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 IPCC 보고서와 기후 우울증

10여년 전, 경력단절 기간에 1년 반 가량 환경NGO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언론사와 환경 NGO는 업무가 무척 달라 애를 먹었는데,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이벤트가 있다.
‘350캠페인’이다. 이산화탄소 농도를 350ppm 이하로 낮추기 위해 전 세계 188개국이 참여하는 글로벌 지구 온난화 방지 캠페인이었다. 2011년, 당시 남산 한옥마을에서 수십 명이 인간 플래시몹이 되어 350 글자를 만들고, 드론을 하늘에 띄워 사진촬영을 했다. 땡볕에 몇 시간 동안 서서 350 글자를 딱 맞추느라 고생하면서, 속으로 ‘왜 이런 걸 하는 거야’라고 투덜거렸다.
물론, 환경 NGO들이 왜 검은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기자회견을 하는지, 온 몸에 북극곰 탈을 쓰고 튀는 캠페인을 하는지는 한참 후에 알게 됐다. 튀지 않으면 어떤 언론사도 관심있게 보도해주지 않았고, 기후변화에 대한 손톱만큼의 관심이라도 이끌어내려면 그야말로 ‘온갖’ 튀는 캠페인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언론사로 다시 돌아와 지낸 지 10년째. 지난 8월 9일, IPCC(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6차 보고서를 보는데 가슴이 턱 막혔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410ppm이라고 나와 있었다. “350ppm을 넘기면 큰일난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사이 410까지 올라가 있었다.
당시 기후변화 관련 자료를 낼 때 가장 답답했던 게 ‘온실가스 얼마만큼 안 줄이면 인류가 위험하다’ ‘기후 대재앙 시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 ‘텀블러 들고 다니면서 환경보호하는 생활 속 실천’ 등의 목소리가 쳇바퀴 돌 듯 똑같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커뮤니케이션하기에 이만큼 대책 없는 이슈도 없었다. 문제(기후 위기)는 너무 거대한데,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자료는 알기도 어렵고 설사 안다고 해도 비전문가가 설명하기도 어려웠으며, 해결책이라는 게 고작 텀블러와 환경 교육뿐이라니!
환경 NGO를 떠나고 나니, 기후변화 이슈는 더 이상 ‘내 일’이 되지는 못했다. 당장 하루에도 벌어지는 이슈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다, 최근 ESG 흐름을 타고 기후변화가 메인스트림이 되는 걸 지켜보는 게 좀 복잡한 심경이다. 일단 자본이 움직이고 기업도 서서히 방향을 틀고 있다. 각국 정부도 티격태격 싸우곤 있지만, 어쨌든 “큰일났다”며 해결책을 찾고는 있다. 마음 속 불편함은 이것이다. ‘그래서 뭐?’라는 물음.
410ppm을 만드는데 나라는 개인 또한 0.000000001%는 기여했을 텐데, 개인의 텀블러 사용이나 대중교통 이용은 도대체 얼마만큼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할 수 있을까. 누구 말대로 타이타닉 호에서 티스푼으로 물 퍼내기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다. 결국 원인 제공자인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는 걸로 귀결된다.
그런데, 대한민국 기업 입장에서 보면 ‘우리보다 미국이나 중국 기업이 훨씬 더 책임 있잖아’ 하는 심정이 들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기업들 입장에선 ‘왜 우리한테만 그래? 우리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싶을 것이다. 결국 가해자를 특정하기는 힘든데 피해자는 78억명이 생겨난, 지상 최대 규모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사건’일 수도 있다.
기후변화 관련한 외신 자료를 보면 세상이 정말 큰일 난 것 같다. 특히 그리스와 터키 산불 사진은 너무 강렬하다. 그러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저녁 때 밥하기 싫어 배달음식 하나 시켜 먹으면 플라스틱만 10개씩 나온다. 주변사람 누구도 기후 걱정을 별로 안 한다. 이런 마당이니 ‘기후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이해가 된다. 우리는 지금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는 걸까. 빌게이츠는 자신의 책(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기후변화 해결을 낙관하던데….
ESG, 특히 환경이나 기후변화처럼 ‘정치적 올바름’을 직업으로 삼는 건 그래서 참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은데 중요하고, 그걸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