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후 스튜어드십, 실천 부족 지적…성과 공개·KPI 개편 요구
국민연금이 기후변화를 중점 관리 사안으로 지정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주주권 행사와 공시 활동은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후 스튜어드십, 선언을 넘어 실천으로’ 세미나에서 공동 주최자인 박주민 의원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을 직접 점검해봤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며 적극적인 추진을 촉구했다.
전진숙 의원은 “국민연금의 투자 결정은 기업의 흥망은 물론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된다”며 “국민연금이 책임 있는 기후 스튜어드십으로 공공성과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장식 의원도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사회 전반을 뒤흔드는 위험”이라며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를 지키는 연기금’을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연기금’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축사에서 밝혔다.
선언적 수준에 머문 국민연금 책임투자…글로벌 스탠다드와 간극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기후 스튜어드십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짚었다. 책임투자 규모와 활동 건수는 늘었지만, 실제 주주권 행사나 기후 리스크 관리에서는 국제적 기준과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은 발제에서 “국민연금이 보유한 1200여 개 기업 중 약 10%만을 관리 대상으로 삼고, 기업당 평균 1회 남짓한 면담이나 서한 활동에 머무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크게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금융배출량을 공개하고 산업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며 “투자 배제 전략과 지속가능 테마 투자 같은 포지티브 스크리닝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박현정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 연구원도 발제에서 “2023년 기후변화를 중점관리 사안에 포함했지만, 2025년 현재까지 지정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며 “2024년 한 해 동안도 비공개 면담 29건과 서한 발송 3건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민연금이 석탄 투자 규모 세계 3위, 석탄채권 투자 세계 5위라는 사실은 한국전력·포스코·현대제철 등 고배출 기업에 대한 관여 활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원은 대안으로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을 매출 50%에서 30%로 낮추고 국내 적용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며 “중점관리 기업 수 확대와 투명한 성과 공개, 전문위원회의 권한 강화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발제자들은 해외 주요 연기금 사례를 들어 국민연금의 변화를 촉구했다. 노 정책위원은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이 1000억달러 규모의 ‘기후 행동 계획’을 추진하고, 엑손모빌 이사회 전원에 반대표를 던진 사례를 소개하며 “국민연금도 단순한 ESG 등급 반영을 넘어 실질적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원은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가 기후 대응 미흡 기업 195곳을 투자 배제하고, 네덜란드 APG와 일본 GPIF가 수백 개 기업과의 대화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중간 감축 목표까지 설정한 점을 언급하며 “해외 연기금 수준의 공시와 관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후 스튜어드십, 수익성 논의 넘은 실효적 해법
패널 토론에서는 국민연금이 본연의 목표인 ‘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시각과 ‘공적 연금으로서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이 팽팽히 맞섰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개선책도 제시됐다.
원종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과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와 단순 비교의 한계, 국민 인식과 수익성 요구를 강조하며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종현 위원장은 해외 연기금과의 단순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네덜란드 APG나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같은 사례는 산업 구조와 법적 환경이 달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한국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금의 본질은 안정적 급여 지급에 있으며, 가입자들이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워낙 높다”고 덧붙이며, ESG와 수익성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황현영 연구위원은 스튜어드십 활동의 방향성에 대해 신중론을 제기했다. 황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의 목적은 결국 안정적인 연금 지급이며, 이를 위해 수익성 확보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이 올해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에서 ‘ESG’ 문구를 삭제한 것도 ESG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장기 수익을 위한 수단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해외 연기금의 사례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황 연구위원은 “네덜란드 연기금이 한국전력 투자를 철회한 것은 자국 내 석탄발전 금지법이라는 제도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우리 사회의 국민적 공감대와 제도적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총장과 김민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대표는 국민연금이 여전히 선언적이고 방어적인 태도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이종오 사무총장은 국민연금의 위탁운용 자산 다수가 ‘ESG 워싱’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그는 “위탁운용사 선정 시 책임투자 정책이나 지침 보유 여부만 확인할 뿐, 실제 이행은 검증하지 않는다”며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활동 연차보고서는 수치 위주로 작성되어 실제 관여 성과를 확인하기가 어렵다”며, APG 등 해외 연기금처럼 자산별 중점 주제를 명확히 하고 구체적 관여 결과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오 사무총장은 "석탄 투자 제한 전략의 50% 매출 기준 역시 국제적 추세인 20~30%보다 완화돼 좌초자산 리스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화석연료 전체를 아우르는 로드맵과 금융배출량 감축 목표 수립을 제안했다.
김민 대표는 국민연금이 기후위기 대응을 소홀히 할 경우 “국민의 노후 보장이라는 연금의 본질적 기능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매달 연금 보험료를 납부하지만, 환경오염으로 병원비가 늘고 침수 피해로 이주 비용이 발생한다면 연금 급여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며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선경 켐토피아 ESG 전략실 상무는 “현재 운용 매니저들의 KPI(성과지표)는 단기 수익률 중심으로 짜여 있어 기후 스튜어드십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선경 상무는 이어 “탄소 다배출 기업에 투자해 단기 성과를 올린 경우에는 오히려 KPI에서 감점하는 방식 등 인센티브 제공 방식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최용환 NH아문디자산운용 ESG리서치팀장은 자사에서 진행한 세이온클라이밋(Say on Climate) 주주활동 경험을 공유하며 실질적인 접근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내 35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주주서한 발송과 면담을 진행하며, 고배출 산업군의 기후 대응 수준을 직접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기업이 주주서한과 면담에서 ‘이 질문에 꼭 답해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고객 요구나 규제라고 인식한 경우에는 준비도를 높였다”며, “기후공시 로드맵이 도입돼야 기업들의 대응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용환 팀장은 “동일한 질문에 반복적으로 응답하느라 기업의 피로도가 높다”며 “공통 질의를 공유하는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