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슨모빌, 유럽 화학공장 매각 검토… EU 규제 강화에 ‘탈유럽’ 가속화
엑슨모빌이 유럽 화학산업의 구조적 불황과 비용 압박을 이유로 영국과 벨기에 위치한 화학공장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에틸렌 공장과 벨기에 생산시설이 매각 대상이며, 협상은 초기 단계지만 인수자가 없을 경우 폐쇄 가능성까지 내부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 로이터통신은 4일(현지시각), 엑슨모빌이 최근 자문사들과 초기 논의를 진행했으며, 거래 규모가 최대 10억달러(약 1조32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다.
유럽 화학산업, 에너지위기·EU 규제 강화 등으로 경쟁력 약화돼
유럽 화학산업은 2022년 에너지 위기 이후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데다, 미국의 15% 관세 부과와 중국산 저가 공세까지 겹치며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의 환경규제가 강해지면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은 한층 커지고 있다.
유럽화학산업협회(CEFIC)에 따르면, 글로벌 화학기업들은 매년 200억달러(약 26조4000억원) 이상을 규제 준수 비용으로 지출하며, 이는 자본지출의 약 10%를 차지한다. 독일 바스프(BASF)는 REACH 규제 대응만을 위해 250명의 직원을 전담 배치했으며, 화학업체 셀레나스(Celanese)는 무료 탄소배출권 할당 폐지로 연간 1000만~1억2000만달러(약 139억~1585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산업 분석기관 ICIS는 올해 초 보고서에서 영국 화학산업 생산량이 2021년 이후 38%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화학산업은 수십 년간 영국 경제의 핵심이었으나 최근 3년 사이 사업 규모가 3분의 1 이상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모닝스타 애널리스트 세스 골드스타인은 “EU의 규제 강화는 기업 부담을 장기화하고 유럽 화학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화학산업, 유럽 사업 축소·구조조정 추진 중… 엑손도 합류
글로벌 화학기업들은 규제부담, 수요 부진, 원가 상승이 겹치면서 유럽 내 설비 감축과 사업 구조조정을 잇따라 추지하고 있다. 글로벌 석유화학사 다우(Dow)는 독일 슈코파우의 생산시설을 폐쇄하기로 했으며, 독일 뵈렌의 에틸렌 크래커와 영국 배리의 실록세인 기초소재 공장도 감축 대상으로 거론됐다.
벨기에 PVC 생산업체 비노바(Vynova)는 지난 7월 네덜란드에서 연간 22만5000톤 규모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네덜란드계 리온델바젤(LyondellBasell)은 올해 초 유럽 내 4개 공장을 매각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사빅(SABIC) 역시 유럽 사업 일부에 대한 구조조정을 검토 중이다.
엑슨모빌 역시 유럽 화학업계 전반에 퍼지고 있는 사업 축소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엑슨모빌은 이미 수년간 유럽 내 입지를 줄여왔으며, 유럽연합(EU)의 까다로운 규제정책과 높은 에너지 비용이 투자 철수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해 5월에는 프랑스 자회사 에소(Esso) 지분과 현지 화학사업부를 캐나다계 연료 소매업체 노스 애틀랜틱(North Atlantic) 산하 노스 애틀랜틱 프랑스 SAS에 매각하기 위한 독점 협상에 들어갔으며, 올해 4분기 중 거래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한편, 글로벌 대기업들의 연쇄적인 철수로 인해 유럽 산업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생산설비 축소는 일자리 감소와 지역 경제 위축으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 유럽이 화학제품 수입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친환경 화학시장, 향후 10년 이내 최대 48조원 성장 예상
그러나 글로벌 화학산업은 경기 침체와 구조조정 속에서도 저탄소 에너지와 친환경 소재를 중심으로 빠르게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미국화학협회 산하 C&EN 보고서도 에너지 비용, 규제, 소비자 수요 변화가 맞물리면서 친환경·저탄소 전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에서는 바스프, 린데, 사빅이 세계 최초 전기 가열로(e-furnace) 파일럿 설비를 공동 운영 하고 있다. 이 설비는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기초유분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을 90% 이상 줄일 수 있는 혁신 기술로 평가된다.
한국 화학산업들도 폐플라스틱 열분해유와 바이오 기반 소재 개발을 확대하며 순환경제 프로젝트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화학은 열분해유 공장을 운영하면서 바이오 원료 기반 화학소재와 바이오플라스틱 개발에 주력하고 있고, 롯데케미칼은 바이오매스 원료와 바이오플라스틱 생산 확대에 더해 국내외 열분해유 라인을 구축하며 자원 순환을 강화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퓨처마켓(Future Market)의 '세계의 지속가능 화학제품 시장(2025-2035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친환경 화학제품 시장은 2025년 154억9천만 달러(약 21조5419억원)에서 2035년 350억2천만 달러(약 48조7023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며, 이 기간 연평균 성장률은 8.5%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은 정부 정책, 규제 강화, 소비자 인식 제고에 힘입어 2035년까지 시장 점유율 35.3%를 차지하며 최대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