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기후금융 모델을 찾아서ㆍ끝】 ⑩ 박동규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인터뷰

2021-08-29     박란희 chief editor

임팩트온-사회적가치연구원 공동기획  

[한국형 기후금융 모델을 찾아서ㆍ끝]

[10] 박동규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인터뷰…"SOC 민자사업 경험 활용한 기후금융 특화 PF 필요해"  

2050 탄소중립이 발표됐지만, 정책적인 로드맵이 없는 상태에서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제각각 이뤄지다 보니,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임팩트온은 사회적가치연구원(나석권 원장), 한양대 박동규 경영대학 교수와 공동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한국형 기후금융 모델을 찾기 위해 내러티브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폐기물, 금융 부문 등 현장 전문가 16인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니즈(Needs)와 페인포인트(Pain Point)가 무엇인지 파악해봤다. 기획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이번 연구의 책임을 맡은 박동규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를 인터뷰했다. 

박동규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SOC 민자사업의 성공모델을 기후금융에도 적용, 한국형 기후금융의 성공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CSES  홈페이지 캡처

 

박동규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대체투자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국내 제1호 민자 유치 사업이었던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 건설공사부터 시작해 SOC(사회간접자본) 민자사업의 25년 역사를 꿰뚫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대체투자위원회 위원, 한국민간투자학회 부회장, 중소기업중앙회 대체투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부터 ‘기후금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국내 기후금융 자금조달 현황 및 효율화 방안’(2020년)에 관한 연구에 이어 올해 '한국형 기후금융 모델'을 찾기 위한 내러티브형 현장연구까지 기후금융 PF(프로젝트 파이낸싱)를 들여다보고 있다. 왜 갑자기 기후금융이었을까. 

“사실 글로벌 SOC 민간인프라 투자의 시장 점유율을 보면 50%가 발전소 건설입니다. 이전까지는 원전, 석탄발전을 중심으로 해외 유력투자자, 정부, 세계은행 등이 개도국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많이 해왔습니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그에 비해 규모가 작다 보니, 큰 관심은 없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친구가 환경 쪽에도 금융을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한데, 너무 부족하다면서 권유를 많이 했어요. 재작년부터 문헌도 찾고 사람들도 만나보니, 정말 중요한 분야인데 전문가나 제도, 사례 등 여러 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너무나 뒤쳐져 있더군요.”

그에게 기후금융 연구를 권유한 건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특성화대학원 주임교수다.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동창이다. 김종대 교수는 국내에서 ESG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2010년부터 인하대 ‘지속가능경영대학원’을 이끌어온, 지속가능경영의 프런티어다. 

 

25년 시행착오 거친 SOC 민자사업, 개도국 벤치마킹 대상돼

박동규 교수는 기후금융의 현장을 밑바닥부터 봐야 한다며, 경북 울진부터 인천 현장까지 전국을 직접 발로 뛰었다. 기존 SOC 민자사업 현장과 기후금융(신재생에너지) 현장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예를 들어, 국내 민자사업 1호인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의 경우 길이만 37.4km인데 정부가 토지 수용을 담당했기 때문에 민원에 대한 이슈는 없었어요. 사업자는 민원에 신경을 덜 쓰고, 사업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었지요. 우리나라는 1994년 민자유치촉진법을 제정했고, 그때부터 시작된 SOC 사업은 25년 넘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법과 시행령이 잘 정비돼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대표적인 민관합작투자사업(PPP사업)에 성공한 나라로 여겨지고 있으며, 동남아 각국 공무원들이 KDI에 사례를 배우러 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기후금융은 아무런 제도적 인프라가 인프라가 없이 주먹구구입니다. 정부에선 대책 없이 ‘탄소중립’을 발표했지만, 컨트롤타워도 없고 법령도 제대로 없습니다.”

박 교수는 “민자사업은 기재부가 사업을 조율하며, 민간투자정책과에서 웬만한 사업 인허가 절차와 계획, 애로사항에 대한 해결 등을 담당하지만, 기후금융의 경우 산자부, 해양수산부, 심지어 국방부까지 개입돼 있음에도 컨트롤타워가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기후금융 사업 자체의 이해관계자 간 갈등은 도로, 항만, 철도와 같은 기존 SOC사업보다 훨씬 더 첨예하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태양광과 풍력,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주민들의 삶에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또 현재 사업자들이 대부분 중소기업이고요. 게다가 지자체장의 의견에 따라 사업이 좌우될 정도로 지자체의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이에 반해, 정부나 금융권, 대기업 등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SOC 민자사업을 담당하는 금융권 관계자들은 비공식 모임을 통해 공부도 하고 정보도 주고받는데, 금융권에서 기후금융을 해본 사람을 섭외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에 각종 사업들이 진행되다보니, 각종 민원을 비롯한 엄청난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업의 절차와 구조가 SOC사업보다 훨씬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제도적 인프라나 정책적 뒷받침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외건설사업에 적용되고 있는 글로벌인프라펀드(GIF)에는 수출입은행이나 산업은행 등이 제공하는 각종 금융지원이 있음에도 국내 기후금융에는 이와 같은 특화된 재원이나 지원이 없다고 한다. 

박동규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기후금융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CSES 홈페이지

 

기후금융, 정권의 이해관계 넘어 장기적 플랜 갖고 접근해야 

박 교수는 “SOC사업 또한 무(無)에서 출발해서 개도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듯이, 이 경험을 조금만 기후금융과 접목하면 충분히 우리나라가 리딩할 수 있다”며 “덴마크나 대만 등 해외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정권의 이해관계를 넘어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국제공한 고속도로 사업의 경우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진행된 1조74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였어요. 원래 처음에는 경부고속도로처럼 정부예산사업으로 하려고 했지만, IMF가 터져서 나라 경제가 난리가 나는 바람에 민간투자로 돈을 조달하게 됐습니다. 국내에서 처음 해보는 사업이니 얼마나 시행착오가 많았겠어요. 11개 건설사가 25%를 자기자본을 대고, 나머지 75%를 18개 국내은행이 대출을 해줬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를 못 미더워했던 외국계은행은 하나도 안 들어왔어요. 정부는 돈을 한 푼도 안 내는 대신, 사업자들에게 30년 운영권을 주면서 통행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준 겁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미래에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도로라는 SOC에 최초로 민자사업을 적용한 사례였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어려웠어요. 하지만 이후 도로, 항만, 철도, 공항, 심지어 오염수 처리시설, 폐기물처리장 등 환경시설까지 수많은 SOC가 민자사업으로 이뤄졌습니다. 작년까지 그 규모만 130조원 정도 됩니다. 이걸 가능하게 한 핵심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입니다.”

대출만 해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설계부터 운영, 리스크 헷징(hedging)까지 미래 현금을 확보하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노하우가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박 교수는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맥쿼리를 비롯한 대형 다국적은행들 주도로 기후금융에도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보편화되어 있다"면서 "국내 기후금융에도 금융과 산업을 연결하는 모델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사실 ‘금융 부문’은 깊숙하게 들어가서 보지 못했어요. 해상풍력의 경우 해외 PF 투자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온다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해상풍력에서 얽혀있는 정부와 지자체, 주민과 사업주체 간의 이해관계 갈등을 잘 알고 있는지, 어떻게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최대로 확보하면서 진행하는지 사례별로 심층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 전환기에 우리나라에서 기후금융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어떤 정책이나 제도가 필요할지.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할 수는 있지만, 나라별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적인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여러 부서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에, 국무총리실이나 청와대가 주도해서 우선 태스크포스팀을 마련해서 바텀업(bottom-up)으로 올라오는 다양한 현장문제를 정책에 반영해야 합니다. 각 산업의 페인포인트(pain points)가 무엇인지, 산업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어봐야 합니다. 현 제도와의 갭을 메워야 하지요. 선언적인 탄소중립 캐치프레이즈나 정치적인 이해를 벗어나, 보다 현실적인 각론도 나와야 합니다.”