는 시간이 지나야 평가가 가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