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중국 공급망 재편 움직임…스마트폰에서 전기차까지 ‘불편한 공존’

2025-08-21     유인영 editor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왕이 중국 외교부장 / 모디 총리 X(트위터)

국경 분쟁으로 얼어붙었던 인도와 중국 간 관계가 최근 외교·경제 분야에서 서서히 해빙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압박 속에서 양국이 전략적 상호의존을 강화하며 관계 복원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오는 3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며,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도 예상된다.

 

인도, 중국 기술과 원자재 의존…전략 산업 곳곳에 얽힌 공급망

인도는 제조업 도약을 위해 중국의 기술과 자재에 의존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인도는 약 480억달러(약 67조800억원) 규모의 전자·전기 장비를 중국에서 수입했으며, 이는 스마트폰, 통신장비 등 핵심 산업의 부품 공급망이 중국에 집중돼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의 제약 산업 또한 주요 원료의약품(API)을 중국에서 공급받고 있다.

특히 희토류 영구자석은 전기차, 재생에너지, 전자제품 등 전략 산업의 핵심 부품으로, 인도는 해당 자재를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올해 중국의 수출 제한 조치는 인도 자동차 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

여기에 더해, 인도는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 청정기술 등 기술력이 부족한 분야에서 중국의 전문성과 협력이 필요하다. 일부 인도 대기업들은 비공식적으로 중국 기업들과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 아다니 그룹의 고탐 아다니 회장은 배터리 제조업체 CATL 임원진과 회동했고, BYD와의 배터리 생산 협력도 논의했다. JSW그룹은 체리자동차와 기술 제휴를 체결했다.

 

신흥 소비시장 인도, 내수 부진 중국 기업의 ‘탈출구’

중국 역시 인도 시장을 전략적 파트너로 보고 있다. 내수 성장 둔화로 출구 전략이 필요한 중국에게 중산층이 성장 중인 인도는 새로운 소비시장이다. 2024년 인도에서 판매된 스마트폰은 약 1억5600만대로, 샤오미, 비보, 오포 등 중국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인도의 자동차 시장 역시 중국의 주요 공략 대상이다. 인도는 세계 3위의 승용차 시장으로, 2024년 기준 약 430만대가 판매됐다. 2023년 BYD는 2030년까지 인도 전기차 시장 시장 점유율을 40%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중국 IT기업들도 인도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페이티엠(Paytm), 조마토(Zomato), 올라일렉트릭(Ola Electric), 바이주스(Byju’s) 등 유니콘 기업에 자금을 투입했다.

중국 기업들은 인도의 디지털 전환과 소비시장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며,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의 복잡한 규제를 고려할 때, 현지 기업과의 협업은 시장 진출을 위한 효과적인 해법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압박에 공동 대응 구도…외교적 해빙 신호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대인도 무역 공세도 양국 간 해빙 분위기를 이끌었다.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은 인도를 대중 견제의 핵심 파트너로 간주했지만,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의 무역장벽을 비판하고, 러시아산 원유 수입 등을 문제 삼아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인도와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갈등에서 유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양국은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움직임을 이어갔다. 7월에는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부 장관이 2020년 이후 처음으로 베이징을 방문했고, 8월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3년 만에 인도를 찾아 모디 총리와 회담했다.

구체적인 조치들도 뒤따르고 있다. 중국은 인도에 대한 비료용 요소 수출 규제를 완화했고, 인도는 중국인 관광비자를 다시 허용했다. 항공사에는 양국 간 직항편 재개를 준비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회의적 시각도…과도한 의존 경계와 잠재적 경쟁자 인식

완전한 관계 복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 시각도 있다. 인도가 중국에 대한 기술 규제와 투자 제한 조치를 철회할 징후는 거의 없으며, 해결되지 않은 국경분쟁은 양측 모두에게 민감한 문제로 남아 있다.

인도로서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공급망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희토류 통제나 수출 규제 사례는 중국이 언제든지 기술 공급을 차단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 입장에서도 인도가 과거 중국이 걸었던 경로를 따라 신산업 진출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기술 이전은 미래의 경쟁자를 키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중국은 인도가 기후기술, 전자산업, 청정모빌리티 분야에서 경쟁자로 부상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인도가 기후 목표 달성과 저렴한 청정기술 구축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지, 아니면 중국이 자국의 글로벌 지위를 지키기 위해 기술 접근을 제한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