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읽기】 G20, 사상 최초로 탄소 가격 지지한 배경
지난 주 열린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공동성명을 통해 탄소가격 책정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FT, 로이터 등 현지언론이 보도했다.
탄소가격(carbon pricing)은 탄소 배출 가격을 매겨, 배출 기업에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탄소 가격은 탄소국경세나 탄소세, 탄소배출권 거래제 등 다양한 형태로 각 나라마다 시행되고 있다.
관건은 이번에 G20 재무장관들이 합의했던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15% 합의’와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을 지다. 탄소 가격은 각 나라마다 기업 경쟁력을 둘러싼 핵심 현안이라, ‘가장 합의가 늦어질 분야’로 여겨진다. 과연, 글로벌 탄소 가격은 책정될 수 있을지 이번 회담에서 몇 가지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기조연설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 "높은 탄소가격이 핵심"
이번 회담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인물은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aus)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다. 그는 2018년 기후변화의 장기적 모델과 거시경제 분석을 통합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는 최근 저서 ‘녹색의 정신: 혼잡한 세상에서 충돌과 전염의 경제학(The Spirit of Green: The Economics of Collisions and Contagions in a Crowded World’을 펴냈다. 그는 이번 기조연설에서 “탄소 가격에 헌신할 뜻이 있는 국가들이 ‘기후 클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배출량을 줄이는 핵심요소는 높은 탄소 가격”이라며 “‘기후 클럽’은 탄소 가격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은 국가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야 기존의 전 지구적 기후협정을 무력화시켰던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COP26을 언급하면서 “우리의 국제 기후정책, 우리가 취하는 접근방식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와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를 보면, 그의 주장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책임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는 “지난 200여년 동안 성공적으로 작동해온 민간부문의 방식이 공공재에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으며, 공공재를 다루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며 “큰 정부가 아니라 집단행동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구의 4분의 1을 죽였던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 문제를 민간이 해결할 수 없듯이, 기후변화나 탄소 이슈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가격 정책과 저탄소 기술에 대한 강력한 정부 지원 두 가지를 주장한다. 그는 “탄소 배출에 대한 가격을 톤당 100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라며 “캐나다처럼 탄소세를 하든, 유럽처럼 자본과 무역을 사용하든, 세금이든 상하한제든 상관없다”고 밝혔다.
그는 탄소포집기술에 대해 톤당 50달러의 세금공제를 해주는 것에 대해, “우선순위 목록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으며,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가장 값비싼 방법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엑손 모빌을 비롯한 정유회사들에게 주주 반란을 통한 압박을 가하는 최근의 흐름과 관련, “매우 비용이 많이 들고 극히 분열적인 또 하나의 사례이며,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해 공개하도록 하는 움직임은 엄청난 시간 낭비일 뿐”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탄소에 대해 적절한 가격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회사들의 밀이나 실리콘 사용에 대한 재고 조사를 할 필요도 없다”고 덧붙였다.
탄소 가격을 전 세계가 합의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노드하우스 교수는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탄소 가격을 갖고 있다”며 “외부 환경이 변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현재의 자발적인 파리기후협정 방식이 아니라, 좀더 이빨이 있는 (규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며 “기후클럽과 같은 국제기후기관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높은 탄소가격에 대한 글로벌 수준에서의 합의를 이끌어낼 국제 기후클럽의 결성, 탄소 가격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과징금(벌금) 같은 징벌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노르다우스 교수 주장의 핵심이다.
라가르드 ECB 총재, "탄소의 진정한 원가 반영해야"
탄소가격 논의에 불을 당긴 것은 EU에서 도입을 준비중인 ‘탄소국경조정 메커니즘(CBAM)’이다. 탄소가격이 없는 국가들로부터 수입되는 수입품에 대한 관세 역할을 할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탄소 가격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때문에 유럽은 탄소 가격제 도입에 적극적이다. 이번 회담에서 대표적으로 탄소 가격제 지지 목소리를 낸 인물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다. 그녀는 G20 회담 다음날인 베니스 국제기후회의에서 “탄소의 진정한 원가를 반영한 유효 탄소가격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너무 낮기 때문에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의 경우 ‘국제 최저 탄소세율’ 도입을 주장했다. 국제사회가 일괄적으로 탄소 가격을 매기는 제도를 당장 도입하기에는 현실적인 반발이 크기 때문에 일단 최저세율부터 도입하자는 것이다.
재닛 옐런, 블랙록 래리핑크 "세계은행, 지속가능투자 나서라"
하지만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대한 중국, 인도, 러시아, 한국을 포함한 국가들이 반발하듯, 개발도상국들에 탄소 가격을 강제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때문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세계은행을 포함한 다자간 개발은행들(MDBs)이 민간 부문의 기후 친화적 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다자간 개발은행의 수장들을 소집해 가능한 한 빨리 이들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할 계획도 밝혔다. 미국은 현재 세계은행(Worldbank)와 다수의 미국내 개발은행의 대주주이며, 아시아개발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의 최대 주주다.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세계은행과 IMF 등 금융기관의 전면적인 개편’을 요구했다. 핑크 회장은 “80여년 전에 만들어진 구시대적인 시스템을 운영하는 이들의 모델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지속가능한 투자에 더 많은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구축된 금융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화석연료 투자를 기반으로 한 국제개발 프로젝트를 기후금융과 저탄소 프로젝트 등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 G20 지속가능금융 워킹그룹(SFWG)은 지속가능금융을 위한 G20 로드맵을 준비중이며, 오는 10월 회의를 통해 기후와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G20의 향후 방향을 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