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호주 꺾고 2026년 COP31 개최국 선정…이례적 '분할 주최' 합의

2025-11-20     송준호 editor

터키가 2022년부터 3년간 이어진 호주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2026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 개최국으로 최종 선정됐다.

블룸버그는 현지시각 20일 터키와 호주가 전날 밤 늦게 협상을 마무리하고 내년 11월 터키 안탈리아에서 COP31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호주, 협상 주도권 확보하며 '체면 살려'

이번 합의는 유엔 기후회의 역사상 보기 드문 '분할 주최' 방식으로 이뤄졌다. 터키가 회의장 제공과 정상회담 등 실질적 개최국 역할을 맡는 대신, 호주 크리스 보웬 기후변화에너지장관이 COP31 의장으로서 협상을 총괄한다. 보웬 장관은 공동진행자 임명과 초안 작성, 최종 결정문 발표 등 의장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특정 태평양 도서국에서는 사전 회의가 열려 기후변화 적응 기금 조성을 위한 공약을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요헨 플라스바르트 독일 기후담당 국무장관은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COP30 회의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나라가 하나의 그룹에 속해 합의에 도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고 전반적인 반대는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190여개 당사국의 공식 승인은 이번 주 안에 이뤄질 예정이다.

호주 정부는 이번 타협안을 통해 불명예스러운 낙선을 피했다. 유엔 규정상 서유럽 및 기타 국가 그룹(WEOG) 28개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한데, 터키나 호주 중 한 곳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개최지가 자동으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 소재지인 독일 본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보웬 장관은 12개월간 리더십 부재 상태로 COP 의장도 없고 계획도 없는 상황은 다자주의에 무책임한 처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석연료 비판 속 '가교 역할' 내세운 터키

터키의 승리는 일부 환경단체와 태평양 도서국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당초 호주가 주도하는 '섬나라 COP'는 화석연료 퇴출과 기후 취약국 지원 강화를 위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터키 개최로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아제르바이잔에 이어 중동 지역에서 COP가 계속 열리게 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도 우려 사항이다.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 인근에서 열리고 있는 올해 COP30이 환경·원주민 활동을 적극 수용한 것과 대조적으로, 터키에서는 이런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파푸아뉴기니 저스틴 차첸코 외무장관은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모두가 불만스럽고 실망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터키 정부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강조하며 개최국 자격을 내세웠다. 최근 기후 협상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 기후금융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간자적 입장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터키는 2053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국가 기후목표(NDC)를 준비 중이다.

 

3년 경쟁 끝 극적 타협…호주는 700만호주달러 투입

양국의 경쟁은 2022년 시작됐다. 호주는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 집권 후 기후 정책을 대폭 강화하며 남호주주 애들레이드를 개최지로 제안했다. 지난 9월에는 2035년까지 2005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 7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하며 '기후 후진국' 이미지 탈피에 나섰다. 호주는 COP31 유치 준비에 이미 700만호주달러(약 67억원)를 투입했으며, WEOG 28개국 중 23개국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터키는 2021년 영국 글래스고 개최를 위해 양보했던 전례를 들며 이번에는 자국 차례라고 맞섰다. 신흥경제국 입장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연대를 촉진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지역적 관점보다 글로벌 초점을 강조했다. 양국 정상은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서신을 교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브라질에서 열리고 있는 COP30에서 결정 시한이 이번 주 금요일로 임박하자 막판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BBC는 호주의 양보가 앨버니지 정부에 난처한 상황이지만, 합의 실패로 개최를 원치 않는 독일로 자동 이관돼 기후 외교 공백이 발생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