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배 빠른 5G" 문구 고발, 페루 호수범람으로 독일 RWE사 소송...ESG 시대 소송리스크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를 허위·과장 광고 의혹으로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이동통신사 3사가 “5G가 LTE보다 20배 빠르다”라고 광고한 것이 허위·과장 광고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동통신 3사는 5G를 LTE보다 전송 속도가 20배, 반응 속도가 10배 빠르고, 10배 많은 기기와 연결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통신품질평가를 한 결과 5G 서비스가 LTE 서비스보다 다운로드 4배, 업로드 1.5배 빠른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들의 집단 소송이 이어졌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공정위 서울사무소에 신고했고, 공정위는 이를 중대사안으로 판단해 본사인 공정위 소비자정책국이 직접 조사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통신 소비자들이 허위·과장 광고로 LTE보다 더 비싼 5G 요금제를 사용하면서도 그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라며 시정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기후와 환경, 소비자 권리 등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과거에는 용인되던 마케팅이나 과대 광고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국내 통신사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도 다양한 형태의 ESG 소송에 휩싸여 있다.
페루의 농부가 독일 최대 전력회사에 소송
지구 반대편 기업에 기후위기 책임 물었다.
현재 독일 함 고등지방법원은 기업의 기후변화 책임을 둘러싼 세계 최대의 법정공방이 벌어지고 있다고 FT가 최근 보도했다. 독일의 최대 전력회사인 RWE를 상대로 소송을 건 인물은 무명의 페루 농부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Saul Luciano Lliuya)'다. 그의 소송 내막을 거슬러 올라가면 1941년의 사건을 만나게 된다. 당시 페루 도시 후아라즈(Huaraz)에 호수가 범람해 1800명의 사상자를 냈다. 사건의 원인은 지구 온난화로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이 녹고 산사태를 일으키면서, 빙하 호수의 물을 넘치게 한 일명 ‘빙하호 범람(Glacier lake Outburst flood)’ 때문으로 드러났다.
인구 12만명 가량 되는 후아라즈의 주민들은 2021년인 지금까지도 계속 범람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기후변화로 이번에는 후아라즈 인근 팔카코차(Palcacocha) 빙하호 범람 위험도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다.
농부 사울 루시아노 리우야(Saul Luciano Lliuya)는 독일 환경 전문 변호사와 함께 "RWE가 호수 범람 문제를 유발했다"며 독일 법원에 기후 소송을 제기했다. RWE가 온실가스 배출원인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유럽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1위이기 때문에, 빙하호 범람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원고는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의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 보고서에 따라 홍수 예방에 쓸 비용을 2만 유로(한화 2700만원)을 요구했다.
2016년 독일 에센 지방법원은 소송을 기각했으나 원고는 항소했다. 2017년 독일 함 고등 지방법원은 원고의 주장이 근거가 있으므로, 추가 증거를 수집한 후 최종 결정을 하겠다고 판결했다. FT는 "이는 기후변화 소송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밝혔다.
ESG 리스크 기업 국가 상대 소송 잇달아...
오히려 평판 위험에 노출된다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거대 기업에 기후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런던 경제대학의 조아나 세처(Joana Setzer) 연구 조교수(assistant professorial research fellow)는 “이번 달에 로얄더치쉘을 포함한 대규모 화석 연료 회사를 상대로 최소 33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세처 교수는 “‘금융 위험, 수탁업무, 기업 실사에 초점을 맞춘 청구가 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소송에 기업들의 반발도 작지 않다. 네덜란드 정부는 2030년까지 석탄연료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국가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네덜란드 환경단체들은 로얄더치쉘에 온실가스 감축 소송을 제기했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45%를 감축하라는 판결을 받은 로얄더치쉘은 네덜란드 법원에 항소할 계획을 20일 밝혔다. RWE는 네덜란드 정부에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인해 생길 손해배상으로 14억 유로(1조 8909억 원)을 청구했다. 국제 협약인 에너지헌장조약(ECT)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조항(ISDS)에 따라 기업은 정부의 환경 관련 조치로 영향을 받을 경우 정부에 제소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기업이 탄소중립 과정에서 입는 자신들의 손해를 국가에 배상하려는 소송 흐름과 관련, 오히려 기업을 평판 위험에 노출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0일 외신 RI(Responsible Investor) 보도에 따르면, 클라이언트 어스(Client Earth)라는 NGO 단체의 무역 및 환경 변호사 베르헤(Amandine Van Den Berghe)는 “정부를 고소하는 회사들은 기후 대응을 늦추는데 모든 것을 다했고, 이제는 그들의 좌초자산에 보상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네덜란드의 금융 컨설팅 회사 파이낸스 아이디어스(Finance Ideas)의 빈센트(Vincent Van Bijleveld) ESG 투자 국장은 “RWE 주주라면 단기 기후 전환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해 이런 소송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파리기후협약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파리기후협약을 지지하는 투자자로 남고 싶다면 RWE, 유니퍼 같은 기업 주식을 계속 보유할지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SG 리스크가 법적 소송으로까지 비화되면서, 기업의 '제품 책임' 및 '진정성 있는 마케팅'에 대한 논의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