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원의 ESG투자트렌드】“주식(株式)만 먹고 살 순 없어”…자산군별 ESG투자 검토해야
ESG는 이제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익숙한 언어가 되어 가는 중이다. 그러나 투자 대상이 주식인지, 채권인지, 혹은 대체투자인지에 따라 ESG가 통합되는 방식은 달라진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주식투자 외의 자산군에서 ESG를 통합하는 접근법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자 한다.
주식, 채권, 대체투자 모두 ESG통합의 정의는 동일하다. ‘투자 과정에서 ESG와 관련된 기회와 위험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산군의 성격에 따라 어떤 면이 조금 더 부각되느냐, 어떤 절차를 거치느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같은 기업을 두고도 주식 투자자는 성장성과 기회를 주목하지만, 채권 투자자는 만기와 리스크를 중요시한다. 대체투자자는 아예 특정 자산이나 프로젝트의 성격 자체가 ESG 효과를 만들어내는지에 초점을 둔다. 결국 ESG투자의 본질은 동일하지만, 자산군의 특성이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에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채권투자와 ESG통합, 만기를 고려해야
회사채에 투자하는 경우 주식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주식과 동일하게 ‘기업이 발행한 증권’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권은 ‘빚’이라는 점에서 주식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자를 잘 내고 원금을 약속한 기한에 갚는 것이다. 따라서 업사이드 보다 하방리스크가 중요하다. ESG 관점에서도 당연히 기회보다는 리스크 요인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만기’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채권은 주식과 다르다. 같은 기업이라도 만기가 다른 채권을 여러 개 발행할 수 있다. 만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만기 밖의 리스크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어떤 기업이 3년 만기 채권과 10년 만기 채권을 발행했다고 하자. 기후리스크가 3년 이내에 작용할 가능성은 10년 내 작용할 가능성 대비 현저히 낮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기후리스크를 고려할 때 3년 만기 채권은 매수를 제한하지 않고 10년 만기 채권만 제한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의결권이 없다는 사실도 ESG투자 전략 상 큰 차이를 가져온다. 주식투자자는 의결권을 레버리지로 활용하여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우려가 있을 때 ‘주주관여활동’이라는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투자자는 상대적으로 기업에 영향력을 미칠 통로가 적다. 글로벌 대형 채권투자자 중심으로 리파이낸싱 조건 등과 결부하여 관여활동을 수행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아직까지는 제한적인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큰 차이는 ‘ESG채권’의 존재다. 회사는 ESG와 관련된 목적으로 사용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별도의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데, ‘녹색채권’, ‘사회적채권’ 또는 ‘지속가능채권’이라고 하며, 앞 글자를 따서 ‘GSS 채권’ 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자금 사용 목적을 제한하지 않되 ESG관련 KPI달성을 조건으로 거는 ‘지속가능연계채권’ 도 등장하여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ESG채권은 그 자체로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이 비교적 명백하다. 따라서 이를 활용하면 채권투자자는 주식투자자가 할 수 없는 ‘임팩트 투자’를 구현할 수 있다.
대체투자와 ESG통합, “재생에너지만 ESG투자 아냐”
대체투자는 주식이나 채권 같은 전통적인 투자자산이 아니라 부동산, 인프라, 사모펀드 등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위험과 수익 구조가 달라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를 높이는 데 활용된다.
대체투자의 경우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나 ‘친환경 빌딩’과 같은 ‘특정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여러 개의 기업이 아닌 특정 자산이나 프로젝트를 투자 대상으로 하는 대체투자에서는 해당 자산의 성격을 기준으로 ESG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익숙하다.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펀드를 ESG펀드로 보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ESG통합이 완성되려면 ‘투자 과정’에 ESG가 고려돼야 한다. 즉 투자 대상을 소싱하고, 실사를 거치고, 투자심의위원회를 열고, 투자 후에 해당 자산을 관리하는 과정에 ESG가 고려되어야 ‘ESG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세부 절차는 회사별로 다르게 가져갈 수 있으나, ESG관련 체크리스트를 활용하여 ESG리스크를 일차적으로 점검하고, ESG실사를 통해 심도 있게 리스크를 분석하고 중대한 ESG 리스크가 식별될 경우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절차는 큰 틀에서 보면 주식투자에서 ESG리스크를 식별하고 관리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다만, 주식투자나 채권투자의 경우 보통 수백 개, 수천 개의 투자 가능 기업에 대한 ESG리스크를 평가해야 하므로 일정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규격화된 ESG 평가 모형을 활용하여 일괄 평가하는 방식이 사용된다. 반면 대체투자의 경우 한 번에 손에 꼽히는 수의 자산을 검토하므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산별 특성과 계약 관계 등을 고려하여 심도 있는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한 가지 차이는 주식투자에 비해 투자 대상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투자 방식이나 계약 관계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수많은 주주 중 한 명으로서 한 자릿수 미만의 지분율을 갖는 주식투자에 비해 소수 투자자로 이뤄지는 대체투자는 투자 대상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ESG리스크가 발견되거나, 혹은 ESG관련 요소 개선(예를 들어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통해 자산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우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ESG통합, 투자자의 일을 하는 것
연기금 등 글로벌 큰 손들은 대체투자의 비중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장기 수익률 개선과 동시에 분산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공공연기금에서 상장 주식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년 47%에서 ‘22년 42%로,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6%에서 21%로 하락했다. 반면 대체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7%에서 35%로 증가했다. 해외 연기금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비중은 2002년 1% 미만에서 2024년 17%까지 큰 폭으로 늘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ESG투자 논의가 주식 및 채권 투자에만 머물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대체투자에 있어 ESG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트럼프 정부 이후 주춤한 것이 사실이지만, 국내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대체투자전문 데이터 회사 프레퀸(Preqin)에 따르면 ‘24년 ESG 펀드가 전체 사모자본(private capital) 모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1% 이상으로 상승하였다.
국내에서도 대체투자와 ESG의 논의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국정기획위원회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에 국민연금의 ESG원칙을 대체투자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주식투자, 채권투자, 대체투자, 모두 투자의 방식이 다른 만큼 ESG통합의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질은 동일하다. 투자 자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ESG요소를 식별하여 분석하고, 관리하는 것, 즉 투자자로서의 일을 하는 것이다.
☞ 박세원 팀장은
박세원 팀장은 국내 ESG리서치 기관에서 ESG리서치 및 의결권행사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5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ESG전담부서를 맡아 ESG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인 ESG평가 모형을 비롯한 ESG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운용부서와 협력하여 ESG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