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분 리스크에 예민해진 유럽…이탈리아 에너지망 ‘중국 변수’로 유럽 확장 좌초
유럽 주요국에서 중국 자본을 경계하는 흐름이 현실화되고 있다.
21일(현지시각) 로이터는 이탈리아 내부에서 중국계 간접 자본 때문에 자국 기업들의 유럽 확장 전략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지난 14일(현지시각) 독일 정부는 이탈리아 가스 운영사 스남(Snam)에 중국 국유기업의 간접 지분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안보 리스크로 판단, 스남의 오픈그리드유럽(OGE) 지분 인수 계획을 사실상 무산시킨 바 있다.
독일, 스남의 OGE 인수 철회 유도…“중국 국유기업 간접 지분이 안보 우려”
스남은 2024년 4월 아부다비 인피니티 인베스트먼츠로부터 OGE 지분 24.99%를 인수하기로 합의했지만, 독일 경제부의 반대로 11월 14일 거래를 공식 철회했다. 독일은 스남의 주요 주주 가운데 하나가 중국 국유 전력망 기업 국가전망공사(State Grid Corporation of China)라는 점을 문제 삼았으며, 외국인무역법에 따라 해당 간접 투자를 집중 심사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스남은 규제 승인 확보를 위해 다양한 구제책을 제시했으나 독일 정부가 이를 “불충분하다”고 판단하면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독일 정부는 안보 리스크를 이유로 스남이 독일 가스망 운영에 산업 파트너로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은 스남의 역할을 단순 재무 투자자로 한정하는 조건을 검토하며, 운영 단계에 스남이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입장을 보였다.
유럽의 디리스크 전략과 충돌…이탈리아는 “중국 지분이 걸림돌”
독일의 이 같은 결정은 EU가 최근 강화하고 있는 중국 디리스크(de-risking) 기조와 궤를 같이한다. 로이터는 독일이 EU 내에서 중국의 산업·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조치를 적극 지지해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희토류·전력망·가스망 등 전략 인프라 분야에서 중국 국유기업의 지배력을 제한하려는 방침이 유럽 전반에서 강화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는 구조적 딜레마를 마주하고 있다. 이탈리아 국책은행 CDP는 2014년 CDP 레티(CDP Reti) 지분 35%를 중국 국가전망공사에 매각했는데, CDP 레티는 스남 지분 31.35%, 전력망 운영사 테르나(Terna) 지분 29.85%, 이탈가스(Italgas) 지분 26%를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 측은 이탈리아의 핵심 에너지망 3곳에 모두 ‘간접 지분’을 갖게 됐다.
현재 중국 국가전망공사 대표는 스남·테르나·이탈가스·CDP 레티 모든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탈리아 에너지 정책 및 인프라 전략에 대한 높은 정보 접근권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 “전략적 투자…매각 계획 없다” 이탈리아는 사실상 대응 수단 없어
중국 국가전망공사는 이탈리아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있으며, 지분 매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이탈리아 정부에 전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장가 기준으로 중국이 간접 보유한 스남·테르나·이탈가스 지분 가치는 50억유로(약 8조52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이 지분을 인수할 국내 국영기업이 사실상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배구조 협약 역시 구조적 제약 요소다. CDP와 중국 국가전망공사가 체결한 CDP 레티의 지배구조 협약은 2026년 11월 만료되지만, 양측이 만료 6개월 전까지 해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 연장된다.
이번 독일의 OGE 인수 불허는 중국 국유기업의 간접 지분만으로도 유럽에서 전략 인프라 기업의 사업 확장이 제약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에너지 기업의 유럽 내 확장 전략에서 중국 지분이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유럽의 디리스크 흐름이 강화되는 가운데 이탈리아는 기존 지분 구조를 재편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중국과 유럽 간 긴장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