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넬(Enel)사의 지속가능연계채권은 왜 ESG채권 특성에 더 부합할까?
지속가능연계채권(Sustainability-Linked Bond, 이하 SLB)은 사회책임투자(Social Responsible Investing, 이하 SRI) 채권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6일 대신경제연구소 산하 한국ESG연구소는 ‘SLB 동향’ 보고서에서 SLB를 SRI와 비교해 특성을 설명하고, 이탈리아 전력회사 에넬(Enel)그룹의 SLB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제시했다.
한국ESG연구소 오지혜 연구원은 “SLB는 기업이 지속가능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발행자에게 패널티를 주는 등 성과 관리를 통한 지속가능한 목표 성취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SRI채권보다 본질적으로 ESG에 가까운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ESG 특성 더 가진 SLB
SRI와 달리 조달 자금 자유롭게 쓸 수 있어...
ESG채권은 ESG 목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채권으로, SRI채권과 SLB로 구분할 수 있다. SRI채권은 채권별로 목적 사업 혹은 프로젝트가 있고, 그 사업 영역 안에서만 조달 자금을 사용할 수 있다.
한국거래소는 SRI채권을 ▲친환경 프로젝트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녹색채권(Green Bond) ▲사회 가치 창출 사업을 위한 사회적채권(Social Bond) ▲두 성격을 결합한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으로 구분하고 있다.
한편, SLB는 발행자가 사전에 정의한 지속가능(ESG) 목표를 달성하는지에 따라 재무 및 구조적 특성이 달라질 수 있는 채권 상품이라는 게 오 연구원의 설명했다.
오 연구원은 “SLB는 전통적인 SRI채권과 달리 지속가능성과 목표(Sustainability Performance Targets, SPTs)를 활용해 성과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ESG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SLB는 SRI보다 발행이 쉬운 대신에, 성과 측정과 사후 검증으로 그린워싱을 보완할 수 있어서, ESG에 적합한 채권으로 평가 받는다.
SLB는 국제자본시장협회(International Capital Market Association, ICMA)가 발표한 5가지 핵심 구성 요소를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ICMA가 2020년 발표한 SLB 5가지 핵심구성요소는 ▲핵심성과지표(KPIs) ▲지속가능성과목표(SPTs) ▲채권 특성(Bond Characteristics) 명시 ▲사후보고(Reporting) ▲검증(Verification)이다.
SLB는 지속가능성과 목표를 설정하고 핵심성과지표를 통해 목표 성취 여부를 판단한다. 기업이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면, 채권 금리를 높여서, 투자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발행자는 패널티를 얻는 채권 특성이 있다.
SLB는 1년에 한 번씩은 KPI 정보와 지속가능성과목표(SPTs) 정보를 투자자에게 보고해야 하고, 외부 기관의 검증을 받는 시스템을 갖춰, 투자자 중심의 채권으로 ESG 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각각의 단점도 있다. SLB는 조달된 자금이 SRI와 달리 지속가능목표와 다소 관련 없는 곳에 사용될 수도 있는 단점이 있다. SRI는 사용처가 확실하므로 프로젝트가 있으면 자금 모집이 용이하지만, 사후 관리가 어려운 시장에서는 리스크가 커서 발행이 어려운 문제도 있다.
한국ESG연구소는 최대 규모의 SLB를 발행했던, 이탈리아 전력회사 에넬(Enel) 그룹을 통해 실제 시장에서 SLB의 특성을 분석했다.
ESG채권 시장의 새로운 대안
에넬 그룹의 멀티 트란쉐(Multi Tranche)
에넬 그룹은 2019년 11월 세계 최초로 SDGs 7(지속가능한 에너지)과 SDGs 13(기후행동)의 지속가능발전목표와 연계해 KPI를 설정하고 SPTs(지속가능성과목표)를 평가하도록 설정된 25억 유로(약 3조 3696억원)의 SLB를 발행했다. 에넬 그룹은 SLB 채권 시장에서 화두에 자주 오르내리는 상징성을 갖는다.
지난달 8일에 에넬은 미화 40억 달러(4조 5840억 원)의 세계 최대 규모의 SLB를 발행해 화제가 됐다.
이 채권의 핵심성과지표(KPIs)는 유엔의 지속가능 개발목표 SDGs 13(기후행동)에 기여하고, 자사의 온실가스 직접 배출에 해당하는 스코프 1(Scope1)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설정됐다. 에넬 그룹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직접 배출량을 2017년 대비 80%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순제로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지속가능성과목표(SPTs)는 2023년 12월 31일로, 에넬의 SLB는 만기일이 다른 4개의 파생상품으로 구성됐다. 만기일(2021년 기준)이 2026(5년), 2028(7년), 2031(10년), 2041년(20년)으로 분할했다. 각각 금리도 1.375%, 1.875%, 2.250%, 2.875%로 다르다.
이 채권의 특성(Bond Characteristics)은 멀티 트란쉐(Multi Tranche)로 만기일이 다른 4개의 채권을 동시에 운용하고, 금리도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SPTs를 달성하면 금리는 그대로 유지되고, 달성하지 못하면 25bp(Basis Point, 0.25%포인트)가 오른다.
사후보고(Reporting)은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온실가스 직접 배출량을 매년 보고한다. 웹사이트와 연간 보고서(annual report)에 SPTs(지속가능성과목표)의 성과를 검증한 내용도 첨부한다.
검증(Verification)은 에넬 그룹이 지정한 제 3자 보증 또는 증명서비스를 갖춘 업체가 온실가스 직접 배출량 보고 내용을 검토하게 되어 있다.
에넬 그룹은 지속가능연계채권 기존 거래보다 약 15bp 더 낮은 금액으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음을 밝혔다. 오지혜 연구원은 “이 점이 채권이 투자자에게는 비싸고, 발행자에게는 더 싸게 발행되는 그리니엄을 방지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 연구원은 에넬 그룹의 SLB를 “채권시장과 파생상품시장에서 지속가능성을 연계한 새로운 대안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