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탈탄소 전환, 어디까지 왔나

2025-11-19     이재영 editor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는 철강 산업의 탈탄소 전환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세계 철강업계는 전 세계 탄소배출의 약 7%를 차지하는 철강 산업의 대전환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그린 스틸(Green Steel)' 여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블룸버그는 18일(현지시각) 철강 산업의 친환경 전환은 어렵지만,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시도하고 있다며 북유럽과 독일을 중심으로 한 전환 시도의 현재 상황을 점검했다.

 

유럽, 규제 강화와 탄소가격제 덕에 전환 가속

컨설팅기업 맥킨지앤컴퍼니에 따르면, 향후 전 세계 1650개 이상의 철강 공장은 더 엄격해질 온실가스 배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탈탄소화 공정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적인 제강은 탄소를 두 번 배출한다. 석탄을 가열해 코크스를 만들 때, 그리고 그 코크스를 연소해 2000도가 넘는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녹일 때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 철강수요가 18%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컨설팅기업 우드맥킨지는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에 2050년까지 약 1조4000억달러(약 2045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한다.

탄소 감축 압력이 커지면서 제철업계는 재생에너지 기반의 수소환원공정과 전기 아크로(EAF) 재활용 생산 같은 기술로 눈을 돌리고 있다. 문제는 기술 비용과 공급 여건이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 철강수요가 18%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철강 산업의 탈탄소화에는 2050년까지 약 1조4000억달러(약 2045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컨설팅기업 우드맥킨지는 추정한다. /임팩트온 사진DB

산업 구조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정책이다. 유럽연합은 배출권거래제(EU ETS)를 강화해 중공업에 '탄소배출권 구매'를 의무화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정량의 무상할당이 있었지만, 2035년 이후에는 전면 폐지된다. 이는 탄소 가격이 철강 생산비를 직접 압박해 기존 제철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녹색철강이 상대적 경쟁우위를 얻는 경로를 열어준다.

EU는 여기에 더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단계적으로 도입, 수입 철강에도 탄소비용을 부과한다. 이 제도 변화는 이미 기업의 투자 흐름을 바꾸고 있다. 스웨덴, 독일 등은 '청정 제철의 선도무대'로 부상했다. 반면 값싼 탄소배출이 가능한 아시아 지역은 여전히 탄소가격 노출이 제한적이어서 정책 격차가 생기고 있다.

 

스웨덴의 선도기업 ‘스테그라’ – 세계 최대 규모 녹색제철소 건설

시장의 관심은 단연 스웨덴이다. 현지 스타트업 '스테그라(H2 Green Steel)'는 전 세계 녹색철강 시장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북극권 바로 남쪽에 위치한 스웨덴 북부 보덴 지역에 연간 250만 톤 규모의 친환경 철강을 생산할 신축 제철소를 짓고 있다. 세계 최대의 '화석연료 없는 제철소'가 될 이 공장은 녹색수소를 사용해 철광석에서 직접환원철(DRI)을 생산하는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스테그라는 이미 총 65억유로(약 9조7000억원)를 확보했으며, 프로젝트 완성을 위해 10억 유로(약 1조6900억원)를 추가로 조달 중이다. 공사 지연과 에너지 인프라 비용 상승으로 완공 목표가 당초보다 몇 년 늦춰진 2027년으로 변경됐다.

이 회사는 올해 6월 자본시장 설명회에서 "2030년까지 유럽의 녹색철강 수요가 1900만톤에 이를 것"이라며 "공급은 900만톤에 불과해 심각한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스테그라는 전체 1단계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이미 사전판매했으며, BMW·볼보·이케아·마이크로소프트 등 30여 개 글로벌 기업들과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SSAB, ‘화석연료 없는 철강’ 상업생산 성공… 전력연결 문제로 차질

역시 스웨덴의 철강 대기업 사브(SSAB AB)도 '녹색 철강' 전환의 선두에 서 있다. SSAB는 올해 45억유로(약 7조6000억원)를 들여 전기 아크로 두 기를 설치하는 대규모 신축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전력망 연결 문제로 인해 당초 계획보다 1년 늦은 2029년 말에 상업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 회사는 이미 2021년 세계 최초로 화석연료 없는 철강을 소량 생산한 이후, 2023년부터 상업용 제품 'SSAB 제로(SSAB Zero)'를 시장에 내놓았다. 현재는 전체 생산량의 극히 일부지만, 향후 완전한 탈탄소 생산체계로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볼보 그룹 등 주요 유럽 완성차 업체가 SSAB의 주요 고객이다.

독일의 티센크루프(ThyssenKrupp AG)는 '녹색수소 제철소' 건설을 위해 2023년 독일 정부로부터 20억 유로 규모의 보조금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제조원가 상승과 수소가격 급등으로 프로젝트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티센크루프는 올해 3월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친환경 제철소 건설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클리블랜드-클리프스 – 오하이오 친환경 제철 프로젝트 전격 취소

미국에서도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분위기는 엇갈린다. 클리블랜드-클리프스(Cleveland-Cliffs Inc.)는 올해 6월, 오하이오주에서 추진하던 5억달러(약 7300억원) 규모의 수소기반 녹색철강 공장 건설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회사는 "현시점에서는 투자수익을 담보할 시장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의 철강기업들은 탄소 가격제 도입이 미비하고, 에너지비용이 높은 상황에서 정부 지원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 전임 정부의 '녹색산업 지원정책'을 사실상 철회하며 미국 내 녹색철강 투자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철광석 분야의 거물 포테스큐(Fortescue Ltd.)는 초기에 녹색수소 사업 확대로 시장을 놀라게 했지만, 최근에는 잇따라 손을 떼고 있다. 높은 에너지 비용을 이유로 올해 초 애리조나의 5억5000만달러(약 8000억원) 규모 수소 프로젝트와 호주의 1억5000만달러(약 2100억원) 규모 계획을 모두 포기했다.

 

프리미엄 35% 넘어도 “수요는 충분”

그럼에도 녹색철강에 대한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블룸버그NEF(BNEF)에 따르면 저탄소 강재 장기공급 계약은 거의 200건에 가까우며, 이는 불과 2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수다.

스테그라의 헨릭 헨릭손 CEO는 "현재 녹색철강 프리미엄은 약 35%이며, EU 무상배출권이 사라질 경우 프리미엄은 40~45%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산업이 '정상 가격'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임을 의미한다. 결국 정부의 탄소비용 정책이 이 격차를 줄여야만 시장이 확대된다.

BNEF는 정책 시그널이 명확해질수록, 녹색철강은 고급 시장에서 표준화된 제품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