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 ESG 위원회, 뭘 해야 하나

2021-07-05     박란희 chief editor

우려하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ESG위원회 이야기다. 2021년 상반기 기업에서 쏟아진 보도자료 중 하루에 한번꼴로 빠지지 않던 것은 ‘ESG 위원회 설치’였다. ‘이렇게 갑자기 ESG 위원회를 만들면, 준비가 부실할 텐데’ 하는 걱정 그대로였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에서 지난주에 발표한 보고서-10대 그룹, 이사회 내 위원회의 형식적 설치 및 제언-에는 ESG위원회와 내부거래위원회의 운영 현황에 대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0대 그룹 상장기업 106개사의 위원회 설치 수는 355개로, 평균 3.3개의 위원회가 존재한다. 106개사 중 ESG위원회를 설치한 곳은 50곳으로, 절반 정도가 위원회를 설치했는데 이중 23곳은 2021년에 만들어졌다. 아마 지난해 설치된 곳을 집계해보면 50곳 대부분은 작년과 올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내부거래위원회는 62곳이었다.

보고서에서 짚은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ESG 위원회가 의사결정기구(의결안건 5건)라기보다 대부분 IR활동에 국한되어 실적 및 계획을 보고(보고안건 42건)하는 기구로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 내부거래위원회 62개 중 29개(46.8%)가 의결한 안건을 같은 날 이사회에서 똑같이 재의결하는 등 형식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ESG위원회는 2020년 보고 목적의 안건(IR동향 보고 4건, IR-Sustainability 로드쇼 투자자미팅 결과보고 1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계획보고 1건 등)이었다. 다만, 이사회 의장 선임에 앞서 이사의 의결 전 거버넌스 위원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지는 점은 보고서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내부거래위원회에서 의결한 안건을 이사회에서 재의결하지 않고 위원회가 최종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기업은 신세계, 이마트, 신세계건설 등이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한 마디로 형식만 갖췄을 뿐, 실효성 있는 위원회로서의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4가지의 제언을 한다. 첫째, ESG위원회의 구성현황, 안건 상정범위, 안건 내용, 승인 권한 등 ‘기능’에 더 집중하라. 둘째, 내부거래위원회 안건 상정 범위를 ‘상법’까지 심의·의결하라(이렇게 되면, 특수관계인만이 아니라, 이사 또는 주요 주주, 이들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이들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이들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 100분의 50 이상을 가진 회사와 자회사 등으로 안건이 크게 확대된다). 셋째, 기업공시 서식 작성기준을 개정해 이사회 및 위원회 안건 내용을 기재하고, 내부거래위원회의 경우 거래상대방, 거래금액, 거래기간을 안건목록과 함께 공시하도록 한다. 넷째, 위원회의 결정을 이사회에서 재의결할 수 없도록 법령으로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상법’을 개정하라.

보고서의 ‘제언’ 부분을 읽으면서,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SG위원회의 첫 단추를 잘못 꿰매서, 규제만 하나 더 만들어내는 건 우리 기업과 사회 전체를 위해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정부 등의 각종 위원회 역할을 해본 이들이라면 모두 암묵적으로 알다시피, ‘형식을 위해 존재하는 거수기’ 그 이상을 넘어서는 위원회는 거의 없다. ESG위원회의 기능을 ‘보고’에서 ‘의결’로 바꾸라고 상법을 강화한들, 이사회 멤버나 ESG위원회 멤버나 모두 같은 ‘중복, 겹치기 출연’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그런 규제는 별 의미가 없다.

CDC에서 정리한 ‘ESG 이사회를 위한 툴킷’에서도 “이사회가 더 나은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위원회는 조언하고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은 이사회에 남아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사회에서 의결하든, ESG위원회에서 의결하든 무엇이 나은 방법인지에 대한 정답은 아직 없다. 다만, CDC에서는 ▲전담 위원회가 환경(E)과 사회(S), 사업 리스크의 거버넌스를 강화하는지(거버넌스 복잡성만 증가하는 건 아닌지) ▲제품이나 서비스의 라이프사이클에서 적절한 의사결정 단계에서 위원회에 정보가 제공되는지 ▲정보 보고의 수준은 위원회와 이사회를 어떻게 달리하는지 ▲위원회 구성원의 정기교육을 하는지 등을 고려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또 ESG위원회를 거쳐 이사회에 제출된 정보에는 ▲ESG 지표 중 어떤 지표가 앞서고 어떤 지표가 뒤쳐지는지 ▲사망사고, 환경오염 등 심각한 사건 ▲컴플라이언스 위반 ▲새롭게 떠오르는 ESG동향 정보 ▲벤치마크(목표) 대비 성과 ▲예산 목표 ▲기업 및 산업표준 ▲NGO, 미디어, 소셜미디어 등 중대비판을 포함한 평판 리스크 등을 포함시키라고 권유한다.

글로벌 기업의 거버넌스 모범사례에서도 배울 점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위원회 헌장(Code of Conduct 혹은 Commitment)’이 있다는 것이다. 위원회가 전문성을 지닌 의결기능을 할지,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돕는 지원역할을 할지 결정하고 이를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세계 최대 재생가능 바이오디젤 기업이자 지속가능기업 톱 순위권에 드는 핀란드의 네스테(Neste)는 홈페이지에 Conference Call 스크립트까지 공개해 놓고 있다. 투명한 공개를 통한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사회나 위원회의 독립성을 위해 사내이사 포함 여부를 중시하기도 하는데, 사내이사가 포함 여부와 상관없이 어차피 기업 내부에서 모든 안건을 준비해서 위원회로 올리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기업의 의사’가 반영된다. 형식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결국 어떻게 하면 이사회든 위원회든 ‘열린 결론’과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를 적절히 만들고, 이를 제대로 실행하는 Case를 배출하는 것이다.

지금쯤 평가기관들이라면 ESG 평가항목을 업그레이드하려고 준비할 지도 모르겠다. 이전에는 ‘ESG위원회를 설치했는가’를 배점 기준으로 삼았다면, 앞으로는 ‘ESG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는가’를 배점 기준으로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

ESG란 결국 '사회라는 컨텍스트(Context)' 속에서 기업을 재정의하는 또다른 이름이다. 이사회나 위원회에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를 하나씩 여는 연습을 해보면, 서서히 협력업체와 소비자 등 더 폭넓은 이해 관계자들에게 그 문을 서서히 열게 될 지 모른다. 진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아마 이 때나 가능할 것이다.


                             박란희 대표 &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