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손모빌 “석유 하루 1억배럴 지속” vs 국제기관 “석탄 수요 감소는 공통 시나리오”
세계 최대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넷제로 목표 달성이 2050년 이후로 늦춰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석유·천연가스 소비가 오히려 늘어나 배출 감축 속도가 더뎌질 것이라는 이유다.
엑손모빌은 29일(현지시각) 발간한 ‘글로벌 에너지 아웃룩(Global Energy Outlook)’ 보고서에서 2050년 전 세계 배출량이 2021년 대비 25% 줄어드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제시한 67% 감축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엑손모빌, 석유·천연가스 소비 점점 증가할 것… EU 급진적 에너지 정책 비판
보고서는 석유 수요가 2030년 전후 정점을 찍은 뒤에도 2050년까지 하루 1억 배럴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풍력·태양광 발전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석탄 사용이 늘고, 미국과 유럽에서 전기차 판매 둔화가 이어지면서 석유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력 수요 확대에 따라 천연가스 소비도 2050년까지 2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2050년 전 세계 에너지 믹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5%로, 2024년 대비 1%포인트 감소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엑손모빌 경제·에너지 전략기획 담당 이사 크리스 버드설은 “비용이 높은 재생에너지원으로 너무 빨리 전환을 시도하면 소비자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며 “정책 변화는 선거 결과에 좌우될 수 있어 에너지 전환 속도를 한층 더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엑손모빌은 유럽연합(EU)의 기후정책이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고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공개 비판했다. 유럽의 탈탄소 정책은 고비용·고규제 접근으로 인해 경제에 피해를 주고 있으며, EU 기후 목표 달성에 필요한 저탄소 기술에 대한 대중 지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크리스 이사는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하다거나 불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현명하고 접근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EU가 에너지 전환이 장기적으로 저렴해질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 하에 정책을 너무 빨리 밀어붙였다”며 “실제로는 전환에는 3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저탄소 투자는 기존 에너지원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기후 단체들은 엑손모빌의 전망이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반박했다. 네덜란드 주주행동 그룹 팔로우 디스(Follow This)의 창립자 마르크 판 바알(Mark van Baal)은 “향후 10년 내 석유·가스 수요는 구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며 “엑슨모빌이 이를 외면한다면 결국 주주들이 개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탄 발전량 최대 94% 감축 예상… 석탄 의존 감소는 '불가피해'
엑손모빌의 비관적 전망과 달리, 국제 에너지 전망 기관들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석탄 의존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 싱크탱크인 리소스 포 더 퓨처(RFF)가 지난 4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세계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어서고, 석탄 수요는 대부분의 시나리오에서 대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보고서는 엑손모빌, 국제에너지기구(IEA), 석유수출국기구(OPEC), BP,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 에퀴노르(Equinor), 일본에너지경제연구소(IEEJ) 등 7개 주요 에너지 기관의 2024년 시나리오를 비교·분석해 작성됐다.
분석 결과, 모든 시나리오에서 석탄 발전량은 2023년 대비 최소 35%에서 최대 94%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감소 폭은 정책 강도에 따라 달랐다. IEA, BP, BNEF, 에퀴노르가 제시한 ‘기후 대응 강화(Ambitious Climate)’ 시나리오에서는 화석연료 사용이 급격히 줄고, 재생에너지가 세계 전력의 37~74%를 차지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IEA의 ‘순배출 제로(NZE)’와 BP의 ‘넷제로(Net Zero)’ 시나리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0% 이상 감축해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경로를 제시했다.
반면 엑손모빌, OPEC, IEEJ가 포함된 ‘참조(Reference)’ 시나리오는 정책 변화가 제한될 경우 석탄·가스 수요가 유지되거나 일부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엑손모빌처럼 화석연료 수요를 높게 설정하는 기관들은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글로벌 투자자 연합체 클라이밋 액션 100+는 2025년 평가에서 엑손모빌의 넷제로 전략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하며, 보다 강력한 기후 대응을 요구했다.
보고서는 2023년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가 사상 최대치인 562GW를 기록했다며, 풍력과 태양광이 이미 다수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발전원으로 자리잡았고, 재생에너지 확산과 화석연료 수요 감소는 시나리오별 속도 차이는 있으나 공통된 흐름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