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 감축 실적 이전 표준화… VCM 크레딧의 ITMO 전환 절차 마련
각국 정부가 민간 탄소시장 인프라를 활용해 파리협정 6.2조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표준 절차가 공식화됐다.
11일(현지시각) 탄소크레딧 인증기관 베라는 싱가포르 국립기후변화사무국(NCCS), 골드스탠다드와 함께 국가 간 감축 실적 이전을 위한 '6.2조 탄소크레딧 프로토콜'을 발표했다.
싱가포르는 6.2조 기반의 양자협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국가로, 자국 탄소세 제도와 해외 ITMO 도입 계획을 연계해 실제 운영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이번 프로토콜에 싱가포르가 참여한 것도 이러한 선도국 역할과 시범 적용 필요성이 맞물린 결과다.
이번 프로토콜은 2023년 COP28에서 논의가 시작된 이후 2년간의 검토를 거쳐 마련된 첫 실무 지침이다.
민간 검증 시스템 활용해 정부 부담 완화
프로토콜은 각국 정부가 자체 탄소크레딧 인증 체계를 구축하는 대신 기존 민간 검증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절차를 표준화했다. 정부·인증기관·프로젝트 개발자 간 역할을 명확히 하고, 크레딧 승인·이전·등록·라벨링 과정에서 따라야 할 공통 절차를 제시했다.
파리협정 6.2조는 국가들이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해 국가결정기여(NDC) 목표 달성을 위해 감축 실적을 서로 이전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한 국가에서 발생한 감축·제거 실적을 다른 국가가 도입할 수 있으며, 동일한 실적을 양국이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상응 조정’ 절차가 적용된다.
판매국은 이전한 감축량을 자국 NDC 실적에서 제외하기 위해 해당량을 배출량 산정표에 다시 더하고, 구매국은 도입한 만큼을 자체 감축 실적에서 뺀다. 이는 실제 배출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감축 실적을 단일 국가만 활용하도록 하기 위한 회계 조정 방식이다.
이번 프로토콜은 자발적 시장의 크레딧과 국가 간 이전 실적인 ITMO의 역할을 구분하고, 두 체계를 투명하게 연동할 수 있도록 절차를 표준화한 것이 핵심이다. 민간 인증기관 레지스트리에서는 크레딧 발행·이전·소각 등 시장 거래가 이루어지며, 국가 레지스트리에서는 정부 승인과 상응 조정 등 ITMO 회계가 별도로 관리된다. 이를 통해 민간 크레딧이 정부 승인 과정을 거쳐 ITMO로 전환될 때, 민간 거래 정보와 NDC 보고 체계가 충돌하지 않도록 정합성을 확보했다.
2중 레이어 구조로 투명성 확보
프로토콜은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ITMO 전환 절차를 구체화했다. 정부가 크레딧에 ‘6.2조 승인’ 라벨을 부여하면 사용 목적(NDC 이행, CORSIA 등)이 명시되고, 이후 정부가 투명성 보고서(BTR)에 상응 조정을 반영하면 ‘상응 조정 적용’ 라벨이 추가된다. 이 과정이 완료돼야 해당 크레딧은 공식 ITMO로 인정된다.
민간 인증기관은 발행·이전·소각 정보를 정부에 정기적으로 제출하고, 정부는 이를 토대로 UNFCCC에 연례 정보와 투명성 보고서를 보고한다. 프로토콜은 추적성을 높이기 위해 ITMO 고유 식별자에 민간 레지스트리의 일련번호를 통합하도록 권고했으며, 향후 레지스트리 간 데이터 연계를 자동화할 디지털 솔루션 개발도 포함했다.
베라의 맨디 람바로스 CEO는 “독립 인증 프로그램의 표준과 검증 체계를 정부가 6.2조 협력에 활용할 수 있다”며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구축된 기반이 컴플라이언스 시장과 6.2조 인프라에 통합되면 시장 가동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부터 적용, COP30까지 개선
이번 구상은 2023년 COP28에서 처음 제안됐다. 세 기관은 국가별로 상이한 6.2조 이행 방식이 시장 통합과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고 공통 절차를 마련하기로 했다. 2024년 COP29에서 초기 권고안을 발표한 뒤 각국 정부·시장 전문가들과 협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했다.
최종 프로토콜은 COP29 결정사항을 반영했으며 2025년부터 적용된다. 세 기관은 앞으로 정부·인증기관과 함께 프로토콜 적용을 시범 운영하며, ITMO 식별자 구조, 데이터 표준 프로토콜, 수익 배분 체계 등 추가 요소를 개선할 계획이다.
싱가포르 NCCS의 베네딕트 치아 국장은 "독립 인증 프로그램과 정부 간 협력을 촉진하는 프로토콜이 있어야 6.2조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고 밝혔다. 골드스탠다드의 마가렛 김 CEO는 "시장 신뢰는 견고한 기반 위에서 구축된다"며 "정부와 인증기관 협력으로 기후와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본헤럴드는 각국이 자체 인증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대신 민간 시장 인프라를 공식 정책 체계에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토콜이 탄소시장과 국가 기후정책을 연계하는 흐름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