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상장 좌절된 세계 최대 라텍스장갑기업 '톱 글로브'... ESG 관리 필수인 시대가 왔다
ESG 기준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는 세계 1위 의료용 장갑 제조사 톱 글로브(Top Glove Corporation)의 홍콩 시장 상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ESG가 규제를 넘어 기업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다. 홍콩 시장 상장으로 약 10억 달러를 조달할 톱 글로브의 계획은 강제노동 이슈로 유보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톱 글로브는 최근 홍콩 시장에 상장을 결정했지만, 강제노동 이슈가 불거지며 결정을 유예한 상태다. 미국 세관당국(CBP)이 공장에서 강제노동 혐의를 지적하며 톱 글로브의 제품을 압수하라고 지시하면서 혐의가 불거지면서다.
CBP는 지난해 7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톱 글로브가 제품 생산 과정에서 가혹한 노동 및 주거 환경(Abusive working and living conditions), 과도한 야근(excessive overtime) 등 ILO의 강제노동 지표를 위반했다”며 미주리주 캔자스 항에서 약 69만달러(한화 7억7000만원) 상당의 라텍스 장갑 468만개를 압수했다. 미국 연방법령에 따르면 ‘제품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되지 않았음을 수입자가 입증하지 못할 경우 조사 결과에 따라 압류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된다.
의료용 장갑 생산회사인 톱 글로브는 최근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기업 중 하나다. 톱 글로브는 2020년도 회계연도 기준 4분기에 3630억 원의 순이익을 올리며 지난해 4분기보다 무려 18배의 순이익을 올렸다. 톱 글로브는 코로나 특수로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홍콩 시장 상장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말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불거진 강제노동 혐의는 톱 글로브에 치명타를 입혔다. 말레이시아의 공장에서 2500여 명이 코로나에 집단감염된 것이다. 비좁은 숙소와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41개 공장 중에 28개가 일시적으로 폐쇄됐다. 당시 공장 노동자의 80% 이상은 네팔 등의 이주민이었으며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주 6일을 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강제노동 혐의에 CBP의 직접적인 규제까지 받으면서, 홍콩증권거래소 IPO는 교착상태에 돌입하게 됐다. 상장을 앞둔 사전 브리핑에서 주관사인 씨티그룹과 UBS그룹은 “제재 조치를 받은 기업의 상장을 후원하는 것이 평판상 좋지 않다며 후원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대 주관사가 상장을 머뭇거리면서, 홍콩시장 상장으로 10억달러를 조달할 계획이 미뤄지게 된 것이다.
한편 CBP의 제재에 대해 톱 글로브는 “문제가 된 부분은 모두 해소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7월 CBP의 첫 제재가 이뤄지며 영국 윤리무역 컨설턴트 임팩트 리미티드(Impactt limited)에 조사를 의뢰해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알렸다. 임팩트 리미티드는 작년 10월 생산 공장 조사를 진행해 강제노동지표 위반 사항을 확인한 후 올해 1월, 4월에 개선 사항 추적결과를 발표했다.
임팩트 리미티드는 올 4월 검증보고서를 통해 “11개의 ILO 강제노동지표가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ILO의 강제노동 혐의에 해당하는 사건은 ▲일부 채용 대행 기관이 9명의 근로자 신분 증명 서류를 압수한 사건 ▲열악한 숙소와 근무 환경 ▲산업재해에 따른 적절한 보상 미실행 ▲허위 광고로 근로자가 채용 대행사에 고용 비용 지불 ▲16건의 성희롱 ▲근무 중 고성과 협박을 동반한 언어폭력 ▲임금 체불 등이다. 이에 톱 글로브는 체불 금액 한화 약 400억원을 노동자에게 지급하고, 채용 대행사 재선정 등으로 이를 개선했다.
임팩트 리미티드는 "근로자를 간접 고용하는 채용사 공급망에 대한 관리가 가장 큰 문제였으며 진행 중인 조치를 고려할 때 더는 강제 노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전화상담 서비스를 통해 근로자로부터 해당 문제의 개선 상황을 지속해서 확인하고 있으며, 현재 991건의 상담 전화를 받았고 7월에 실행할 추가 조사에 이를 반영할 계획이다. 양질의 일자리 제공을 위해 여러 가지 추가 권고안을 내놓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CBP는 “강제 노동 지수가 완전히 수정되고 압수된 품목에 강제 노동이 연관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해당 조치를 수정하거나 취소하지 않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톱 글로브는 “7월 중 임팩트 리미티드의 추가 조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올해 2분기 말까지 상장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독립 이주노동자 권리 전문가 앤디 홀(Andy Hall)은 로이터 인터뷰를 통해 ESG와 책임 투자를 강조했다. 앤디 홀은 “이번 강제노동 이슈와 관련해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회사 소유주와 투자자”라며 “앞으로 톱 글로브의 투자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책임을 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