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보복에 車부품 공급망 흔들리자…네덜란드, 넥스페리아 통제 완화로 선회
네덜란드 정부가 중국과의 갈등 완화를 위해 자국 내 중국계 반도체 기업에 대한 개입 조치를 일시 중단했다.
BBC는 19일(현지시각) 네덜란드 경제부가 넥스페리아(Nexperia)에 대한 긴급 중재 조치를 유예했다고 보도했다.
빈센트 카레만스 네덜란드 경제장관은 성명에서 "중국 당국과의 건설적 대화에 따른 선의의 표시"라며 "중국이 유럽과 전 세계에 칩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취한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9월 30일 냉전시대 제정된 상품 가용성법을 발동해 넥스페리아를 사실상 장악하고 주요 의사결정에 정부 승인을 의무화한 바 있다.
中 보복에 글로벌 공급망 타격
네덜란드의 조치 발표 직후 중국 상무부는 10월 4일 넥스페리아 중국 법인과 하청업체가 생산한 특정 완제품 및 반조립 제품의 수출을 금지했다. 광둥성 둥관 공장은 연간 500억 개 이상 칩을 생산하는 회사의 핵심 거점으로, 글로벌 공급망 타격이 즉각 현실화됐다.
시장조사기관 테크인사이츠(TechInsights)에 따르면 넥스페리아는 자동차용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 시장에서 40%를 점유한다. 완성차 한 대당 수백 개가 들어가는 범용 부품이지만 대체가 쉽지 않은 제품군이다. 칩 공급이 끊기자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생산 차질을 피하지 못했다.
혼다는 10월 말 멕시코 셀라야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미국·캐나다 공장 생산량을 줄였다. 닛산과 폭스바겐도 일부 공장에서 생산을 축소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는 조립라인 가동 중단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고 경고했고, 미국 자동차산업협회(AAI)의 존 보젤라 회장은 "칩 선적이 빠르게 재개되지 않으면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혼다는 이번 칩 부족 사태가 북미 생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히며, 연간 판매량과 영업·순이익 전망을 모두 하향 조정했다.
트럼프-시 회담 이후 중국 수출 규제 완화
전환점은 10월 30일 한국 부산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회담 이후 중국은 민간용 수요를 중심으로 넥스페리아 칩 수출 예외 승인 절차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상무부는 "민간·민수용 수요에 대해 개별 면제 신청을 받겠다"고 밝혔으며,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위한 제한적 완화를 시사했다. 미국 측에서도 모회사 윙테크테크놀로지(Wingtech Technology)에 대한 제재 환경이 일부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냉전법까지 동원된 네덜란드-中 반도체 충돌
넥스페리아는 원래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에서 분사한 회사로, 2019년 중국 윙테크테크놀로지에 약 36억3000만달러(약 5조3600억원)에 인수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넥스페리아 경영진이 기술·자산의 중국 이전 위험을 충분히 관리하지 못했다고 보고 상품 가용성법을 발동했다. 이 법이 민간 반도체 기업에 적용된 것은 처음이다.
암스테르담 항소법원 산하 기업재판부는 10월 7일 당시 최고경영자 장쉐정을 직무 정지하고, 윙테크가 보유한 넥스페리아 지분의 의결권 대부분을 독립 관리인이 행사하도록 결정했다.
중국 정부는 네덜란드 조치를 "기업 내부 사안에 대한 부적절한 간섭"이라고 비판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개입 조치가 유예됐지만, 법원 결정으로 설정된 독립 관리 체제와 중국 측 요구가 어떻게 조정될지는 향후 핵심 변수로 남았다.
카레만스 장관은 이번 사태가 유럽 및 서방이 중국산 반도체와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각성의 계기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