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기업 70%, 규제 완화 반대…“지속가능성 의무가 경쟁력”

2025-10-04     김환이 editor

유럽연합(EU)이 기업 규제 간소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유럽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지속가능성 규제 유지를 지지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기후 싱크탱크 E3G와 글로벌 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기업은 지속가능성 규제가 경쟁력과 투자 유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며, 유럽은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고 지속가능성 의무를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등 5개국 기업 2500여 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 기업 70%, "지속가능성 보고 필요해"… 규제 완화보다는 현행 유지

이번 조사는 EU 집행위원회가 추진 중인 ‘옴니버스(Omnibus) I 패키지’ 논의 과정에서 나왔다. 이 패키지는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과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을 포함한 다양한 규제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고 보고 의무를 간소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표적으로 CSRD 적용 기준을 현행 250명 이상 기업에서 1000명 이상으로 상향하고, 보고 항목도 대폭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설문 응답 기업들은 대체로 규제 완화보다는 현행 유지를 선호했다. 전체 응답 기업의 70%는 지속가능성 보고 의무 적용 기준을 1000인 이하로 설정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은 500인 이하 기업에도 보고 의무를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대로 1000인 이상으로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응답은 15%에 그쳤다.

표=E3G

규제 필요성에 대한 인식 차원에서도 기업 규모별로도 차이가 뚜렷했다. 직원 250~999명을 보유한 중견기업 중 70%가 지속가능성 보고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중소기업(SME)에서도 절반 이상이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전체적으로 응답 기업 10곳 중 6곳은 “기업 규모에 맞는 비례적 요구와 의미 있는 데이터라면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급망 실사·전환 계획 의무에도 대다수 긍정적 응답

응답 기업들은 보고 의무뿐 아니라 실사와 전환 계획 등 보다 강도 높은 규제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응답 기업의 55%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해지는 것이 경쟁력에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중요하지 않다고 한 기업은 21%에 그쳤다. 또한 절반(50%)은 “정기적인 지속가능성 데이터 수집·보고가 투자 기회 확대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으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 기업은 18%에 불과했다.

표=E3G

글로벌 리더십 측면에서도 68%가 “EU와 유럽 기업이 지속가능성 표준에서 세계적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10%에 불과해, 기업 대다수가 EU의 글로벌 표준 주도 역할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가능성 실사 규제와 관련해서는, 과반수 기업이 “대기업은 소규모 공급업체로부터 적절한 지속가능성 데이터를 요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단, 이 역시 기업 규모에 맞는 비례적 부담이 전제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또한 CSDDD 적용 범위에 대해서는 응답 기업의 41%는 인권·환경 리스크가 ‘직접 거래처’보다 ‘간접 공급망’에서 더 크다고 지적했으며, 직접 거래처를 주요 리스크로 꼽은 기업은 18%에 불과했다. 이는 규제를 직간접 공급망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점을 시사한다.

응답 기업의 63%가 “대기업은 녹색 경제로의 전환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특히 대기업 응답자 상당수가 “공정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반대는 11%에 그쳤다. 이는 기업들이 단기적 비용보다 장기적 생존 전략 차원에서 전환 계획을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속가능성, 기업 규제가 아닌 경쟁력이자 투자 기회

이번 조사 결과는 EU 정책 기조와 뚜렷한 온도차를 드러낸다. 집행위는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지만, 정작 기업들은 지속가능성 규제를 ‘경쟁력 확보 및 투자 기회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설문에 따르면, 지속가능성이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응답 비율이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에 비해 3배 높았다. 대기업일수록 그 인식은 더 강하게 나타났다. 또한 전체 응답 기업의 3분의 2 이상은 “EU가 글로벌 비즈니스 표준을 선도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이에 반대한 기업은 10%에 불과했다.

E3G의 유럽 지속가능금융 책임자 유레이 야다는 “정책입안자들은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의무를 원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가정에 기반해 움직이고 있다”며 “이번 조사는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단순한 관료적 절차가 아닌 경쟁력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