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장정민의 지속가능경영 스토리】밸류업과 ESG, 공존을 넘어 통합으로
한국 자본시장의 화두 중 하나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이 프로그램을 단기적인 주주환원 확대의 기회로만 인식하여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과 같은 처방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창출하라는 시장의 근본적인 요구를 외면하는 전략적 오류일 수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진정한 성공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내재화와 전략적 통합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ESG는 비용이나 규제가 아닌,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비재무 성과지표이자, 밸류업이 요구하는 전략적 깊이와 실행력을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론이다.
주주환원을 넘어선 전략적 과제
한국거래소(KRX)가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단기 부양'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 시스템 구축'에 있다. 가이드라인은 '기업개요 → 현황진단 → 목표설정 → 계획수립 → 이행평가 → 소통'이라는 순환적 구조를 제시하며, 일회성 계획이 아닌 동태적 경영 시스템을 요구한다. 특히 '이사회 책임'을 명시한 것은, 밸류업이 단순 재무 정책을 넘어선 전사적 차원의 전략적 의사결정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가이드라인의 '현황진단' 단계에서 재무지표뿐만 아니라 '지배구조와 같은 비재무지표'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라고 권고한 부분이다. 이는 기업가치가 재무제표상의 숫자를 넘어 지배구조, 리스크 관리, 지속가능성 등 무형의 자산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이 단순히 낮은 주주환원율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은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와 낮은 성장성 및 수익성을 핵심 원인으로 지목했다. 단기적인 주주환원책만으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치 창출의 정량적 연결고리
경영진의 입장에서 ESG는 단기적 재무 성과를 저해하는 비용 요인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ESG는 기업가치 제고와 완벽하게 공존하며, 오히려 지속가능한 성장의 필수 요소임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된 1000개 이상의 연구를 분석한 메타 연구에 따르면, 기업의 ESG 성과와 재무적 성과 간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 중 58%가 긍정적인 상관관계를 보고했으며, 부정적 관계를 보인 연구는 8%에 불과했다.
맥킨지(McKinsey)에서는 ESG가 기업가치를 창출하는 다섯 가지 경로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제시했다.
첫째, 강력한 ESG 평판은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시장 접근성을 넓혀 매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유니레버는 ‘지속가능한 삶 계획’을 통해 관련 브랜드들이 다른 브랜드보다 두 배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며 이를 입증했다.
둘째, ESG는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폐기물 감축 활동이 운영비를 줄이는 직접적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3M은 ‘공해 예방이 곧 이익’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1975년 이후 약 22억달러(약 3조원)를 절감했다.
셋째, 규제 및 법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공급망 실사 지침(CSDDD) 같은 강화되는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막대한 과징금이나 소송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넷째, ESG는 인재 확보와 임직원 동기 부여를 통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좋은 근무 환경과 사회적 가치 실현이 핵심 인재를 끌어들이는 원동력이 된다.
다섯째, ESG는 자산과 투자 전략의 최적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자산에 투자하면 화석연료와 같은 좌초자산 위험을 줄이고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과제를 제시했다면, ESG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가장 효과적이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해법을 제공한다.
ESG통합, 설득과 실행을 위한 수행 과제
전략적 통찰을 조직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끌기 위해 ESG 실무자는 '비즈니스 전략가'로서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밸류업 공시와 ESG 내러티브를 통합해야 한다. 기업은 별도의 ESG 보고서를 발간하는 데 그치지 말고,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 자체에 ESG 전략과 성과를 깊숙이 통합해야 한다. '현황진단'에는 TCFD 기반 기후 리스크 분석을, '계획수립'에는 공급망 실사 대응 투자 계획을 명시하여 ESG를 핵심 가치 창출 스토리로 제시해야 한다.
핵심 ESG 과제와 재무적 효과를 연결해야 한다. 기업별로 가장 중요한 ESG 이슈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재무적 이익을 구체화한다. 예를 들어 제조업이면 에너지 효율 투자로 연간 비용을 얼마나 절감할 수 있는지, 금융업이면 대출 포트폴리오의 ESG 리스크 관리로 부실비용 감소 등을 산출해 ESG 투자 대비 기대효과(ROI)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ESG 활동을 기업의 가치창출 프로세스와 연결된 프로젝트로 인식시킬 때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빨라질 것이다.
ESG 전략을 별개 업무가 아닌 기업의 중장기 전략에 통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사 차원에서, 특히, 재무, 전략, 영업 부서와 협업을 통해 KRX 밸류업 공시의 틀에 ESG 요소를 녹여내야 한다. 밸류업 계획의 핵심 지표에 탄소배출량 감축, 다양성 지표 개선, 이사회 독립성 제고 등의 목표를 포함하고, 이를 재무 목표(ROE, 매출 성장 등)와 함께 로드맵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계획 수립 시에는 “기업 개요-현황 진단-목표-세부 계획-이행 평가”의 체계를 적용하되, 각 단계마다 ESG 요소와 재무 요소의 선순환 논리를 명확히 해야 한다.
ESG-밸류업 통합 추진에는 경영진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이사회와 경영진이 ESG 목표 달성에 직접 책임지도록 성과평가 및 보상체계에 연계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KRX 가이드라인에서도 ‘기업가치 제고 계획의 목표와 임직원 보상체계를 연계’할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 안전사고 예방 성과 등을 경영진 KPI로 삼고 인센티브와 연결하면 실행력이 높아진다. 또한 CEO를 비롯한 임원들이 직접 대내외 커뮤니케이션에서 ESG와 가치제고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도록 하여 조직 문화와 시장 신뢰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명확한 ESG 투자수익률(ROI)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조직 내 회의론을 극복하려면, 에너지 효율 개선처럼 투입 비용과 재무적 효익(비용 절감 등)을 명확히 분석할 수 있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한다. 성공적으로 입증된 내부 사례는 전사적 확대를 위한 강력한 설득력을 제공한다.
투자자 관계(IR) 부서가 전략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IR 부서가 회사의 ESG 전략이 어떻게 리스크를 완화하고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창출하는지를 투자자들에게 명확히 설명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모든 투자자 소통 채널에 ESG 내러티브를 일관되게 통합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 'ESG 프리미엄'으로
밸류업과 ESG는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기업가치 창출'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한 동반자이다. 견고한 지배구조(G)는 신뢰의 출발점이며, 선제적인 환경(E) 경영은 새로운 성장 동력이고, 전략적인 사회(S) 책임은 지속가능한 시장의 기반이다.
이제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ESG 경영의 선도적인 실천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성과 가치 창출 능력을 입증한 기업에게 시장이 부여하는 추가적인 가치, 즉 'ESG 프리미엄(ESG Premium)'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이며, ESG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경로이다. 기업의 궁극적 목표인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이제 밸류업과 ESG의 선순환을 가속화해야 할 때다.
☞ 김형주 엠케이전자(주) 팀장은
김형주 팀장은 2006년 보광그룹에 입사하여, 현재 엠케이전자(주)에서 IR, M&A, ESG를 담당하는 미래전략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엠케이전자는2020년 ESG 선포를 했으며, 2022년 환경부 스마트 생태공장 구축 사업 운영, 업계 최초 POST 100% 재생제품 UL인증을 취득했으며, 현재 LCA One cycle시스템 구축을 진행하고 있는 반도체 소재 기업이다. 실무형 관리자로서 바쁜 와중에도 업무 관련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한양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ESG Track MBA 과정을 마쳤으며, ISO37301인증심사원 활동도 하고 있다.
☞ 장정민 매니저는
장정민 매니저는 2008년 동아제약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이크레더블과 금호석유화학을 거쳐 현재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이크레더블에서 공급망 ESG 평가 사업을 준비하며 지속가능경영과 ESG라는 영역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금호석유화학 ESG경영관리팀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ESG 관련 업무를 시작했으며 현재 지속가능경영 관련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다. 실무자로서 바쁜 와중에도 업무와 관련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한양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ESG Track MBA 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