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석유·가스 산업에 역풍…비용 40%↑·투자 500억달러 연기

2025-10-30     이재영 editor

미국의 금속 관세 인상이 석유·가스 산업 전반에 ‘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각) 로이터는 딜로이트 보고서를 인용해, 철강·알루미늄·구리 등 주요 소재에 대한 고율 관세가 에너지 산업의 비용·공급망·투자 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딜로이트는 이번 조치로 자재와 서비스 비용이 최소 4%에서 최대 40%까지 상승할 수 있으며, 500억달러(약 71조800억원) 규모의 해상 프로젝트와 최종투자결정(FID)이 2026년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시추·정유 전 공정에 비용 압박…OCTG는 최대 40% 상승

올해 미국 정부는 북미무역협정(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3국 자유무역협정) 적용 대상이 아닌 원유에 10~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철강·알루미늄·구리와 이들 금속을 원자재로 한 압축기·펌프 등 산업용 기자재에도 최대 50%의 관세를 적용했다. 석유·가스 산업은 시추장비, 밸브, 특수강관 등 주요 설비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이러한 조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미국 석유·가스 산업의 부문별 관세 영향 추정치. / 딜로이트 

딜로이트 분석에 따르면, 관세로 인한 비용 상승 폭은 부문별로 차이를 보인다. 시추용 강관(OCTG)은 수입 철강 의존도가 높아 최대 40%, 해상 서비스 비용은 15%, 해상 프로젝트는 8%, LNG 건설은 4.6%, 시추 및 완결 공정은 4.5%, 전체 유정 비용은 4% 상승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석유용 강관(OCTG)의 약 40%가 해외 수입으로 충당되고 있어 관세 인상분이 그대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딜로이트 보고서는 관세가 일부 철강업체에는 단기적인 보호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에너지 산업 전체로는 공급망 비용 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정유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USMCA 비적용 원유에는 캐나다산 10%, 멕시코산 25%의 관세가 부과될 수 있어 WTI–WCS(서부텍사스중질유–서부캐나다중질유) 가격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WTI는 WCS 대비 배럴당 약 13달러(약 1만8000원) 프리미엄에 거래되고 있다. 로이터는 이러한 관세 조치가 미국 정유사의 조달비용과 수익성에 부담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투자 지연·계약 재협상 확산…“‘최저가 조달’보다 회복력 중심으로”

딜로이트는 관세 인상이 단기적으로 산업 투자 활동을 둔화시키고 공급망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원유·가스 가격이 시장 수급으로 결정되는 만큼, 기업들은 비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쉽게 전가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대형 해상 프로젝트의 최종투자결정(FID)이 연기되고 투자 모멘텀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비용 상승은 계약 구조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운영사들은 원자재 가격과 환율 등 변동 상황에 따라 계약 금액을 조정할 수 있는 가격연동(에스컬레이션)·법령변경·불가항력 조항 등을 포함해 계약을 재협상하며 공급사와 리스크를 분담하고 있다. 딜로이트 보고서도 변동성이 커진 환경에서 기업들이 고정가 일괄계약 대신, 상황에 따라 조정이 가능한 유연한 조달 모델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공급망 전략 역시 ‘최저가 조달’에서 ‘회복력 확보’로 옮겨가고 있다. 기업들은 국내 또는 비관세권 공급선 전환, 자유무역지대(FTZ) 활용, 품목 재분류 등을 통해 관세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딜로이트는 이번 관세가 일시적 충격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조달 전략과 공급망 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정책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중소 서비스 기업이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LNG·디지털 전환은 완충 역할…“단기 역풍, 중기엔 체질 개선”

딜로이트는 보고서에서 관세 여파에도 불구하고 LNG 수출 확대와 디지털 전환이 에너지 산업의 완충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했다. 2025년 상반기부터 비자유무역국(LNG 비FTA) 대상 수출 승인 절차를 단계적으로 완화해온 미국 정부의 조치가 하반기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산업 부문의 에너지 수요 확대가 맞물리며 천연가스 투자가 완만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인공지능(AI)과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예지정비, 자동화 점검, 공정 최적화 등 디지털 기술이 생산성 둔화 구간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딜로이트 보고서는 AI 기반 운영 효율화가 기업의 마진 방어 수단으로 작용하고, 중기적으로는 디지털 전환과 조달 다변화가 산업 체질 개선을 이끌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