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규제에 한국 철강·배터리 불리…국산 LCI DB 없인 수출 리스크 커진다

2025-09-17     송준호 editor

전과정목록 데이터베이스(LCI DB) 구축이 국가 경쟁력 확보의 핵심 기반이라는 점이 강조되면서, 국내 현실상 정부 주도로 추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제시됐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17일 오후 3시 ‘제30회 ESG 온(ON) 세미나’를 열고, LCI DB 구축 현황과 활용 방안을 주제로 논의를 진행했다. 이번 행사에는 350여 명이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발제는 허탁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이 맡아 전과정평가(LCA)의 의의와 국내외 탄소 규제 정책, DB 구축 동향을 소개했다. 이어 정인태 한국환경산업기술원 책임연구원, 안국헌 대한석유협회 지속가능경영실장, 차경훈 에코에이블컨설팅 대표가 토론자로 참여해 LCI DB 구축의 주체와 향후 과제에 대해 논의했다./임팩트온

 

글로벌 탄소규제 확산에 국산 DB 구축 절실

허탁 회장은 전과정평가(LCA)와 전과정목록(LCI) 데이터베이스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과정평가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구체적인 실천 도구"라며 "제품 중심의 탄소중립이 중요한데, 전체 탄소배출의 45% 수준이 제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탄소 무역장벽이 본격화되면서 LCI DB의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각국이 자국 산업육성과 탄소감축 전략을 연계하면서 '녹색 보호주의'가 나타나고 있다"며 "신 에코디자인 규제(ESPR), EU 배터리 규제, CBAM 등 제품 관련 규제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자체적인 LCI DB 구축에 힘을 써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허 회장은 "LCI DB가 관세와 인센티브의 기준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자체 데이터가 없으면 해외 데이터를 활용하게 되고, 한국 기업은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녹색산업법이 대표적 사례다. 이 법은 친환경 기술투자에 대한 세액공제(25~40%)와 전기차 보조금 지급의 기준으로 탄소발자국을 활용한다. 허 회장은 "각국 산업의 배출계수를 사용하는데, 우리나라 철강과 배터리 산업은 EU 통계를 활용해 탄소발자국이 높게 설정되어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글로벌 주요 LCI DB 현황/허탁 한국환경한림원 회장

현재 글로벌 LCI DB는 약 20만 개가 구축되어 있으며, 국가별로 구축 주체는 다양하다. 민간 주도로 스위스가 2만3523개, 독일이 1만9847개, 중국이 6만 개를 보유하고 있고, 일본은 정부 주도로 5000개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은 환경부가 1995년부터 2021년까지 약 300여개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2022년부터 현장 데이터 기반의 LCI DB 개발에 착수해 2028년까지 1000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허탁 회장은 "DB 구축 주체가 정부든 민간이든 데이터 품질과 신뢰도를 보장할 수 있는 기관이 진행하는 게 맞다"며 "동일한 LCI DB 방법론을 사용하고, 최종 관리는 통일된 형태여야 정책 실효성과 데이터 신뢰성이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기업 기밀성·구축비용 고려 시 공공 주도가 최선

토론에서는 LCI DB를 누가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해 집중 논의가 이뤄졌다. 패널들은 공통적으로 정부 주도 구축이 현실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정인태 환경산업기술원 책임연구원은 정부 주도 구축의 장점을 제시했다. 정인태 책임연구원은 "정부 예산으로 개발한 DB는 무료로 배포되고 있어 기업은 데이터 구매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며 "정부는 이해관계가 없어 가치중립적으로 DB 개발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부처 간 역할 분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연구원은 "정부 내에서 여러 부처가 DB 개발을 하고 있어 관리 주체에 대한 논의가 계속됐는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통해 환경부와 타 부처 간 논의를 거쳤다"며 "환경부가 주도적으로 DB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안국헌 대한석유협회 지속가능경영실장은 기업 데이터의 기밀성 측면에서 정부 주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안국헌 실장은 "민간기관이 온실가스 원단위 정보에 접근할 경우 생산활동 관련 영업비밀이 누출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어 "해외에서의 배출활동은 민간이 해외 기관과 협업 관계를 구축해서 배출원단위 정보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며 "다수의 민간기관이 각각 접촉하면 더 큰 비용이 지출되므로 공공기관이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경훈 에코에이블컨설팅 대표는 “DB 개발에는 많은 인적 자원과 비용이 사용되므로, 민간이 영리 목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효율성 측면에서는 정부가 주도해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