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원 ESG 모범규준 공청회... 시의적절 VS 급진적

2021-06-10     박지영 editor

“ESG 경영을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취지에 적극 공감하지만 ESG 기준을 급격하게 강화하는 것은 기업들에 부담이 된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내부탄소가격, 좌초자산 등도 도입하긴 시기상조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모범규준을 두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밝힌 의견이다. 이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8일 각계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정책 담당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모범규준은 이번달 말 발표될 예정이다.

신진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은 "이번 개정에는 최신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대폭 반영하고 참고자료를 수록하는 등 실효성과 활용성을 높인 ESG모범규준 개정안을 마련했다"며 "기업이 건전한 ESG 경영을 도입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도록 유도하는 일에 필요한 마중물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모범규준 개정안에 따르면 환경 모범규준이 가장 크게 변경됐고 재무적 관점에서 표준 제시가 중요해졌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위험을 자산 평가와 자금 조달, 회계 등 재무 영역에까지 반영토록 하면서다. 전 세계적인 환경 정보공개 요구 급증에 따라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 TCFD(기후관련재무정보공개협의체) 등 글로벌 프레임워크도 대폭 반영했다. 금융사들에게는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기업이나 석탄발전처럼 탄소 다배출 사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낮추도록 한다.

재무와 ESG를 연결짓는 흐름이 커지면서 SASB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기업지배구조원 김진성 팀장은 “투자자들이 의결권행사 뿐 아니라 정보 보고차원에서도 SASB를 강조하고 있다”며 “ ESG 지속가능성 회계, 측정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의적절하고 개선된 지표 vs 현실에 비해 급진적

이어서 진행된 패널토론에서는 10년 전에 비해 개선된 지표라는 긍정적 평가와 현실적 수준에 맞지 않는 급진적 지표를 도입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다양하게 나왔다.

먼저 환경 부분 전문가로 참석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평가내용이 체계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환경 책임과 관련해 산업별 평가지표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제조업의 경우 온실가스의 직간접 배출, 금융은 투자 기업의 탄소배출량이 중요하다”며 산업 특성을 반영한 평가지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대기업에 비해 ESG 인식이 낮다고 평가받는 중소기업에 차이를 둬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탄소 배출 규제는 자발적이든 타의적이든 고려해야만 하는 문제”라며 “개발도상국이다, 중소기업이다라는 지위로 유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RE100 같은 간접 규제가 대기업을 넘어 대기업의 협력사인 중소기업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예를 들면서 중소기업에 기후위기 대응 시작을 유예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회부문 전문가로 참석한 숙명여자대학교 권순원 교수는 “기업이 만들어내는 사회성과 공개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노동의 경우 정규직 비정규직 등 노동형태 보고나 산재율, 직업병발생률 등 재해 상황 정보공개, 집단적 노동분쟁, 소비자 분쟁 등도 확산되고, 프랑스는 사회성과에 대한 공시의무를 법으로 강제한 경우도 있다"며 현실을 짚었다. 기업의 사회성과 관리가 점점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지배구조부문 전문가로 참석해 ”이사회 책임에서 기업집단의 이사 책임을 별도로 강조한 부분은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주주 자본주의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한국이 지배구조는 건너뛰고 환경과 사회만 실천하려는 움직임은 걱정스럽다“며 균형 잡힌 시각으로 ESG를 바라보자고 조언했다.

ESG 모범규준을 현장에 적용하는 것과 관련해 기업의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영훈 한국거래소 유가시장본부 본부장보는 모범규준의 단계적 시행을 제안했다. ”지배구조에서 CEO 승계정책의 경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현재 공시 중 가장 준수율이 낮은 상황“이라며 ”작년 기준 14%만 준수했는데, 이런 부분에서 현실적으로 기업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이사회 결의를 모든 심의 사안에 대해 정관에 명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정관 변경이 쉽지 않다”며 “중요 사안은 정관에 넣고 기타 필요한 사안은 이사회 규정으로 위임하는 것이 현실 부합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영국에선 ESG 공시 의무를 주요 상장사부터 시작한만큼, 상장사의 규모를 나눠서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모범규준에선 '주총 통지 28일 전 권고' 등 규정중심의 기준을 내놨는데, 일본처럼 '조기에 발송'과 같은 원칙 중심의 기준을 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 대표로 나온 금융투자협회 김진억 전략기획본부장은 좌초자산 등 환경회계를 금융기관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모범규준과 법령의 차이가 발생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임 항목 같은 경우 상위법과 다르지 않게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