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환경단체, 기후규제 폐기 시도한 ‘비공개 자문위’ 제소... "연방법 위반"
미국 주요 환경단체들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행정부가 기후변화 회의론자들만으로 구성된 비공개 자문위원회를 꾸려, 미국 기후 규제의 핵심 과학적 근거를 폐기하려 했다는 이유다.
로이터는 12일(현지시각) 환경방위기금(EDF)과 책임있는과학자연합(UCS)이 매사추세츠 연방지방법원에 행정부의 연방자문위원회법(FACA) 위반 혐의로 소장을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비공개 ‘기후 워킹그룹’ 보고서, 규제 폐지 근거로 활용…
연방자문위원회법 절차 위반
소송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3월, 에너지부 크리스 라이트 장관 주도로 ‘2025 기후 워킹그룹(2025 Climate Working Group)’이라는 비공개 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기후변화 회의론자들로만 구성됐으며, 2009년 미 환경보호청(EPA)이 채택한 ‘위해성 판정(Endangerment Finding)’을 무효화하는 151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기후변화가 인류 활동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며, 그 영향 또한 과장되었다는 주장이 담겼다. 이 보고서는 공개 절차나 동료 심사 같은 과학적 검증 없이 EPA 정책 결정에 활용되거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등 연방 기후 규제의 과학적 합의를 부정하는 핵심 근거가 됐다.
환경단체들은 행정부의 비공개 위원회 운영은 절차상 위법이며, 보고서 내용이 일부 과학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연방자문위원회법에 따르면, 연방 자문기구의 설립·운영 과정에서 회의, 이메일, 기록 등 모든 활동을 대중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EDF와 UCS는 행정부가 특정 성향의 민간 인사에 정책 자문을 받으면서도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송문에는 “연방 법률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비공개·책임회피성 그룹을 구성하거나 의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보고서는 수천 건의 연구와 데이터를 통해 입증된 주류 과학계의 오랜 합의를 거스르는 것”이라는 주장이 포함됐다.
소송의 피고로는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리 젤딘 EPA 청장이 지목됐다. 두 사람 모두 즉각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과학적 합의 무시, 기후위기 리더십 약화” 우려
환경단체들은 이번 사안이 단순한 절차적 위법을 넘어, 미국의 기후위기 대응 전반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미국은 폭염, 해수면 상승, 대형 산불, 홍수, 집중호우 등 기후 재난으로 매년 수조 달러의 피해를 입고 있다.
위해성 판정은 화석연료 연소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인류의 건강과 복지에 위협이 된다는 과학적 판단으로, 미국 온실가스 규제의 법적 토대다. 환경단체들은 이를 폐기하려는 시도가 기후변화 피해를 축소하고, 공식 데이터 수집·보고를 중단시켜 에너지 전환의 긴급성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UCS 회장 그레첸 골드만은 “수십 년간의 과학 분석은 화석연료 연소가 치명적인 폭염, 해수면 상승 가속, 산불·홍수 심화, 집중호우 증가, 강력한 폭풍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이 과학적 진실을 뒤집으려는 시도에서 누가 이익을 얻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EDF와 UCS 환경단체들은 행정부의 비공개 위원회 운영이 화석연료 의존 탈피를 지연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기후 리더십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