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사의 이슈리뷰】 ESG 유행과 경제단체들의 이중적 태도
경제단체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8일과 20일 두 차례 ESG경영 포럼을 열어 기업들의 ESG 개념 정립과 대응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지난 14일 'K-ESG 얼라이언스'를 발족하고 ESG 관련 정보를 회원사와 공유하고 컨퍼런스, 기관투자자 대상 투자설명회도 개최할 방침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도 조만간 ESG경영위원회를 신설해 ESG 개념을 정립하고 기업 경영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갑자기 불어 닥친 ESG 열풍으로 기업들이 커다란 혼란에 빠져 있다는 게 경제단체들의 인식이다. 올해 초만 해도 ESG를 새로운 경영 트렌드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국내외 투자기관과 평가기관은 물론 정부와 국회까지 나서 ‘이제 ESG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ESG 경영을 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을 당하거나 경쟁에 뒤쳐지질 지도 모른다는 기업들의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포럼을 열고 전담조직을 만드는 것도 전방위적인 ESG 압박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인 동시에 기업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로서 우선 ESG의 개념부터 무엇인지 명확히 정립하고 신중하게 기업들의 대응전략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ESG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지만,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ESG 모범규준’이 기업 지속가능성 방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SG)은 “ESG 정보 공개와 책임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추어, 국내기업에 건전한 ESG 경영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취지 하에 10여년 만에 개정한 환경·사회·지배구조 모범규준(안)을 지난 3월 10일 공개하고 3월말까지 의견을 수렴했다. 개정안은 ESG 열풍의 진원지라고도 할 수 있는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전담협의체(TCFD, 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의 지침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모범규준 가운데 환경과 사회책임 부분이 2010년에 제정된 후 한번도 개정된 적이 없어, 대표적인 국내 ESG 평가기관으로서 당연한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범 규준에 대한 전경련의 의견이 의외였다. 3월말 전경련이 배포한 보도자료는 이렇게 시작했다.
"ESG 관련 기업규제를 집대성한 버전이네요."
"다 지키다간 성장은커녕 지속가능은 과연 가능할까요?"
전경련이 아니라 ‘기업들의 반응’이라고 명시했지만, 보도자료도 ESG 모범규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전경련의 판단도 동일한 듯하다. 사실 처음 “전경련, ESG 모범규준 개정안이 기업 지속가능성 방해”라는 신문 기사만 보고선 KCGS의 모범규준이 산업현장의 실태나 기업들의 고충을 외면한 채 너무 무리한 기준을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8장짜리 의견서를 모두 보고 나서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의견서만 보면 전경련은 ESG를 철저하게 ‘규제’로만 인식할 뿐, 지속가능성에 대한 그 어떤 고민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경련이 서두에 언급한 “ESG 경영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이란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는 수사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ESG는 정부로부터 비롯된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환경의 변화에 따라 촉발된 ‘경기의 룰’이 바뀌는 것인데 전경련 의견서는 선수가 그 룰을 탓하고 있는 격이었다.
가령, 전경련이 대표적으로 비판한 ‘좌초자산’의 경우 아직 IFRS 회계기준에 반영되지 않은 개념이라고 지적했지만, IFRS 상으로도 '자산 손상' 혹은 '유형자산에 대한 손상차손'으로 반영하는 방안을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다. 더구나 좌초자산이 언급된 맥락을 보면 회계 반영이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요인으로 고려하라는 것인데, 한마디로 논점을 흐리고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서명한 미국의 BRT Vs.
ESG 규제 볼멘소리하는 한국의 경제단체들
2019년 8월, 제이미 다이먼(JP모건),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팀 쿡(애플), 메리 배라(GM) 등 미국의 대표 기업 CEO 181명은 ‘주주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Statement on the Purpose of a Corporation)’에 서명했다. ‘고객 가치 제공, 임직원 투자, 협력 업체와의 공정하고 윤리적인 거래, 지역사회 지원, 환경보호, 장기적인 주주 가치 창출’을 약속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경련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재계의 대표기관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 Business Roundtable)의 CEO들이 영미 자본주의 역사에 기록될만한 선언을 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제단체들이 ESG 전담조직을 만든다, 포럼을 개최한다 분주하지만, 정작 아직까지 어느 경제단체도 BRT와 같은 ‘의미 있는’ 선언이나 사회적인 약속은 하지 않았다.
마침 경총은 지난 1일 ‘한국의 반기업정서, 원인진단과 개선방안’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어느 경영학 교수는 “기업의 역할과 기업가의 정당한 보상인 ‘이윤’의 개념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어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발생하고, 결국 기업규제 강화로 이어진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반기업정서 해소방안으로 ‘올바른 시장경제 교육’과 ‘정부의 경제개입 최소화’를 꼽았는데,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반기업정서를 극복하려면 국민들에게 ‘경제교육’을 하기 전에 기업들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 ESG만 해도 말로만 공감한다고 하지 말고 ESG를 규제나 리스크로 보는 시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기업들이 왜 ESG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경제단체는 기업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지만, 기업의 바람직한 변화를 선도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 둘 사이의 긴장과 균형이 깨어지면 기업에도 도움이 안되고 국민들의 신뢰회복은 요원하다.
※하인사(hindsight)님은...

'하인사(hindsight, 필명)'는 뒤늦은 깨달음, 뒤늦은 지혜라는 뜻입니다. 기후변화, 지속가능성 모두 인류의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의미이지요. 하인사님은 대기업 홍보팀에서 20년 가량 일했습니다. 회사의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기획하면서 CSR 업무와 인연을 맺게 됐으며, 회사 CSR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ESG 이슈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고민했습니다. 2021년부터 <임팩트온>에서 【하인사의 이슈리뷰】를 연재, ESG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