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ESG를 보는 눈】 IBK기업은행 유인식 ESG경영팀장 “중소・중견기업 ESG? 선택과 집중 필요해”
2004년 유엔의 ‘Who Cares Wins’ 보고서에 ESG 투자라는 용어를 공식 사용한 지 17년이 지난 지금, ESG는 국제기구, 금융, 기업, 정부의 입에 오르내리는 뜨거운 화두로 급부상했다. 가장 큰 변화를 느끼는 이들은 오랜 기간 환경과 기후변화 영역의 전문가들이다.
IBK기업은행 전략기획부 유인식 ESG경영팀장도 그 중 하나다. 유 팀장은 기후공학 박사로 명실상부한 기후변화와 환경 전문가다. 그는 2008년까지 한국환경공단에 재직한 후 2009년 IBK기업은행에서 녹색성장지원단과 기업고객그룹 컨설팅센터, 투자금융그룹 본부기업금융센터를 거쳤다.
유 팀장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국제협상 정부대표단, UNFCCC CDM DOE(청정개발체제 운영기구) 심사원, 환경부와 산업부 등 정부의 녹색금융 실무작업반, 국제표준 관련한 다양한 민간위원을 맡으면서 정부와 국제기구의 정책과 표준에 대한 전문성을 갖췄다.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의 ESG 담당자로서 유인식 팀장은 ESG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Q) ESG는 2005년에 나온 개념인데, 왜 지금 주목받는다고 생각하나? ESG가 화두가 된 시점과 계기를 무엇으로 보는가?
2017년 G20 정상회담을 ESG가 부상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본다. 2017년 G20회담에 TCFD(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가 기후변화 정보 공개 방법에 대한 권고안이 담긴 최종보고서를 전달했다. G20에서 참여국은 TCFD의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투자 결정 시 재무정보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G20 전에도 금융권에서 재무정보로 예측한 수익률과 부실률이 실제 수치와 다른 점을 보고 ‘비재무요소 혹은 기후와 환경, 인권이 영향을 끼친다’는 논의는 있었다. 하지만TCFD의 가이드라인이 나오기 전에는 이런 주장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G20 이후에 이제는 BIS(국제결제은행)와 전 세계 금융 당국이 모여 TCFD 가이드라인에 따라 금융기관들을 관리하고 규제하자는 논의까지 진전됐다.
일각에서는 2019년을 트리거로 보기도 한다. 2019년 BRT(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서 미국 대기업 181개가 모여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BRT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논의도 G20 논의의 연장선으로 보는 게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트리거(trigger)는 17년 G20이고, BRT·코로나19·바이든 대통령 당선·2019년의 블랙록 연례서한은 이를 확산시키는 일종의 기름 역할을 했다고 판단된다. 우리나라는 이런 흐름에서 1,2년 정도 기간을 두고 도입됐다고 본다.
Q) ESG가 갑자기 뜨면서 금방 꺼질 거품이라는 주장도 들린다.
‘10년 전 ‘저탄소 녹색성장’ 움직임이 큰 소득 없이 사라졌던 것처럼 정부가 바뀌면 정책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읽힌다. ESG는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모여서 합의한 어젠다이다. 한국에도 ESG가 국제 흐름 속에서 도입된 것이지, 우리 정책으로 인해 ESG가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금방 꺼질 거품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만, ESG가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개념으로 쓰이는지 국내 이해관계자가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을 이끄는 CEO, 이사회, 주주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안에서 수익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도 ESG는 금융이 중심이 돼서 작동한다. 기업들은 금융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공시 의무를 다하게 된다. ESG 중심에는 투자의 관점이 들어 있다.
한국에서는 ESG가 금융이 아니라 기업 중심으로 운영되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ESG 경영의 증거로 캠페인을 부각하기도 한다. 이는 ESG에 대한 오해로 ESG, CSR, PR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ESG는 ‘사회공헌활동’이 아니라 ‘돈’이다. ESG는 사회공헌부서 같은 특정 부서만의 이슈가 아니다. ESG 역시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지만 주주 수익 역시 더 신경 써야 한다. ESG 경영에는 친환경 캠페인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캠페인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ESG를 PR 수단으로 받아들일 경우에 환경, 인권, 지배구조의 이슈 중 선점하지 못하는 이슈는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각 기업이 한 분야를 선도적으로 잘한다는 이미지를 위해 이슈 경쟁을 하면 ESG 본질과는 멀어지게 된다.
ESG 초기 단계에서 누군가는 ESG가 무엇인지 기업에 설명하고 이해를 돕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는 정부, 시민사회 단체, 금융 등 다양한 섹터의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협력해야 한다. ESG논의가 활발해지면 유럽처럼 한국 기업도 자연스럽게 ESG 경영을 내재화할 수 있다. 한국은 ESG 초기 단계로 이런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하나의 유행처럼 지나갈 수도 있다는 우려는 있다.
Q) 실제 기업들이 ESG의 필요성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 것 같은가?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혹은 상장사와 비상장사로 나눠서 봐야한다. 상장사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같은 평가기관의 평가를 받고, DJSI나 MSCI와 같은 ESG지수에 편입된다. 공표된 평가 결과를 금융이나 투자자가 투자의사 결정에 반영하는 게 앞서 말했던 ESG다. 상장사는 자연스럽게 ESG가 CEO의 아젠다가 된다. 상장사의 ESG 체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50%를 ESG에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만 봐도 상장사는 ESG에 관심을 크게 둘 요건이 많다.
평가사의 평가를 받지 않는 기업인 비상장사인 대부분의 중소・중견기업은 체감도가 낮다. 대기업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큰 흐름이 있다는 것은 느끼지만, 우리 기업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투자에 연결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문제는 이들이 대기업 협력사로서 ESG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은 협력사인 국내 대기업에 ESG 실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ESG 실적 범위가 해당 대기업뿐만 아니라 공급망 안에 있는 협력사 ESG 실적을 포함한다. 국내 대기업은 1, 2, 3차 벤더에 ESG 실적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언론에서 보도되는 대기업이 협력사를 위한 ESG 경영 평가 방법론을 만든다는 내용이 이런 맥락에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Q) 중소·중견기업들은 ESG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기업은 자신과 공급망 협력사가 좋은 평가를 받아서 투자를 받겠다는 명확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대기업은 이를 수행할 자원과 조직, 전문 인력도 있기 때문에 대응할 수 있다. 중소・중견기업은 바로 위 공급망의 ESG 요구에 대응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대기업과 달리 ESG 경영에 유인책이 높지 않기 때문에, ESG를 잘 알지 못하고 억지로 해야 하는 장애물로 여길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ESG 경영은 또 달라야 한다. 예를 들어 대기업이 MSCI 같은 지수의 평가지표 200개 정도를 수행해야 하는데 대기업이 중소・중견기업에 똑같은 것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기업과 협력사는 요구받는 ESG 분야와 수준이 달라야 한다. 대기업은 글로벌 표준에 맞게 ESG를 다 수행해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은 각자 협력 관계와 산업 특성에 맞는 ESG 요소를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현대 자동차가 EU와 거래하면서 탄소국경세 때문에 환경(E)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협력사인 중소・중견기업도 E에 맞춰서 정말 필요한 항목과 지표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선택과 집중은 중소・중견기업도 해야 하지만 대기업도 그렇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
중소・중견기업은 대기업이 중시하는 지표도 다르고, 10인 미만, 50 미만 사업장 혹은 소상공인이냐에 따라서 처한 상황이 아주 다르다. 중소기업에 “ESG 지표 이것은 꼭 하세요”라고 요구하는 게 과한 요구일 수도 있다. 중소・중견기업이 지켜야 할 공통된 ESG 표준지표를 정해주는 것이 아니고 ESG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범 사례집을 제공하는 게 더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접근법이다. 각 기업의 상황에 맞는 모범 사례를 접목하여 추진해주는 컨설팅을 함께 제공하는 게 더 필요해 보인다.
앞에 말한 중소・중견기업은 B to B 거래를 하는 경우다. B to C 거래를 하는 기업은 사업의 핵심 경쟁력에 맞는 ESG 분야를 찾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 기업은 B to C 거래에 ESG 경쟁력을 바탕으로 판로, 마케팅, 정부 R&D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이 경우도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Q) 탄소배출권도 ESG에서 중요한 탄소중립 이슈와 맞물려 있다. 탄소배출권 가격도 많이 떨어졌는데, 기후와 환경 전문가로서 국내 탄소배출권 시장을 어떻게 보는가?
EU 배출권(EUA) 가격이 최근 60~70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2만원으로 너무 낮게 보인다. EU는 2004년부터 EU ETS(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라는 제도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10여 년을 해왔다. 우리는 2015년에 시작했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글로벌 기준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어떻게 협력할지를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택소노미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는 것으로 보인다.
택소노미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히 온실가스를 감소시키는 행위이지만 택소노미에 포함돼 있지 않으면 녹색 인증을 받지 못한다. G20 논의에서도 택소노미에 해당하는 사업에만 대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듯이, 택소노미가 투자와 대출에 직결돼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이 메탈할라이드등을 LED로 바꾸고, 콤프레셔를 인버터가 달린 콤프레셔로 바꾸는 일은 분명히 환경에 좋다. 택소노미에 이런 내용이 규정돼 있지 않으면 녹색 인증을 받지 못해 투자에 좋은 기회를 얻기 어렵다. 녹색산업을 육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 산업의 녹색화도 택소노미 작성에 고려돼야 한다.
탄소배출권 가격 급락은 국내 시장 상황에서 비정상은 아니다. 제도나 기업 행태가 문제가 아니라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에서 배출권 가격이 급락했다고 본다. EU의 배출권 가격이 오르는 것은 그린딜과 탄소중립 2050의 글로벌트렌드에서 당연한 추세다. 유럽은 EC가 시장 안정화 조치(MSR·Market Stabilization Reserve)를 통해 매년 시장 공급량을 조절한다.
한국도 탄소배출권 가격이 상승하다가 작년과 올해 급락했다. 이는 코로나 특수상황에서 기업들의 배출권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탄소배출권을 내년으로 이월시킬 수 있다면 가격이 무너지지 않겠지만 제도적으로 넘길 수 있는 양이 제한돼 있다. 넘길 수 있는 양이 제한돼 있으니 기업은 시장에 배출권을 한꺼번에 내놓게 됐다. 제도적 문제는 아니고 코로나로 인해 잉여배출량이 많이 나왔을 뿐이다. 유럽도 급락을 겪은 적이 있다. 2006년 ETS 1기에 배출권 가격이 34유로까지 갔다가 마지막에는 0원이 됐다. 유럽은 배출권을 당시에 다음 기로 넘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5년에 ETS 1기, 2기를 시범적으로 진행했고 3기부터는 제도와 시장의 불안정성이 보다 보완될 것으로 본다. 배출권은 2050 탄소중립에 있어서도 탄소배출량을 어떻게 상쇄할 것인가에 대한 주요한 방법이다. 정부, 기업과 같은 이해관계자들이 탄소배출권에 관한 전략을 지속해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행도 월드뱅크의 클라이밋 웨어하우스(Climate Warehouse) 이니셔티브에 참여해서, 국내 기업과 정부에 전략과 정책 지원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Q) ESG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ESG는 톱니바퀴와 같다. ESG의 주요 동력은 투자 관점에서 금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만의 동력으로 ESG가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법무, 신용평가사, 회계법인 등 ESG의 택소노미, 평가, 공시를 위해서는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인 톱니가 맞물려야 ESG가 돌아간다. 그리고 ESG는 돈, 즉 금융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ESG가 거품처럼 금방 사라지지 않고 중요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박란희 대표 & 편집장
정리=송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