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읽기】 도시바, 이사회 의장은 왜 쫓겨났나…일본 기업문화와 ESG 기관투자

2021-06-30     박란희 chief editor
도시바 이사회 의장 퇴출을 보도하는 블룸버그/ 블룸버그 보도 캡처

 

국내 언론에선 많이 보도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꽤 크게 다뤄진 뉴스가 있다.

지난 2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일본 도시바의 ‘나가야마 오사무(永山治) 이사회 의장과 고바야시 노부유키(小林伸行) 감사위원 재임안이 부결된 것이다. 일본 경영계에선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의장이 쫓겨나는 사건이 거의 없다. 특이한 이번 사건 뒤에는 복잡한 일본의 기업 지배구조 문화와 도시바의 경영 환경이 있다.

 

도시바 주총 사건의 전모

나가야마 의장은 일본 최대 제약회사 중 하나인 쥬가이(중외)제약의 명예회장이며, 소니의 대표이사로도 재직하며 소니 재건을 뒷받침한 거물 경영인이다. 지난해 7월, 그가 도시바에 이사회 의장으로 영입됐다. 경영 어려움을 빠진 도시바의 혼란을 책임질 수장의 위치였다.

그가 1년만에 이사회 의장에서 쫓겨난 데에는 최근 드러난 147페이지 분량의 ‘독립보고서’가 그 배경에 있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구루마타니 노바아키 CEO를 연임시키고,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의 이사진 선임 제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일본 경제산업성과 도시바가 함께 공모했다는 것이다. 도시바의 외국계 지분율은 60% 가량이다. ‘불만을 제기하는 주주’ 제안을 방해하기 위해 도시바와 경제산업성은 긴밀히 협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7월에 열릴 주주총회를 앞두고 도시바 경영진은 경제산업성에 지원을 요청한다. 경제산업성은 개정 외환 및 무역법(이하 외환법)의 규제를 잣대로, 싱가포르 투자펀드 ‘에피시모 캐피털 매니지먼트’ 등의 이사진 선임안을 철회시키려고 했다. 경제산업성은 원자력 사업을 하는 도시바와 같이 국가 안보에 중요한 일본 기업의 이사회 이사진을 선출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투표 전에 공식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의 규제를 적용시켰다.

토요하라 마사야스 이사는 작년 5월 이메일에서 “도시바와 정부가 해외 주주들을 막기 위해 ‘굿캅-배드캅 전략’을 사용한다”고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스가 장관 또한 지난해 도시바 간부와의 조찬 간담회에서 “우리가 공격적이면, 외환법 적용으로 그들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루마티니 당시 CEO 또한 도시바의 경영진들에게 “이번에는 경제산업성이 주역을 맡을 것”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아사히 신문은 “ESG 투자로 유명한 미국 기관투자자 캘버트,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공적연금 운용기관 BCI 등이 나가야마 이사회 의장 등 여러 후보의 선임에 반대하는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보도했다. 

 

외국인 기관투자자 vs. 일본 기업간 갈등

이번 사건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토종기업을 지키려는 일본 정부 및 대기업’ 측과 ‘일본기업 지배구조를 영미 선진국 형태로 바꿔 회사 가치를 높이고 장단기 수익을 창출하려는 기관투자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지배구조(Governance) 전쟁’이 숨어있다. FT를 비롯한 외신에서는 “이번 보고서를 기점으로, 지난 5년 넘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ESG투자 확대 등을 알리며 지배구조를 개선해왔다고 홍보해온 일본의 기업문화를 의심하는 외국 기관투자자들이 늘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도시바의 비극이 시작된 건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니시다 아쓰토시 당시 도시바 대표이사는 2006년 미국 원자력 발전회사 웨스팅하우스를 6600억엔에 인수했다. 두산중공업도 입찰에 뛰어들었으나 고배를 마셨던 인수전이었다. 당시 일본 경제산업성은 ‘원자력 르네상스’를 기치로 원전 수출을 육성했으며, 니시다 사장은 이에 발맞춰 “2015년까지 원전 매출을 최대 3.5배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GE, 지멘스 등 당시의 세계적인 원전 기업들은 원전 사업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보고, 사업 전환에 나서고 있었다. 도시바는 거꾸로 간 것이다.

운도 나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일본은 가동중인 50개 원자로를 폐쇄했고 다른 국가들도 원전계획을 재검토하면서 웨스팅하우스의 실적은 급격히 나빠졌다. 도시바는 단기 실적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2015년 회계 부정 스캔들이 터진 이유다. 당시 도시바는 7년 동안 2248억엔(2조4000억원)의 회계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발각됐다. 

결국 웨스팅하우스라는 원전사업에서만 7000억엔(약 7조원대)의 손실을 떠안게 된 도시바는 각 사업부문을 매각하며 도쿄증권거래서 1부에서 2부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도시바는 상장 폐지를 막기 위해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번 사태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어나는 가운데, 와세다대 비즈니스 스쿨 이레야마 교수는 도쿄TV에서 “2017년 도시바가 경영난에 빠졌을 때, 주식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6000억엔(약 6조1000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할 말 하는 주주’로 불리는 외국계 펀드로부터 받아버렸다는 점이 치명적인 원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 개발을 해온 도시바와 달리,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경우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불균형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레야마 교수는 또 "두 번째 치명적인 문제는 일본의 안이한 경제 안전보장제도"라며 "도시바는 원자력 발전 및 방위 관련 등 일본의 안전 보장에 중요한 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같은 기술력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련 규제가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허술하다고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게 그는 “미국이었다면 정부가 개입해 외국계 펀드의 개입을 막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기업문화는 ‘여전’

하지만 선진국 기관투자자들의 입장은 좀 다르다. 일본 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2015년 회계부정 당시와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보고 있다. 이번 보고서 발간을 주도한 건 지난해 주주총회 결과를 마뜩 찮게 생각한 싱가포르 에피시모 캐피털 매니지먼트, 3D인베스트먼트 등을 포함한 해외 기관투자자들이다. 이번 보고서는 특히 “회사 내부에서 어떠한 개입도 없었다”고 발표한 자체 감사보고서 내용과도 완전히 배치된다.

보고서가 나오기 몇 달 전, CEO였던 구루마타니 대표가 추진한 매각방안 또한 논란이 됐다. 영국계 투자펀드인 ‘CVC 캐피털파트너스’가 도시바의 지분 100%를 인수하는 매각방안이 알려진 것이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들의 간섭이 심해지자 CVC캐피탈을 끌어들이려 했다고 알려지면서, 투자자들과 도시바 내부에서는 “구루마타니 대표가 CVC를 통해 장기 집권을 하려 한다”며 불만이 제기됐다. 매각이 불발되면서, 안팎에서 사임 압박에 노출된 구루마타니 노바아키 CEO는 결국 물러났다. 

이런 과정을 수수방관한 이사회 의장과 감사에 대한 불만도 주주들 사이에서 높아지면서, 결국 주주총회는 이사장 사임이라는 ‘폭탄 결정’을 내렸다. 다음 임시주주총회에서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새롭게 이사진 선임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결국 도시바측과 해외 주주들의 전쟁에서 해외 주주들이 이긴 셈이다. 

도시바는 성명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개선, 자본 관리 강조, 주주 수익 증대, 주주들의 신뢰회복과 지지에 주력하고 있다”며 “이사회의 모든 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일본 기업지배구조 스튜어드십 코드를 설계했던 인물 중 한명인 니콜라스 베네스튼 FT에 “도시바 위기의 교훈은 모든 일본 기업에게 중요한 교훈을 드러낸다”며 “무엇이 올바른 방법인지에 대해 주주들과 정부, 대중들의 기대를 크게 높였다”고 말했다.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에 관한 한, 일본 기업과 상황이 비슷한 국내 기업에도 적용해볼 지점이 많은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