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기후금융 모델을 찾아서】 ④ 대기업의 고민, 국내에선 과연 RE100을 할 수 있을까
임팩트온-사회적가치연구원 공동기획 [한국형 기후금융 모델을 찾아서]
[4] 대기업의 고민, 국내에선 과연 RE100을 할 수 있을까
2050 탄소중립이 발표됐지만, 정책적인 로드맵이 없는 상태에서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제각각 이뤄지다 보니,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임팩트온은 사회적가치연구원(나석권 원장), 한양대 박동규 경영대학 교수와 공동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한국형 기후금융 모델을 찾기 위해 내러티브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폐기물, 금융 부문 등 현장 전문가 16인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니즈(Needs)와 페인포인트(Pain Point)가 무엇인지 파악해봤다. 이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면담자들은 익명 처리했다.
지금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이 가장 시급한 곳을 꼽으라면, 해외 시장에 납품해야 하는 수출 대기업들일 것이다. ‘RE100’ 물결 때문이다.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의 줄임말로, 기업에서 필요한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300곳이 넘는, 웬만한 글로벌 대기업은 다 RE100 선언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SK 6개사(SK텔레콤, ㈜SK,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SKC), LG에너지솔루션, 아모레퍼시픽, 한국수자원공사, 현대차그룹 5개사(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트랜시스) 등이 가입한 상태다. 특히 애플이 SK하이닉스에게, 폭스바겐이 LG에너지솔루션에 동참을 요구하는 식으로 최근에는 공급망의 협력업체들에게 재생에너지 사용을 압박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가격이 비싼 국내 대기업들에겐 상당히 불리한 환경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기업의 고민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C사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담당해온 P씨는 “부처간 엇박자가 매우 심하다”고 어려움을 해소했다.
Pain Point ① 부처간 엇박자…재생에너지 정책 컨트롤타워 필요
P씨는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는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화(localized) 사업이기 때문에, 지역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신재생에너지가 제대로 되려면 정부가 정책적으로 끌고가야 하는데 모든 걸 지자체에게 맡기고 있어요. 예를 들어, 난개발을 막고 민원 해결 등 인허가 과정을 쉽게 풀어주기 위해 ‘집적화 단지’를 만들도록 정부가 요청했어요. 대형 발전소를 짓기 위해서는 산업부에 허가 받고 다시 지자체 등에서 허가받아야 했는데, 집적화 단지의 경우 지자체 주도로 (산업부) 허가를 받고 나면 모든 허가를 정부가 풀어주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지자체와 산업부가 서로 핑퐁을 치면서 잘 안 됩니다. 산업부가 해야 할 일도 모두 지자체에 줘버려서 형평성 문제도 생기고 유착관계도 발생합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집적화단지 조성·지원 등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40MW 이상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에 대해, 지자체가 입지발굴, 단지계획 수립, 주민수용성 확보 등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산업부에 집적화단지 지정을 신청하면 평가 후 지정하는 제도다. 대형 발전시설의 경우 사업 초반부터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사업을 끌어가면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신호였다.
원래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은 3000KW를 초과하면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에서, 3000KW 이하는 지자체(광역시·도)에서 허가한다. 개발행위 허가를 받고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더라도 이후 지자체로부터 전기설비 시설계획신고 및 인가 후 공시를 개시할 수 있다. 전기안전공사, 에너지관리공단신재생에너지센터, 한국전력거래소, 한전 등에서 단계별로 허가신청을 받아야 해서, 한곳이라도 틀어지면 발전소를 지을 수 없다. 개발행위 과정에서 주민 보상이나 협의가 문제가 생겨,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게 무산되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당시 산업부는 “기존에는 사업자가 개별적으로 관련기관에 인허가 신청을 낸 후 지자체의 인허가 절차를 통과하는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지자체가 사업계획을 세우고 산업부 심의를 거쳐 통과되면 지자체가 사업자를 공모하고 발전사업 허가, 개발행위 허가를 진행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Pain Point ② 발전사업 허가 때부터 민원제로 요구
발전사업 허가 과정 또한 ‘꽉 막힌’ 인허가의 터널을 계속 뚫고 나가는 예측 불가능의 연속이다. 산업부 전기위원회에 발전사업 허가 신청→기초지자체로부터 개발행위 허가 취득 및 환경영향평가→ 광역시도 지자체로부터 발전사업허가 취득의 과정을 거친다.
“예전에는 발전사업 허가를 너무 우후죽순 해줬어요.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100곳 중 30곳만 실제로 사업이 진행됐어요. 이유 중 하나는 한전이 계통에 투자를 안 했기 때문입니다. 태양광이 설치되면 한전의 계통에 설비 연계가 되어야 전기로 연결되는데, 이게 안된 겁니다. 그런데 산업부에서는 전기위원회에 ‘왜 제대로 체크 안하고 허가를 내줬느냐’며 발전사업 허가를 강화할 것을 요구했어요. 이후 전기위원회는 발전사업 허가를 내줄 때부터 민원 제로, 지자체 인허가 100%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업자 입장에서 발전사업 허가가 날지 안 날지 모르는 사업에, 어떻게 민원 해결을 하느라고 비용과 시간을 쏟아붓습니까. 이러니 자꾸 사업이 늦어집니다.”
P씨는 한전의 비협조 또한 커다란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발전사업 허가를 낼 때 전기를 연결시킬 수 있다는 한전의 공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전이 이걸 잘 안 해 줍니다. 어떤 해상풍력단지는 1기가 발전 허가 받는데, 한전 공문 받느라 6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한전 조직이 경직돼 있고, 예산 편성이 계통 연계에 잘 안 돼 있는 게 문제입니다.”
계통연계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한전의 계통에 설비를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태양광 사업자는 급증하는데 반해 한전의 계통 연계가 느리다 보니, 발전해 놓고 대기하느라 ‘내다버린’ 전기가 많아 수년 간 이슈가 제기돼 왔다. 기후솔루션의 ‘2020 대한민국 재생에너지 현황과 문제점’에서도 가장 먼저 지적한 게 계통 연계였다.
2016년 10월부터 2018년 12월말까지 1MW 이하 태양광 발전사업자가 계통 연계를 신청한 용량은 12.7GW(6만427건)이었으나, 2019년 3월 접속이 완료돼 상업운전을 시작한 설비 비중이 3370MW(1만9428건)으로 전체의 25.9%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계통연계 지연으로 대기중인 물량만 6250MW(2만6700여건)으로 전체의 49%였다.
이후 한전은 부사장 주관 재생에너지 특별대책 전담조직을 신설하며 이 문제 해결에 주력해왔다. 지난 3월 한전에 따르면, 신청용량 중 21.9%인 3500MW가 접속대기 중이며, 지난 1년 사이 접속 대기율이 절반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Pain Point ③루프탑 태양광 확대 보장해야…제도적 지원 절실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국토는 재생에너지 발전의 근원적인 한계다. 땅, 산, 건물, 바다 이 네 곳 중에서 향후 확대 가능한 곳은 건물(태양광)과 바다(해상풍력)라고들 한다.
P씨는 “국내에서 앞으로 태양광을 설치할 곳을 찾는다면 루프탑(지붕)이 가장 효과적일텐데, 루프탑 태양광이 확대될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잘 안되는 게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해외를 보면, 초대형 유통기업 월마트의 지붕이 태양광으로 덮여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국내는 왜 어려운 걸까.
“공단지역에 가면 넓은 지붕이 있는데, 이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 못합니다. 권한(권리) 계약을 맺는 게 힘들어요. 만약 태양광에 지붕을 설치한 후 해당 기업이 부도가 나고 그걸 다른 누군가가 인수하게 되면 떼내라고 합니다. 태양광에 대한 지상권 설정을 해당 건물주들이 잘 안 해줍니다. 나중에 자신들이 다른 방식으로 써야 할 수도 있는데, 지상권 설정을 하면 권한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루프탑 태양광에 대한 재산을 보호받지 못하다보니, 그 누구도 선뜻 투자를 하지 못합니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적어도 건물주가 바뀐다고 해도 20년 동안은 태양광 설치에 대한 권리를 보증해주는 걸 마련해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슈를 피하기 위해 보증보험을 들려면, 1MW 미만의 경우 설치비만 10억 남짓인데 보증보험료만 2억원씩 든다고 한다. 때문에 루프탑 태양광 확대가 더디다는 것이다.
건물 지붕이 어려우니, 태양광은 이제 수상태양광이나 염전태양광으로 향하고 있다. 2018년 7월 농지법이 개정되면서, 정부는 염해 간척지에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바닷물이 들어온 절대농지에 어차피 농사를 짓기 힘드니, 태양광이 가능하게끔 풀어준 것이다. P씨는 “지자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이것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염해 간척지는 100~200MW를 지을 수 있을 만큼 땅이 큽니다. 100MW만 해도 평수로 30만평이죠. 이런 큰 농지를 태양광을 덮는 걸 농식품부에서는 여전히 부담스러워 하고, 농민들 입장에서도 반대파가 존재합니다. 지자체에서는 주민 표에 신경쓸 수밖에 없으니 표심에 따라 계속 움직입니다. 우리나라는 쌀이 남아돌고, 정부의 쌀 보조금이 2~4조원 가량 됩니다. 쌀 농사를 했는데 바닷물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보조금이 지원된다는 말입니다. 이걸 낭비하느니 태양광으로 전기도 생산하고 정부 보조금도 아낄 수 있는데, 지자체는 잘 안 움직입니다.”
Mini Review
솔라커넥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발전설비 용량은 2019년 125.3GW(기가와트)다. 이중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비중은 전체의 13%(15.8GW)를 차지한다. 이를 에너지원별로 볼 때, 67%가 태양광이며, 풍력(10%), 일반수력(10%), 바이오·매립가스(6%)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지금까지 태양광 사업은 2010년대 초기 무관심기를 거쳐, 2015년 이후 중소발전사 폭증으로 인한 시장 혼돈기를 지나, 이제 대기업 및 일부 중견 개발사들로 시장이 재편되는 중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는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것일까. 탄소중립위원회의 윤순진 위원장은 최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양광은 이미 산단 등 개발된 지역 혹은 유휴부지인 폐도 등을 우선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고, 농지는 농산물의 수확을 방해하지 않도록 영농형 태양광을 추진하는 등의 방안을 고민했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재생에너지 체계 구축에 소요될 면적은 국토 면적의 3% 이내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이는 현재 태양광 효율 18%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효율이 2배, 3배 상향된다면 소요 면적 또한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에 대해 한국원자력학회는 “2050년 태양광, 풍력 비중을 50~80%까지 높이려면 연간 41조~96조원의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SS(에너지 저장장치) 대량설치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ESS설치에만 300조원 이상이 들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의무 공급비율이 7%였을 때, 한전이 지급한 보조금은 3조원 정도였는데 신재생에너지 의무 발전비율이 높아지면(현재는 10%에서 오는 10월 21일부터 25%로 확대), RPS를 구매해야 하는 대형발전사들의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석탄발전보다 싸게 되려면 국내 또한 기술혁신과 규모의 경제 등이 이뤄지는 길로 가는 수밖에 없다.
정부로서도 탄소중립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글로벌 압박에 놓여있어 선택지가 많지 않다. 정부는 올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COP25(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이전보다 훨씬 상향된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제출해야 한다. 지난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하겠다”는 탄소중립기본법(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법사위와 25일 국회 본회의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기존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인 2017년 배출량(7억910만톤) 대비 24.4%에 비해 크게 올린 수치다. 2억톤이 넘는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방위 제도적 인프라가 필요하지만, 아직 현장까지 도달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공동 연구팀= 박동규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정명은 사회적가치연구원 수석연구원, 박란희 임팩트온 대표(편집장), 김효진 임팩트온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