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읽기】기준금리 인상 검토하는 한은, 고탄소 업종 자금줄 막히나
한국은행이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하며 금융취약성지수(FVI)를 처음 산정해 발표하자, 금융권에서는 이를 기준금리 인상 신호로 받아들였다.
대출 증감률, 자산 가격 상승률, 금융 회사의 건전성 3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산출된 올해 1분기 금융취약성지수는 58.9. 외환 위기 당시인 1997년 11월을 100으로 놓고 산출한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4분기 41.9에서 올해 1분기 58.9까지 높아졌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73.6)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며, 민간부채 증가세 및 금융기관의 자선건전성 관리가 필요하다"고 평했다.
기업부채도 늘었다. 1분기 말 기준 1402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1%p 증가했다.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하는 기업 비중도 12.4%에서 15.3%로 상승했다.
금융권은 이번 발표를 금리인상 신호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요즘 한은 관계자들이 금융 불균형 문제를 자주 언급해왔으며, 새 지표 FVI가 담긴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신호로 볼 수 있다”며 “올해 안에 기준금리 높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김지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물가 안정보다 금융 안정을 우선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켜지는 인플레이션 경고등에
고탄소 업종 자금줄 막히나...
해외선 ESG 안하는 기업 자금 조달 비용 높아
한은의 금리 인상 예고는 고탄소 업종의 자금줄을 죌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 발표 전, 지난 3월 은행들에 ‘고탄소업종 익스포저를 줄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3월 금융안정회의 보고자료에 한은은 “국내의 경우 탄소 배출량이 많고 제조업, 특히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업종의 비중이 높아 이행리스크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탄소업종 등 기후변화 이행리스크에 노출된 자산에 대한 위험관리를 강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직간접 탄소배출량 지표(TVF)를 활용해 분류한 고탄소 업종 9개는 다음과 같다. ▲1차 금속 제조업 ▲석탄발전 ▲비금속광물제품 ▲화학물질·화학제품 ▲운송장비 제조업 ▲코크스·연탄·석유정제품제조업 ▲금속광업 ▲섬유제품 제조업 ▲금속가공제품 제조업이다. 1차금속 제조업이 TVF 6.6, 석탄발전이 5.8, 비금속광물제품 2.9로 가장 높았다.
국내 금융회사(은행·보험사·증권사·운용사·연기금 등)의 9개 고탄소업종 익스포저는 지난해 말 411조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액과 채권·주식 투자액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지난해 말 금융회사 전체 익스포저(2358조원)의 17.4%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석탄발전 익스포저는 2015년 파리협정 체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2015년 이후 대출액과 채권 등 33조원이 증가한 것이다. 9개 고탄소 업종 중 화학제품 제조업 다음으로 가장 많은 돈(91조원)이 투자됐다.
한은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지난주 신용평가사들의 정기평가에서 민간 석탄발전사들의 신용등급은 줄줄이 하락했다. 고성그린파워, 강릉에코파워, 삼척블루파워의 등급 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줄하향된 것이다. 장기신용등급은 AA-지만, 전망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1년 뒤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관투자가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했다. 삼척블루파워는 지난 17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했지만, 매수 주문은 없었다. 신용등급이 네 번째로 높은 AA-등급의 회사채가 전량 매각되지 않은 것은 올해 들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탈석탄 다음이다. 지금은 좌초자산인 석탄 엑소더스가 먼저 시작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시작된다면 나머지 8개 고탄소업종의 자금조달에도 빨간 불이 켜질 수 있다.
이미 글로벌에서는 탄소 배출량에 따라 정유사의 자금조달 비용에 차이가 발생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하고, 적극적으로 탄소 감축에 나서는 유럽 정유사의 경우 북미 정유사보다 채권 만기가 길어지고, 낮은 발행 금리와 함께 수요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S&P글로벌은 “최근 북미의 석유와 가스 업종의 회사채가 유럽 동종 업계의 회사채보다 스프레드(안전자산인 국고채 대비 위험자산인 회사채 수익률의 차이로, 회사채의 프리미엄이 얼마인지 나타냄) 상승 폭이 확대되고 신규 발행 채권의 만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며 “오염 물질 배출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배출량이 적은 기업에 비해 자금 조달비용이 비싸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되는데다 인플레이션까지 닥친다면, 타 업종에 비해 ‘탄소 다배출’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는 고탄소 업종들의 자금줄이 가장 먼저 막힐 수도 있어 보인다. 다만, 탄소 감축 정책과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등 약점을 상쇄할 수 있는 전략을 펼칠 경우 이 같은 위험을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