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데이터센터 전력난, 빅테크 ‘PPA 확보’와 ‘지역 갈등’이 최대 리스크로

2025-11-17     송준호 editor

미국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급증으로 전기요금이 폭등하자 기술기업들이 장기 전력구매계약(PPA)과 원자력 투자로 자체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14일(현지시각) CNBC는 데이터센터가 집중된 지역에서 전기요금이 전국 평균의 2~3배 급등하면서 빅테크 기업들이 지역 전력망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용량, 2035년까지 5배 증가 전망. 딜로이트에 따르면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용량은 2024년 33GW에서 2035년 176GW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 자료 제공 = 딜로이트 에너지산업연구센터

 

용량시장 비용, 소비자에 고스란히 전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전국 평균 전기요금은 전년 대비 6% 상승했다. 하지만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집적지인 버지니아주는 13%, 일리노이주는 16%, 뉴저지주는 20%를 넘어섰다. 이들 주는 대부분 미국 최대 전력망 PJM 인터커넥션에 연결돼 있다.

문제의 핵심은 미국 전력시장의 독특한 구조에 있다. PJM은 용량시장(capacity market)을 운영하는데, 이는 미래 전력 수요에 대비해 발전소들로부터 공급 능력을 미리 확보하는 시스템이다. PJM의 용량 확보 비용은 2024~2025년 22억달러(약 3조2100억원)에서 2025~2026년 147억달러(약 21조4800억원)로 500% 이상 폭등했다. 최근 경매에서는 161억달러(약 23조5300억원)로 다시 10% 올랐다.

예를 들어 데이터센터가 대거 들어서면 PJM은 "2026년에 전력이 부족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발전소들에게 "그때 전력을 공급할 준비를 해달라"며 미리 돈을 지불한다. 문제는 이 용량 비용이 데이터센터에만 부과되는 게 아니라, 해당 지역 전체 전력 소비자에게 분산 부과된다는 점이다. 전력 사용량이 늘지 않은 일반 가정과 상가도 데이터센터 때문에 증가한 용량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구조다.

한국은 한전이 발전·송전·배전 비용을 모두 합쳐 총괄원가 방식으로 요금을 결정하고, 정부가 요금 인상을 통제한다. 반면 미국은 시장 경매로 결정된 용량 비용이 전력회사를 거쳐 소비자 요금에 그대로 반영된다. PJM 독립 감시기구인 모니터링 애널리틱스는 "147억달러(약 21조4800억원) 중 93억달러(63%, 약 13조5900억원)가 데이터센터 수요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존스홉킨스대 에이브러햄 실버먼 연구원은 "이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생계비 위기의 극히 큰 요소"라고 지적했다. PJM 독립 감시기구는 "용량시장 결과를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반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데이터센터로 인한 부하 증가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PJM 지역 내 전력가격 상승폭이 큰 노드(전력거래 지점)의 70% 이상이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 50마일 이내에 위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생에너지 PPA로 '탈(脫)계통' 가속

전력비용 급등에 직면한 기술기업들은 장기 PPA 체결로 독자적인 전력 확보에 적극 나섰다. 구글은 지난 12일 토탈에너지스와 15년 장기 PPA를 체결해 오하이오주 태양광 발전소로부터 1.5테라와트시(TWh)를 공급받기로 했다. 이 발전소는 PJM 계통에 연결되지만, 구글이 발전량 전체를 확보해 요금 변동성을 차단한다.

메타는 지난달 ENGIE와 PPA를 확대해 텍사스 4개 프로젝트에서 총 1.3기가와트(GW)를 확보했다. 600메가와트(MW) 규모의 스웬슨 랜치 태양광 프로젝트는 2027년 가동 예정으로, 메타가 발전량 100%를 20년 장기 계약으로 구매한다. 아마존은 2010년 이후 500개 이상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해 연간 7만7000기가와트시 규모의 전력을 확보했다.

데이터센터 전문 매체 DCD(Data Center Dynamics)에 따르면 이러한 PPA 계약은 통상 10년 이상 장기로 체결되며, 가격 구조는 고정형과 변동형을 혼합한다. 고정가격은 장기 비용 예측이 가능하지만 시장가격보다 비쌀 수 있고, 변동가격은 불확실성이 크지만 유리한 시장 상황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원자력이 '궁극의 해법'

장기 해법으로 빅테크들은 원자력에 주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9월 컨스텔레이션 에너지와 20년 PPA를 맺고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 1호기를 재가동하기로 했다. 2019년 경제성 문제로 폐쇄됐던 이 원전은 2027년 말 재가동을 목표로 하며, 835MW를 마이크로소프트에 공급한다. 총 투자액은 16억달러(약 2조3380억원)다.

메타는 6월 일리노이주 클린턴 원전으로부터 1.1GW를 20년간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폐쇄 예정이던 이 원전은 시설 확장을 거쳐 재가동되며, 연간 1350만달러(약 197억원)의 세수를 창출할 예정이다. 아마zon은 3월 서스케하나 원전 인근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6억5000만달러(약 9500억원)에 매입하고, 탈렌 에너지로부터 2042년까지 1.9GW를 공급받기로 했다.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에도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구글은 카이로스 파워와 제휴해 2035년까지 500MW 규모의 SMR을 개발하고, 첫 원전을 2030년 가동할 계획이다. 아마존 또한 X-에너지의 SMR 개발을 지원하며 향후 데이터센터 전력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딜로이트는 2035년까지 원자력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최대 10%를 충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역사회 반발, '공동체 기여'로 달래기

전력 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 반발 관리다. 텍사스주 샌마커스는 주민들이 정전 우려를 제기하자 15억달러(약 2조1900억원) 규모 데이터센터 개발을 중단시켰다. 메릴랜드주 프린스조지스 카운티는 2만명 이상이 서명한 청원 이후 180일간 신규 데이터센터 제안을 유예했다.

기술기업들은 지역 기여 프로그램으로 대응하고 있다. 메타는 2011년부터 데이터센터 소재 지역에 커뮤니티 액션 그랜트를 운영하며, 올해 7개 지역을 추가했다. 위스콘신주 비버댐 신규 시설에는 10억달러(약 1조460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저소득층 에너지 지원 기금에 1500만달러(약 220억원)를 기부했다. 아마존은 오리건주 동부 지역에 156억달러(약 22조7960억원)를 투자하고 원주민 커뮤니티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일부 지자체는 세수를 주민 복지에 환원하고 있다. 오하이오주 뉴올버니는 데이터센터 세제 혜택을 지역 식물원과 STEM 교육, 커뮤니티센터 20만달러 투자와 연계했다. 버지니아주 헨리코 카운티는 데이터센터 세수 6000만달러(약 880억원)를 주택 신탁기금에 편성해 5년간 750채 건설을 지원한다.

오리건주는 6월 POWER Act를 제정해 전력회사가 데이터센터와 더 공정한 요금 계약을 체결하도록 의무화했다. 위스콘신주는 대규모 전력 수요자에게 전용 인프라 비용을 부담시키는 요금제를 도입했다.

전력 컨설팅 업체 그리드 스트래티지스의 롭 그램리치 대표는 "공급과 수요가 팽팽한 상황에서 이번 10년 내 전기요금이 내려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