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 존 케리와 마크 카니... 한국의 기후 리더십이 없다

2021-04-28     박란희 chief editor

지난 23~2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기후 정상회담’을 청와대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지켜보면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기후정상회담이 열리기 전 대기시간 10분 동안 서남해 해상풍력단지 방문 현장, 충남 보령화력발전소에서 열린 그린뉴딜 추진전략 발표 현장, 당인리 복합화력발전소에서의 나무심기 현장 등 문재인 대통령의 그린뉴딜 정책 홍보 영상이 이어졌다. 

바로 뒤이어, 기후정상회담 본회의의 사전영상으로 미국측에서 방영한 3분짜리 영상이 나왔다. 위성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 이와 함께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산불, 홍수, 폭염 등이 화면에 소개됐다. 바이든을 포함, 유엔 사무총장, 칠레 환경부장관, 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샬제도의 대통령까지 등장해 “기후 위기를 막아내자”며 한 목소리를 외쳤다.

청와대는 왜 기후정상회담 앞 장면 10분을 현 정부 정책홍보에만 썼을까.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대한민국에선 2050 탄소중립이 왜 필요한지, 탈탄소 로드맵에서 우리 사회가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풀어내고,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청와대의 기후정상회담 스트리밍은 1시간45분 문재인 대통령 연설을 끝으로 끝나버렸다. 문 대통령 뒷부분에 나온 기후정상들의 발언을 듣기 위해 다시 유튜브에서 검색해, 해외발(發) 스트리밍을 봐야 했다. 

 

미국의 존 케리, 영국의 마크 카니 

이번 기후정상회담에서 언급되어야 하는 인물은 존 케리(John Kerry) 바이든 대통령 기후특사다. 그는 기후정상회담에서 각국 정상들의 온실가스 감축을 발표하도록 전 세계를 돌면서 물밑작업을 벌여왔다. 이번 회담 내내 바이든 대통령, 존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함께 좌석에 앉아 있었다.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참석 여부였다. 사실 존 케리 특사는 올 초 세계경제포럼(WEF) 회상회의에서 중국의 2060 탄소중립 계획을 꼬집으며 “중국이 2060년까지 뭔가를 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여전히 세계의 70%를 석탄 발전소 공장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1위를 차지하는 중국이 탄소 중립 선언 이후에도 화력발전소를 계속 건설하는 이중적 태도에 대해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회담에 중국 시진핑 주석을 초청하기 위해 직접 중국을 방문하며 특별한 공을 들였고, 마침내 시 주석을 대화 테이블에 앉히는데 일조했다. 기후 외교가 빛을 발한 셈이다.

Secretary Kerry’s Press Statement on International Migrants Day

존 케리 특사는 민주당 대선후보, 상원의원 외교위원장, 오마바 행정부 국무장관을 역임한 거물급 인사다. 파리협약 체결 당시 미국의 정부측 대표이기도 하다. 미 국무장관이던 그는 2016년 4월 22일 기후변화를 막는 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의무라는 뜻에서 자신의 손녀딸을 직접 안고 유엔총회장 단상에 등장해 협정에 서명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존 케리 특사 임명은 그의 대선 공약 추진에 관한 의지의 표현이자, 글로벌 기후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다목적 포석이 깔린 한 수였다.

한편,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도 기후변화 자문을 하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마크 카니 유엔 기후변화특사다. 그의 경력은 화려하다. 하버드대 경제학 학사, 옥스퍼드대 경제학 석박사를 딴 후 골드만삭스에서 13년을 근무한 후, 캐나다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을 역임하고 외국계로는 처음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총재를 맡아 3연임까지 한 인물이다. 마크 카니는 기후변화가 금융에 미칠 영향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며,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주도한 인물이다. 2015년 주요 20개국(G20)이 설립한 금융안정위원회(FSB)에서도 통화정책 고려 요인으로 기후변화를 포함하자고 각 중앙은행에 권고했고, 이는 그해 12월 기후변화재무정보공개태스크포스(TCFD) 설립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WEF포럼에서 발언중인 마크카니 유엔 기후변화특사. /WEF

그는 최근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릴 예정인 유엔기후변화협약(COP26)을 대비해 ‘탄소중립을 위한 글래스고 금융연합(The Glasgow Finance Alliance for Net-Zero)을 발족했다. 자산 70조달러(7경8000조원) 이상 투자자와 은행 160여개를 포괄하는 넷제로 금융 이니셔티브다. 여기에는 넷제로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et-Zero Asset Mangers Initiative), 넷제로 자산소유자연맹(Net-Zero Asset Owner Alliance), 유엔 넷제로뱅킹 얼라이언스(UN-convened Net-Zero Banking Alliance)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후 금융의 어젠다를 주도하는 조직을 마크 카니가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는 COP26을 앞두고 보리스 존슨 총리의 ‘녹색금융’ 부문 자문을 맡고 있다. 이번 기후정상회담에서 영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표치인, ‘1990년 대비 68% 감축’이라는 가장 강력한 정책을 발표했다. 기후 리더십을 쥐려는 영국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 컨트롤타워 되나 

한국 상황을 돌아보자. 우리나라에서 과연 기후 관련해 큰 그림을 그리고 정책 어젠다를 제시하고, 글로벌 변화를 모니터링 하는 곳은 어디 있는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존 케리 혹은 마크 카니와 대화 테이블에 앉을 사람은 누가 있을까. 기재부장관인가? 금융위원장인가? 환경부장관인가? 아니면 총리인가?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전환의 물결은 국가 에너지 정책, 산업 정책, 금융통화 정책 등을 포함해 미래를 대비하는 큰 그림이 필요한 주제다. ‘2050 탄소중립’을 발표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2050년이면 나는 현직에 없을 것”이라며 우스갯소리 하는 이들이 많다.

27일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 및 탄소중립 정책을 총괄할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다음달 출범한다고 밝혔다. 기존의 녹색성장위원회, 국가기후환경회의, 미세먼지특별위원회 등 3개 위원회를 통합하고, 국가기후환경회의를 폐지하기로 했다. 컨트롤타워가 생긴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임기를 1년밖에 남겨두지 않은 정부에서 얼마나 추진동력이 생길지 의문이 든다. 분기별 회의만 하다 세월을 보내지 않을까 걱정이다. 탄소중립위원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권의 교체유무와 상관없이 우리나라, 아니 전 지구의 생계가 걸려있는 중요한 위원회로서 역할해야 한다. 글로벌 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할 ‘기후정책 리더’까지 볼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마크 카니의 인터뷰 중 흥미로운 내용은 ‘지평선의 비극(tragedy of the horizon)’이라는 용어였다.

“일반적인 경기 순환의 지평선은 정치 순환인 4년 주기로 측정된다. 규제당국, 중앙은행 등은 종종 2~3년 앞만 내다본다. 이러한 모든 지평선은 지금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의 진정한 재앙적 영향이 드러나는 지평선보다 훨씬 짧다. 기후변화의 물리적 영향이 큰 규모와 빈도로 나타날 때는, 너무 늦었다.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야 한다. 그것이 지평선의 비극을 해결하는 방법이다.”(WEF 인터뷰 중)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는 것, 어렵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박란희 대표 &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